냉전의 지구사 - 미국과 소련 그리고 제3세계
오드 아르네 베스타 지음, 옥창준 외 옮김 / 에코리브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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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냉전 시기가 도래한 지금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이 책은 제3세계를 중심으로 미-소 양국의 냉전 정책을 세세하게 해설한다.

하지만 내용을 꼼꼼히 살펴본다면, 이 책은 마치 실수와 착각, 판단 오류로 점철된 제국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 같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냉전의 이미지는 뭔가 과묵하고 냉정한 스파이가 양국을 오가며 활약하는 듯한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상은 잘못된 판단의 연속으로 인한 엉망진창 코미디가 따로 없다.

 

이러한 냉전 시기 강대국의 착각과 실수는 제3세계에겐 뼈아픈 문제로 돌아왔는데, 사실상 냉전의 포문을 연 대한민국도 여기서 빠지지 않는다.

 

3세계는 우드로 윌슨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식민제국주의에 대한 해방독립’, ‘자국 발전의 꿈과 같은 대의에 의한 목적, 혹은 그저 지도층의 욕망과 권력 다툼에 의해 냉전에 휩쓸리지만, 그 결과는 대부분 참혹한 수준의 실패로 끝이 났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의 판단은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

이데올로기적 우군을 얻기 위해 미국은 해당 국가의 상황 따윈 거의 고려도 하지 않은 상태로 정책을 내세우기 일쑤였고, 그 결과 수많은 독재자를 정권 지도자로 옹립하였다. 자유민주주의의 투사들은 정작 더 많은 국가를 자유와 민주주의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이는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특히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대외정책은 한심한 수준이었고 지금도 남미 국가들은 강한 반미주의 성향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사실 미국이 한 행동을 생각해본다면 이런 반미주의 성향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정도로 미국의 선택은 무책임하고 판단 오류도 심했다.

베트남의 실패는 미국 냉전 정책의 대표적인 예시일 것이다.

 

하지만 소련도 만만찮게 실수의 연속을 보여줬다.

특히 이 책의 또다른 주인공인 중국과 소련의 관계가 참 재밌다.

소련과 중국은 같은 이데올로기 진영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은 냉전 시기에 서로를 견제하는 라이벌 관계였다.

레닌주의를 중심에 둔 소련과 마오주의를 내세운 중국은 각기 서로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며 제3세계에 각자 자신만의 영향력을 내세우려고 노력하며 상당히 삐걱거리는 관계를 보여줬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신냉전 체제에서 발생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갈등, 러시아의 뒤통수를 호시탐탐 노리는 중국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소련과 중국의 대외정책도 엉망진창이긴 마찬가지였다.

소련은 적극적인 개입주의로 인해 지나치게 많은 예산은 대외관계에 쏟아부었고, 그 결과 자국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는 시점에 이르렀을 때조차 냉전 정책을 개혁하지 못하였다. 실상 이러한 선택의 오류가 소련의 해체를 불러 일으킨 셈이다.

이는 현재 해외에 뿌린 투자 자금을 거두어들이지 못해 경제난이 일어난 중국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온다.

 

중국은 문화대혁명 이후 제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대외 영향력을 펼치려 하는 모습 또한 하나의 코미디처럼 보인다.

그 와중에 진정한 공산혁명 사상을 전파하려는 쿠바의 행동력과 이 때문에, 냉전이 열전으로 발화할까 노심초사하는 소련의 태도는 이 책의 또다른 볼거리라 할 수 있다.

 

결국, 냉전 정책은 무엇하나 제대로 성공한 것이 없었다.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후퇴시켰으며, 소련은 자멸의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돌풍에 휘말린 제3세계는 각종 부패와 살육이 넘쳐났고 제대로 된 부흥을 일궈낸 국가는 매우 소수에 한정됐다.

그리고 강대국의 이데올로기 갈등에 분노하여 등장한 중동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영향이 지금까지 미치고 있다.

 

냉전 시기의 엉터리 선택과 그 실패가 보여주는 모습은 신냉전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상당히 좋은 청사진이 될 것이다.

신냉전이 도래한 지금,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서구의 승리를 말한 역사의 종언은 완전한 실언이 되었다.

오로지 저 위대한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가 말한 것처럼 해당 국가와 문화와 관습, 전통을 고려하지 않은 개입은 언제나 실패할 따름이다.

 

아마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는 신냉전의 선택과 판단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오판의 연속이 세계 모든 국가에 큰 고통을 낳을 것이란 점이다.

그러하기에 바로 이 시점에서 이 책이 시사하는 의미가 상당히 중요해졌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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