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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의 시선 창비청소년문학 12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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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약약강. 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게, 약한 사람에게는 강하게. 그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이런 삶의 방식이 비열하다고 비난한다. 정작 본인도 그렇게 살고 있으면서. 나는 그들보다는 솔직했다. 적어도 인정할 줄은 안다. - p.9 첫 문장

책의 주인공 안율은 자신을 친구 김민우, 김동휘, 서진욱 사이에서 가장 만만하고 약한 애로 표현한다. 사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대부분이 강약약강의, 가장 만만하고 약한 애가 아닐까? 그래서인지 율이 절대 낯설지가 않다.

책의 스토리는 심플했다. 자신을 구하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시선을 땅에 두고, 방관자의 삶을 사는 것)를 앓고 있는 안율이 우연이 만나게 된 자신을 닮은 이도해와 자기와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던 핵인싸 서진욱이 사실은 본인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마주하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은 왜 "율의 시선"인까? 아버지를 잃으면서, 세상 사람들의 무관심한 시선, 자기 불리한 일은 안 하려고 피하는 시선을 알게된 율은 방관자의 삶을 선택했지만, 차마 자신의 시선 밖으로 밀어낼 수 없었던 이도해, 김지민, 서진욱을 만나면서, 다름 사람에게 시선을 주는 것에 대한 중요성, 뿐만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시선을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가면서 성장을 해 간다.

겉으로는 목적으로 대하지만 결코 마음을 내주지 않는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수단이다. 친구도, 가족도, 나 자신조차도. - p.13

친구는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생명체다. 저마다 비밀을 감추고 절대 속마음을 보여 주지 않는다. 껍질을 까도 또 다른 껍질이 나오니 알맹이를 보는 걸 포기했다. 아마 나는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평생 모를 것이다. - p.37

어쩌면, 아주 어쩌면 말이지, 사람들은 모두 각자만의 세계를 가진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외계인이라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헐뜯고,

그리고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 것이다. - p.142

인간은 나약하다. 너무 쉽게 부서지고 무너진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고 자신을 숨기며 끊임없이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그렇게 부서지고 무너지면서 강인해진다. 모순적이다.

모순적이기에 인간은, 삶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 p.214

율은 방관자 입장에서 조금씩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외계인들을 받아들이고, 부서지고 무너지며 강인해지는 모순적인 삶의 매력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면서 율은 땅바닥에서 친구들의 눈동자로, 시선을 옮겨간다. 어쩌면 시선을 옮기면서 성장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마음을 내어줄 수 없기에 다른 사라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면, 자신이 외계인에 가깝다고 생각한 율이 고향이 북극성이라 북극성이라 불리기 원하는 이도해와 눈을 마주치면서 인간이 원래가 무감각하고 무정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덕분에 김지민도, 서진욱도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자신만이 아니라, 세상을 보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시선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시선을 돌려서 마주한 이도해와 서진욱의 현실에서 율이 액션을 취할 수 있었기에 이도해는 살아남았고, 서진욱은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했다. 율은 성장했다.

이 책은 삶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내가 조금 일찍 알았으면 했더 세상을 보는 방법, 그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 액션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내가 이렇게 나이가 들었음에도 율의 시선이 나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아이는 용감했지만, 나는 그러지도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청소년들이 성장하는 율의 시선과 함께 성장해서, 액션을 취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세상에 너무 무관심하지 않기를, 그래서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보는 것도,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바라 볼 때, 그 시선을 느끼는 것도 우리는 익숙해지기를. 모두가 각자만의 세계를 가진 외계인임을 받아들이고, 주고 받는 시선에 익숙해지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강약약강. 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게, 약한 사람에게는 강하게. 그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이런 삶의 방식이 비열하다고 비난한다. 정작 본인도 그렇게 살고 있으면서. 나는 그들보다는 솔직했다. 적어도 인정할 줄은 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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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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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섬에 있는 서점>을 통해 알게 된 개브리얼 제빈 작가의 신작을 문학동네 서평단에 선정되어 다시 읽게 되었다. 표지에 등장하는 파도와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라는 제목에서 쉽게 이책에 전하고자 하는 바를 캐치할 수 있다. 험란한 삶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뿐만 아니라 책의 표지는 픽셀화 되어 있는 영문 텍스트와 파도 그림으로 이 책이 게임에 대한 이야기라는 힌트도 준다. 어릴 적 게임을 좋아했던 두 친구, 샘슨 매서와 세이디 그린이 대학생이 되어 보스톤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서 함께 게임을 만들게 되고, 처음 만든 게임이 대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약 15년간의 삶의 파도에 대한 이야기이다. 637페이지에 달하지만 책은 너무 잘 읽힌다.

컴퓨터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게임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련된 용어들은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그치만 이 책은 게임 프로그래밍이 중요한 건 아니다. 게임을 만들기 위해 뭉친 샘슨 매서와 세이디 그린, 두 사람의 우정이 이야기의 핵심이니까. 샘과 세이디는 두 사람 사이의 흔하디 흔한 오해들과 게임의 실패로 인한 자존감 하락 등은 그들 사이의 갈등으로 힘들어 한다. 그래서 샘슨 매서의 룸메이트로 등장해 샘과 세이디 사이의 갈등을 조절하고 두 사람 사람을 절대로 놓치않는 마크스 와타나베의 역할은 중요하다. 솔직히 등장 인물 중 가장 친구 삼고 싶은 캐릭터였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과연 남녀 사이에 우정이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아주 진부하지만 영원히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 다시한번 떠오른다. 많이 다른 듯 보이지만 참으로 비슷한 성향의 샘과 세이디는 자신들에 세운 회사의 이름처럼 서로에게 불공평한 게임(Unfair Game)을 한다. 샘은 자신이 가진 장애와 가난으로 열등감에 빠져있고, 세이디는 언제나 2인자라는 열등감에 빠져있다.

“딱 너 답다” 샘이 말했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혼자 끙끙 앓으면서 뭐가 문제인지 아무한테도 입을 열지 않고.”

“그건 너지.” 세이디가 말했다. - p.332

"네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안달인 거겠지, 안 그래? 내 게임에 온통 네 손도장을 찍고 싶어서.

이걸 네 게임이라고 부를 방법이 어디 없나 눈에 불을 켜고." - p.520 세이디.

그러다보니 두 사람의 관계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 본다. 어쩌면 너무나 비현실적인 마크스만이 두 사람의 가치를 완벽하게 인정해 준 것 같다. 그리고 세이디의 마지막 결론은....

"넌 어떻게 그걸 모르니? 연인은.... 흔해 빠졌어. 너랑 사랑을 나눈다는 생각도 괜찮았지만, 그보다 너랑 일하는 게 너무 좋았으니까. 인생에서 합이 딱 맞는 협력 파트너는 아주 귀하니까." - p.629 세이디.

조금 뜬금없긴 하다. 샘과 함께 일하는 게 너무 좋았다는 것 치고는 일의 결과로 인해 지속적으로 열등감을 느꼈던 건 세이디인데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세이디에게 계속 같이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한 샘은 어쩌면 진짜 합이 딱 맞는 협력 파트너인지 모르겠다. 나라면 일찌감치 포기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근데 개빈은 전작인 서점이야기에서 갑자기 게임 프로그래밍을 배경으로 두 친구들의 이야기를 쓰게 되었을까? 이는 소설의 첫 챕터 제목에서 잘 나타난다. "아픈 아이들" 샘과 세이디가 만난 곳은 병원이었고, 샘은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친 것뿐만 아니라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세이디는 아픈 언니로 인해 늘 뒤에 그림자로 있어야 하는 아픔을 게임으로 풀었다.

가끔 무시무시한 통증에 시달렸어. 죽고 싶다는 마음을 누르게 해준 유일한 건, 잠시 내 몸을 벗어나 완벽하게 기능하는 몸.

사실 완벽 그 이상이었지. 그런 몸에 들어가서 나 자신의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어 - p.119 샘

아픔을 간직한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게임은 두 사람의 인생을 닮아 있는 것 같다. <이치고>에서는 아이는 쓰나미에 휩쓸려 바다로 가고, 거기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다. 마치, 샘과 세이디가 육체적, 정신적 아픔과 싸워가며 진정 자신이 할 일을 찾아가는 것처럼. <세계의 양면>에서는 아직도 고통속에 있는 메이플타운의 샘과 역병이 창궐한 판타지 세계속의 세이디는 하나의 인물로 두 사람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아픔을 숨긴채 게임을 완성하기 위해서 스스로와 싸운다. <메이플월드>을 통해 이제 샘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마스트 오브 더 레블스>를 통해 세이디는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간다. 비록 샘과 세이디가 함께 만든 게임은 아니지만 <우리의 무한한 날들>은 어쩌면 앞으로를 위해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한발 물러서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샘은 더이상 1인용 게임이 아닌 <개척자>를 통해 세이디에게 손을 내민다. <매직아이>를 통해 두 사람은 다시한번 재회한다. 생각해보면 처음 샘과 세이디가 만났을 땐, 샘은 매직아이 속 이미지를 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새를 본다. 어쩌면 그 말은, 이제 진정한 세이디를 보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게이머는 첫 레벨에서 절대 ‘이기지’ 못한다. 이기는 법은, 세상에는 이기지 못하는 시합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p.299

이제 샘도 세이디도 겉으로 들어난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의미한 바를 볼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책의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 나오는 대사였다. 마크스는 "게임이 뭐겠어?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잖아. 무한한 부활과 무한한 구원의 가능성. 계속 플레이하다보면 언젠가는 이길 수 있다는 개념. 그 어떤 죽음도 영원하지 않아. 왜냐하면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으니까." (p.540)라고 했다. 여기서 책의 제목은 충분히 설명된다. 삶은 무한한 부활과 무한한 구원이지만 영원하진 않다는 것.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서 사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크스의 마지막 말이 좋았다.

네 인생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우연에 좌우됐을까?

네 인생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하늘 위 커다란 다면체 주사위의 굴림에 맡겨졌을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삶은 원래 다 그렇지 않나?

결국 자신이 뭔가를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네가 꼭 비디오 게임 프로듀서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너는 그 일에 유능했다.

- p.485 마크스 와타나베, 말을 길들이는 자.

나 역시도 내가 원하는 삶, 내가 선택한 삶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내일 또 내일 또 내일로, 그래서 내 삶에 유능했다고 기억하고 싶다.


네 인생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우연에 좌우됐을까? 네 인생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하늘 위 커다란 다면체 주사위의 굴림에 맡겨졌을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삶은 원래 다 그렇지 않나? 결국 자신이 뭔가를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고 네가 꼭 비디오 게임 프로듀서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너는 그 일에 유능했다. - P485

게이머는 첫 레벨에서 절대 ‘이기지’ 못한다. 이기는 법은, 세상에는 이기지 못하는 시합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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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이 쫓아오는 밤 (양장) - 제3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소설상 수상작 소설Y
최정원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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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제대로 된 스릴러물을 읽은 기분이다. 영어덜트소설상을 수상했다고 했지만, 소설Y 클럽 가재본 표지의 해시태그처럼 아이부터 어른까지 읽기에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주인공은 열일곱살의 신이서와 김수하. 갑자기 등장한 괴물에 맞서 싸우는 이 두 아이는 이미 아픔의 시간을 한번 겪어온 아이들이다.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일념하의 신이서와 마치 자신의 엄마처럼 시련에 맞서 싸우는 신이서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김수하.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방식으로 싸워나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이 두 아이들은 과거에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상처를 치유해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성장 소설이기도 하다. 

“도망쳐야 한다. 그놈보다 더 빨리.”

책의 카피 외에 더 어떤 말을 해서도 안될 것 같다. (스포일하고 싶지 않다.) 가재본이 영화 대본, A4 사이즈로 되어 있어서 가지고 다니며 읽기 힘들었어서 집에서 천천히 읽어야지 했었는데, 왠걸 시작하고 나니 끝까지 읽고서야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있었다. 단 하룻밤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책의 속도감과 각 인물에 담겨진 이야기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읽혀서 놀랐다. 몰입도 최고라는 표현에 반기를 들지는 못하겠다. 

그와 더불어, 책속의 ‘악마’에 대한 설정이 순간 소름 돋았다. “받아야 할 벌을 안 받고 있는 인간을 잡아먹고 산다는 악마”라는 누군가가 만들어준 캐릭터. 과연 우리는 죄를 짓지 않고 살고 있는지, 받아야 할 벌은 다 받고 정직하게 살고 있는지. 혹시, 이러한 이유로 ‘악마’를 정당화 시켜놓고 있지는 않은지, 나 역시도 ‘악마’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말이다. 

사람들의 이목이, 자신을 향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그 질책과 야유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수하가 두려워하는 건 자기 자신이었다.

분노. 자신을 비웃고 깎아내리는 이들을 모두 부숴 버리고 싶은 그 분노가 수하는 두려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침을 튀기며 나불대는 저 입을 뭉개고 싶은 욕망에 손이 떨렸다. 딱 한 대면 바닥에 주저앉아 자기가 잘못했다고 설설 길 텐데, 그럼 얼마나 통쾌할까.

- p.216

차마 마주 보기 두려운 눈.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주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쏟아 내는 저주들.

한순간 벼락같은 자각이 덮쳐왔다. 이서는 경련에 가깝게 어깨를 한 번 들먹였다.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날, 아마도 엄마가

기억하는 이서의 마지막 모습이 저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단 한순간이었다 해도 그때 이서의 악의는 진심이었으니까.

이서의 눈은 그 순간 바로 저렇게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 p.249

<폭풍이 쫓아오는 밤>은 앞이 안보이는 깜깜한 밤, 폭풍처럼 갑자기 들어닥친 ‘악마’같은 마음을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 이겨내는지에 대한 이야기 인지도 모른다. 도망칠 것인지, 아니면 맞서 싸울 것인지. 너무 무섭겠지만, 그래도 비겁해 지지 말자. 오늘은 그렇게 다짐해본다.

사람들의 이목이, 자신을 향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그 질책과 야유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수하가 두려워하는 건 자기 자신이었다.

분노. 자신을 비웃고 깎아내리는 이들을 모두 부숴 버리고 싶은 그 분노가 수하는 두려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침을 튀기며 나불대는 저 입을 뭉개고 싶은 욕망에 손이 떨렸다. 딱 한 대면 바닥에 주저앉아 자기가 잘못했다고 설설 길 텐데, 그럼 얼마나 통쾌할까. - P216

차마 마주 보기 두려운 눈. 평생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주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쏟아 내는 저주들.

한순간 벼락같은 자각이 덮쳐왔다. 이서는 경련에 가깝게 어깨를 한 번 들먹였다.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날, 아마도 엄마가 기억하는 이서의 마지막 모습이 저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단 한순간이었다 해도 그때 이서의 악의는 진심이었으니까. 이서의 눈은 그 순간 바로 저렇게 빛나고 있었을 것이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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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로 건너가는 법
김민철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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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김민철 작가님의 에세이 <내 일로 건거가는 법>은 카피라이터에서 이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팀장으로 이직한 작가님의 일의 세계를 이야기 한다. 비록 분야는 다를지라도, 이제 4년차 팀장으로 접어들고 있는 지금, 이 책을 읽으면서 시종일관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처음에는 이 책을 통해서 베테랑 팀장님의 해안을 빌려보고자 했었는데, 나는 오히려 이 책은 우리 팀원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졌다. 

아니라고는 하지만 나는 내가 지금하고 있는 일(회사가 아니라 일이다)을 사랑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일이 주는 성취감부터 힘들던 일을 어느덧 수월하게 처리할 때의 뿌듯함, 나의 힘으로 기어이 해냈을 때의 자기효능감, 힘을 합쳐서 함께 해냈을 때의 소속감, 실패를 통해 배우는 각종 가르침, 반복되며 쌓이는 각종 노하우까지.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자라게 한다.

- p.6 <프롤로그> 중에서

일하는 순간 만큼은 모든 열정을 다하고 있고, 일을 위한 자기개발로 조금씩 성장하는 나 자신을 은근 뿌듯해한다. 이 책 역시도 조금 더 나은 팀장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읽게 된 것이니 말이다. 

내가 팀장으로써 힘든 건, 내가 하고 있는 일 보다는 종종 내 마음과 같지 않은 팀원들 때문인 듯 하다. 어쩌면 그들을 포용하는 것도 내 일이겠지만 말이다. 내 마음은 그렇다. 이 일을 하면서 나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팀원들도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시키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도 하고, 의견도 내고, 좀더 능동적으로 움직여 주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작가님이 말하는 "수다력"이 너무너무 필요한데, 나의 내공으로는 그걸 이끌어내는 것이 너무 어렵다. 나 답지 않을 정도로 내 마음을 표현해 봐도 그걸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고, 어느덧 나는 길을 잃은 것 같다. 팀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팀장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지 않을까? 

책속엔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 너무 많다. 

여섯 시가 되었다고 무작정 퇴근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건 무책임한 거다. 여섯시에 퇴근해야 하니까 주어진 일을 대충하는 것도 아니다. 그건 무능력한 거다. 무책임과 무능력 없이 여섯 시에 퇴근을 하겠다는 건, 매 순간 촘촘히 날을 세우며 일하겠다는 다짐이자 태도다. - p.49

불행이도, 너희 팀장은 완벽하지 않단다. (중략) 나의 요철을 누구보다 팀 사람들이 잘 알아봐줬으면 해서. 다른 누구도 아닌 팀원들이 그 요철을 잘 메꿔줬으면 해서. 팀원들도 자신의 요철을 우리에게 솔직하게 보여줬으면 해서. 서로의 요철을 서로가 잘 메꾸면서 마치 톱니바퀴처럼 우리의 일이 잘 돌아갔으면 해서. - p.75

어떤 의견을 내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고, 어떤 어려움을 토로해도 같이 해결해줄 사람이 있다는 확신. 그게 꼭 팀장일 필요는 없다. 옆자리 선배가 될 수도, 앞자리 후배가 될 수도 있다. 그들이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더라도 상처를 입을 필요는 없다. 그것은 당신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팀의 결과물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한 의견이기 때문이다. - p.86

팀장은 어쩌다가 회사를 오래 다닌 사람이지, 독심술을 익힌 사람이 아니다. 생각을 말이라는 그릇에 담는 것. 담아서 남들 앞에 보여주는 것. 회사를 다니는 사람에게는 주어진 일을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고. - p.112

그게 어떤 아이디어건 간에 당신이 당신의 아이디어를 말하는 것과 동시에 그 아이디어의 주인은 회의실 안의 모두에게로 이관된다. 회의실 안의 구성원 모두가 아이디어들의 주인이다. (중략) 비판은 당신을 향한 비판이 아니고, 부족한 부분도 당신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당신이 처음 낸 아이디어에 다른 이의 아이디어가 덧붙어도 기분 나빠할 이유가 없다. 우리의 아이디어가 더 좋아지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 p.130

어째 책을 너무 팀장 입장으로만 읽은 것 같기도 하다. 그치만 나만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이러니 이 책을 팀원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을 수 밖에. 

사람 때문에 일을 관두고 싶은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버티는 건, 아직은 이 곳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있어서이다. 회사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서. 그깟(?) 사람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건 억울하다. 

팀장은 본질적으로 사랑받기 힘든 존재다. 사랑을 받더라도, 사랑만 받는 건 불가능한 존재다. 어떤 팀장이라서가 아니라, 팀장이 해야 하는 일 자체가 팀원들을 쉴 수 없도록 독려하고, 일을 더 잘해보자며 내몰고, 때론 일 자체에 어깃장을 놓기도 하고, 소리도 좀 높이기도 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냉정한 말도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p.163

아, 사랑받고 싶었는데.... 불가능한 것이라고 하니, 김민철 작가님의 영원한 팀장님인 박웅현 CP님처럼 '멀리 점을 찍어주는 사람'이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옳게 만들 수 있는 팀장'이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나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팀원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이게 단지 나의 욕심이 아니기를 바래본다. 알잘딱갈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 팀원들아 잘 부탁합니다. 저도 알잘딱갈센 할께요. 그것이 나의 일로 건너가는 법(내 일을 하는 법),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함께 할 수 있는 법, 각자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서로가 지원해 줄 수 있는 법, 그렇게 우리가 오늘에서 내일로 건너가는 법이기도 한 것 같다.



일이 주는 성취감부터 힘들던 일을 어느덧 수월하게 처리할 때의 뿌듯함, 나의 힘으로 기어이 해냈을 때의 자기효능감, 힘을 합쳐서 함께 해냈을 때의 소속감, 실패를 통해 배우는 각종 가르침, 반복되며 쌓이는 각종 노하우까지.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자라게 한다. - P6

팀장은 본질적으로 사랑받기 힘든 존재다. 사랑을 받더라도, 사랑만 받는 건 불가능한 존재다. 어떤 팀장이라서가 아니라, 팀장이 해야 하는 일 자체가 팀원들을 쉴 수 없도록 독려하고, 일을 더 잘해보자며 내몰고, 때론 일 자체에 어깃장을 놓기도 하고, 소리도 좀 높이기도 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냉정한 말도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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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워크숍 오늘의 젊은 작가 36
박지영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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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건강제 종료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아주 작은 비겁함과 다정함입니다. 그것이 우리를영원히 멈추지 않게 도와준다면 우리는 더 비겁해지고 더 다정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고독사 워크숍이 필요한 겁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적이란 밍기적뿐이라는 말도 있지않습니까. 잠시 멈추고 증발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건 대체 불가가 아닌 서로가 서로에게 대체 가능한 인간이란 걸 공유된 고립의 훈련을 통해체득해야 한다 이겁니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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