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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하는 일본 최후의 해법 - 저출산·초고령화 국가 일본에서 찾는 한국의 생존 전략
정영효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25년 9월
평점 :
#1. 왜 일본인가?
일본은 우리보다 약 20년 먼저 초저출산·초고령화 사회를 경험한 나라다. 그리고 지금, 그 오랜 시간의 끝에서 인구 절벽의 실체와 그 여파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저자는 일본 특파원으로서 장기간 현지에서 체류하며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변화한 일본 사회의 단면들을 직접 목격했다. 이 책은 단순한 관찰을 넘어, 일본 정부와 지자체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한 다양한 정책과 그 성과를 생생히 담고 있다. 특히 히가시카와, 나가레야마, 나기초 같은 성공적인 지방의 사례는 곧 저출산의 파고를 맞이하게 될 한국에게 귀중한 선행연구서이자 현실적 교과서라 할 수 있다.
#2. 저출산고령화사회가 지속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책에서 가장 먼저 다루는 일본의 현실은 ‘노동 인구 감소’이다. 인력 부족은 사회 전반에 균열을 일으킨다. 버스 운전원이 부족해 노선이 줄고, 편의점과 식당은 아르바이트생을 구하지 못해 문을 닫는다. 건설현장은 인부가 없어 공사가 지연되고, 물류 분야는 기사 부족으로 배송이 늦어진다. 일본의 일상 속 이런 모습들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사회 기반이 흔들리는 위기의 신호다. 한국 역시 2030년부터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들 전망이라, 이 문제는 먼 미래가 아닌 곧 닥칠 현실이다.
#3. 갑과 을이 바뀌고 있는 취업시장
일본의 인력난은 고용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었다. 이제는 구직자가 아닌 기업이 ‘을’의 입장이다. 신입사원을 유치하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대신 갚아주거나, 급여와 복지를 대폭 상향하는 등 경쟁이 치열하다. 명문대 졸업자는 대기업 몇 곳 중 골라 들어가는 ‘취업자 전성시대’를 맞았다. 그러나 이는 구조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저출산이라는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인력난은 단지 미봉책으로 잠시 숨을 고를 뿐이라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4. 일본이 시도하고 있는 해결책
일본은 인력난을 극복하기 위해 생산성 향상과 기술 자동화에 집중하고 있다. 굴절버스를 도입해 한 번에 더 많은 승객을 수송하고, 외식업과 숙박업에서는 키오스크와 로봇을 활용해 최소 인원으로 최대 효율을 내고 있다. 또 특정기능제도를 통해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력을 가진 외국인을 적극 유입하며 인력풀을 확장하고 있다.
물류 분야에서는 더블트레일러, 무인트럭, 자율주행 고속도로 등 기술혁신을 통해 운송 효율을 높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일본은 ‘노동’이라는 사회 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치고 있다.
#5. 일본의 성공사례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일본의 ‘지방 소멸 대응 모델’이다.
히가시카와 – 사진이 만든 기적의 마을
일본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늘고 있는 지방 도시다. 1985년, 마을이 통합 위기를 겪던 시절 ‘사진 수도’라는 정체성을 내세워 지역을 브랜드화했다. 건축 조례를 엄격히 관리하며 미관을 유지했고, 문화시설을 유치해 도시 못지않은 생활환경을 만들었다. 힙한 상점, 맛집, 자연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마을은 외지인의 유입을 꾸준히 끌어내고 있다.
나가레야마 – 육아 천국의 도시
어린이집을 17개에서 104개로 확대하고, 출퇴근 부모를 위한 ‘보육 스테이션’을 설치했다. 역 근처에 아이를 맡기면 어린이집까지 안전하게 이동시켜주고, 밤 9시까지 운영되는 야간보육과 저녁식사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맞벌이 부부를 배려한 정책으로 젊은 가족들이 몰려들고 있다.
나기초 – 공동육아와 일자리의 마을
‘일자리편의점’을 통해 단기 알바를 연결하고, ‘나기차일드홈’ 제도를 통해 마을 어르신이 아이를 돌보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부모는 일하고, 어르신은 사회와 연결되는 상생의 구조다. 경제적 지원보다 공동체적 돌봄이 중심이 된 이 모델은 진정한 지속 가능성을 보여준다.
#6.
저출산과 고령화는 인구 수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구조’의 문제다. 일본의 실패에서 배우고, 성공 사례에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
지방 소멸을 막는 길은 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니라,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드는 것에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도시와 공동체를 만드는 일. 그것이 우리가 일본의 교훈을 통해 얻어야 할 ‘최후의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