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PD의 미식기행, 목포 - 역사와 추억이 깃든 우리 맛 체험기
손현철.홍경수.서용하 지음 / 부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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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훌쩍 떠나는 주말여행이 좋아졌다. 구석구석 잘 뚫린 도로망 때문에 1박 2일 정도면 미처 몰랐던 우리 국토의 절경을 맛보고 올 수 있다. 굳이 맛본다‘는 표현을 쓴 것은 아름다운 풍광과 더불어 그 고장의 진미를 맛보는 걸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자연풍경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동반자와 함께라면 음식은 때로 그 여행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반려자를 배려하다 보니 지난 해부터 다닌 여행의 테마는 일관되게 ‘남쪽으로 간다’다. 영월, 군산, 여수, 통영으로 돌았으니 가히 ‘항구로 간다’고 덧붙여도 괜찮을 것 같다. 여행을 가기 전이면 각 도시의 대표적 ‘음식’과 ‘맛집’을 검색한다. 이왕이면 관광객 중심의 식당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 위주로. 서울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그 지방의 토속색이 드러나는 메뉴로. 그러나 깨알같이 맛집 정보는 챙기면서도, 그 지역에 왜 그런 음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지, 요리법의 특색이 자리잡게 된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드물다. 그러나 책 속에서 롤랑 바르트의 예를 들어 말했듯이 ‘안다는 건 곧 맛본다’는 것이다.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나는 그 사실을 빌 버포만의 <앗 뜨거워>를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뉴요커>의 문학기자였던 빌 버포드는 마리오 바탈리를 만나고, 그 매력에 휘쓸린 나머지 그의 주방에서 '지옥같은 1년'을 보내고, 그 맛의 원류를 찾아 이탈리아 투스카니로 떠난다. 그곳에서 푸주한(정육업자) 도제수업까지 받는다. 세련된 뉴요커, 아무리 요리를 잘해봤자 푸디(foodie)에 불과했던 그는 이탈리아 요리의 근원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칼을 잡고 새끼 돼지 한마리를 도살한다. 잘 나가는 잡지 기자를 그만두고 시골에 처박힌다. 과연, 왜 그랬을까. '카사링가'란 말이 있다. '손으로 만드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한 지방의 역사와 문화가 응축된 전통요리란 대개 손으로 만들어 손으로 이어진다. 그 맛의 기억은 그러나 장인이 죽으면 땅에 묻혀진다. 그렇기에 '음식을 아는 것'에서 나아가 '음식을 제대로 하는 것'은 이런 사멸에 저항하는 행위다. 아니. 이런 거창한 비유를 떼놓고 생각해봐도,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벌교 꼬막을 귀신같이 챙기는 우리 식구만 봐도.  


나는 아직까지 제대로 목포에 가보지 않았다. 저자인 세 명의 다큐 PD들은 목포야말로 ‘호남맛’의 진수라고 말한다. 목포는 남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개미(곰삭은 맛)’의 집산지이자 개성적이고 차별화된 맛집이 모여 있고, 1897년 개항 이후 근대와 현대 그리고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져,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재료의 맛을 꽉 잡아주는 참기름의 역할이나, 다채로운 조리법으로 혀를 즐겁게 해주는 맛의 오케스트라(여기에 중요한 것이 발효의 과학이다)에 대한 언급은, TV의 숱한 음식 프로그램이나 여행 프로그램이 얼마나 겉핥기식 지식으로 우리를 호도하는지 보여준다.


이제 본격적으로 음식 이야기로 접어든다. 제일 먼저 민어. 크기와 굵기에서 일단 먹고 들어가는 민어는 목포에서도 비싼 값 주고 먹어야하는 귀한 생선이다. 활어 중심인 우리나라지만 민어만큼은 24시간 숙성시킨 선어회로 먹어야한단다. 이어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입천장이 벗겨질 만큼’ 그리고 ‘콧속이 뻥 뚫릴 만큼’ 해결해주는 홍어. 그리고 목포의 세발낙지. 가장 인상적인 건 탕탕낙지와 호롱구이다. 낙지를 소금물에 넣으면 바로 기절하는데 그 기절한 낙지를 칼로 탕탕 다져 달걀노른자와 참기름을 뿌려주는 그야말로 ‘목포의 맛’이란다. 그 외에도 목포사람들이 물 먹듯 먹는 콩물과 조기, 팥죽과 게살무침과 갈치, 한정식 부럽잖은 백반까지 속속들이 파고든다.


유명한 맛집부터 서민적인 맛집까지 저자들이 소개하는 맛집을 정신없이 눈으로 탐하고 나면 이내 허기가 몰려든다. 미슐랭 별 두 개 이상의 맛집을 본 것도 아닌데, 지금 당장 떠나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여진다. 재료의 맛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혜를 더한 요리들과 현지인들도 퍼질고 앉아 먹음직한 소박하지만 정감 가는 음식점, 이 풍부한 먹거리를 가능케 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까지 저자들이 깔아준 밥상은 넉넉하고도 감칠맛 넘친다.


세 명의 저자는 ‘관광지의 맛이 아닌, 맛보러 떠나는 여행’의 첫 미행지로 ‘목포’를 택했다. 즉 제 2, 제3의 도시가 그들의 ‘미식기행’에 걸려들게 된단 소리다. 2탄이 언제 나올지 모르지만, 독자로서 기다림이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목포의 작고 찰진 ‘세발낙지’의 맛을 논한 이들이 여수의 ‘밀낙지’는 얼마나 세세하게 풀어내줄까. ‘짬뽕 명가’가 유독 많다는 군산의 비밀은, ‘다찌집’으로 유명한, 목포와 ‘미항’을 두고 견주는 통영만의 ‘맛지도’는 어떻게 풀어낼까.


한 도시를 중심으로 풀어낸 음식 기행. 부키가 야심만만하게 시작한 이 시리즈가 남도를 넘어 충청, 경기도까지 죽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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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훌쩍 떠나는 주말여행이 좋아졌다. 구석구석 잘 뚫린 도로망 때문에 1박 2일 정도면 미처 몰랐던 우리 국토의 절경을 맛보고 올 수 있다. 굳이 맛본다‘는 표현을 쓴 것은 아름다운 풍광과 더불어 그 고장의 진미를 맛보는 걸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자연풍경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동반자와 함께라면 음식은 때로 그 여행의 ’전부‘가 되기도 한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반려자를 배려하다 보니 지난 해부터 다닌 여행의 테마는 일관되게 ‘남쪽으로 간다’다. 영월, 군산, 여수, 통영으로 돌았으니 가히 ‘항구로 간다’고 덧붙여도 괜찮을 것 같다. 여행을 가기 전이면 각 도시의 대표적 ‘음식’과 ‘맛집’을 검색한다. 이왕이면 관광객 중심의 식당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가는 식당 위주로. 서울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그 지방의 토속색이 드러나는 메뉴로. 그러나 깨알같이 맛집 정보는 챙기면서도, 그 지역에 왜 그런 음식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지, 요리법의 특색이 자리잡게 된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이 드물다. 그러나 책 속에서 롤랑 바르트의 예를 들어 말했듯이 ‘안다는 건 곧 맛본다’는 것이다.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나는 그 사실을 빌 버포만의 <앗 뜨거워>를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뉴요커>의 문학기자였던 빌 버포드는 마리오 바탈리를 만나고, 그 매력에 휘쓸린 나머지 그의 주방에서 '지옥같은 1년'을 보내고, 그 맛의 원류를 찾아 이탈리아 투스카니로 떠난다. 그곳에서 푸주한(정육업자) 도제수업까지 받는다. 세련된 뉴요커, 아무리 요리를 잘해봤자 푸디(foodie)에 불과했던 그는 이탈리아 요리의 근원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칼을 잡고 새끼 돼지 한마리를 도살한다. 잘 나가는 잡지 기자를 그만두고 시골에 처박힌다. 과연, 왜 그랬을까. '카사링가'란 말이 있다. '손으로 만드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한 지방의 역사와 문화가 응축된 전통요리란 대개 손으로 만들어 손으로 이어진다. 그 맛의 기억은 그러나 장인이 죽으면 땅에 묻혀진다. 그렇기에 '음식을 아는 것'에서 나아가 '음식을 제대로 하는 것'은 이런 사멸에 저항하는 행위다. 아니. 이런 거창한 비유를 떼놓고 생각해봐도,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벌교 꼬막을 귀신같이 챙기는 우리 식구만 봐도.  


나는 아직까지 제대로 목포에 가보지 않았다. 저자인 세 명의 다큐 PD들은 목포야말로 ‘호남맛’의 진수라고 말한다. 목포는 남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개미(곰삭은 맛)’의 집산지이자 개성적이고 차별화된 맛집이 모여 있고, 1897년 개항 이후 근대와 현대 그리고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져,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재료의 맛을 꽉 잡아주는 참기름의 역할이나, 다채로운 조리법으로 혀를 즐겁게 해주는 맛의 오케스트라(여기에 중요한 것이 발효의 과학이다)에 대한 언급은, TV의 숱한 음식 프로그램이나 여행 프로그램이 얼마나 겉핥기식 지식으로 우리를 호도하는지 보여준다.


이제 본격적으로 음식 이야기로 접어든다. 제일 먼저 민어. 크기와 굵기에서 일단 먹고 들어가는 민어는 목포에서도 비싼 값 주고 먹어야하는 귀한 생선이다. 활어 중심인 우리나라지만 민어만큼은 24시간 숙성시킨 선어회로 먹어야한단다. 이어 세상살이의 고단함을 ‘입천장이 벗겨질 만큼’ 그리고 ‘콧속이 뻥 뚫릴 만큼’ 해결해주는 홍어. 그리고 목포의 세발낙지. 가장 인상적인 건 탕탕낙지와 호롱구이다. 낙지를 소금물에 넣으면 바로 기절하는데 그 기절한 낙지를 칼로 탕탕 다져 달걀노른자와 참기름을 뿌려주는 그야말로 ‘목포의 맛’이란다. 그 외에도 목포사람들이 물 먹듯 먹는 콩물과 조기, 팥죽과 게살무침과 갈치, 한정식 부럽잖은 백반까지 속속들이 파고든다.


유명한 맛집부터 서민적인 맛집까지 저자들이 소개하는 맛집을 정신없이 눈으로 탐하고 나면 이내 허기가 몰려든다. 미슐랭 별 두 개 이상의 맛집을 본 것도 아닌데, 지금 당장 떠나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여진다. 재료의 맛을 끌어올리기 위해 지혜를 더한 요리들과 현지인들도 퍼질고 앉아 먹음직한 소박하지만 정감 가는 음식점, 이 풍부한 먹거리를 가능케 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까지 저자들이 깔아준 밥상은 넉넉하고도 감칠맛 넘친다.


세 명의 저자는 ‘관광지의 맛이 아닌, 맛보러 떠나는 여행’의 첫 미행지로 ‘목포’를 택했다. 즉 제 2, 제3의 도시가 그들의 ‘미식기행’에 걸려들게 된단 소리다. 2탄이 언제 나올지 모르지만, 독자로서 기다림이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목포의 작고 찰진 ‘세발낙지’의 맛을 논한 이들이 여수의 ‘밀낙지’는 얼마나 세세하게 풀어내줄까. ‘짬뽕 명가’가 유독 많다는 군산의 비밀은, ‘다찌집’으로 유명한, 목포와 ‘미항’을 두고 견주는 통영만의 ‘맛지도’는 어떻게 풀어낼까.


한 도시를 중심으로 풀어낸 음식 기행. 부키가 야심만만하게 시작한 이 시리즈가 남도를 넘어 충청, 경기도까지 죽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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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록을 부탁해 - 두시탈출 컬투쇼 이재익 PD의 로맨틱 하드록 에세이
이재익 지음 / 가쎄(GASSE)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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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라고 장정일은 말했다.  

장정일 식으로 이재익 작가에 대해 말해본다.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빽판 아닌 오리지널 LP와 수입CD와 그 음악을 같이 들을 수 있는 소녀였다." 쯤 되지 않으려나.

88년 올림픽이 열렸을 때 나는 고등학교 2학년생이었다. 골든팝스를 들으며 중학교를 보냈고, 자주 전영혁의 25시를 들었으며, 내 이어폰에서는 늘 메탈리카나 건즈앤로지즈 등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성시완을 좋아했던 둘째는 프로그레시 록에 빠져 있었고, 넉 살 차이의 동생은 데스메탈을  들으며 사춘기의 무료한 권태와 싸우던 시기였다.  

그 시절을 이재익 작가가 말한다. 시골에 올라와 까무러치도록 공부해야만 무리에 낄 수 있었던 압구정 소년의 고독. 그 뒤에 배경음악처럼 깔리던 하드록과 메탈의 기운을. 미스터 빅, 데프레파트, 메탈리카 VS 메가데스, 익스트림, 레드 제플린, 건즈앤로지즈, 너바나라는 걸출한 일곱 그룹의 이야기를.  

사실, 웬만한 마니아들은 다 아는 이야기이고, 음악에 대한 접근이나 추억을 풀어나가는 솜씨도 쉽게 갔구나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지만, 그저 그 시절을 건너왔다는 것만으로도 킬킬대며 추억할 수 있어 즐거웠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의 두께와 디자인 적 요소. 쌍팔 년도라 보기에도 아쉬운 만듦새는 가쎄 출판사의 인디적인 면모 때문에 넘어가겠지만, 좀더 원고 분량을 늘릴 수는 없었을까 아쉽다. 특히 소녀의 후일담은, 아마도 소설로 나오지 않을까 추측되는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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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이네 집 - 작지만 넉넉한 한옥에서 살림하는 이야기
조수정 지음 / 앨리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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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잘나가던 영화잡지 기자였고, 지금은 누구보다 참신한 미디어 관련 기사들을 전송하고 있는 지인의 가회동 집에 놀러간 일이 있다. 채송화만큼 나지막한 키의 작은 한옥. 한때 이곳은 그의 ‘언니’중 한 명인 배우 모씨가 거처하던 집이었다고 했다. 하얀 광목과 자연스레 낡아간 나무의 색감이 주를 이루는 이곳에서 그는 고양이처럼 편안해 보였다. 오종종 냄비며 국자가 대들보 밑에 걸려 있는 주방에서, 몸을 재게 놀려 스파게티를 만드는 그녀. 손수 타일을 붙여 만들었다는 테이블에 앉아 조분조분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새 뽀얀 김을 내며 토마토소스의 스파게티가 내 앞에 놓여 있었다. 시모기타자와의 어느 카페에서나 봄직한 그 테이블과 창문 아래로 온통 지붕이 층층 계단을 이루던 그 밤 풍경. 햇빛이 뽀송뽀송 이불을 말려주는 이 집에서 살다보니, 아침밥을 차려 먹게 되고 늦잠을 자지 않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었다.


[율이네 집]은 그 가회동 집과 밤풍경을 떠올리게 만든다. 집이 주는 위로와 온기를,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집의 좋은 기운을.

대학시절, 오래된 한옥이 주는 위로를 잊지 못하던 저자는 닮은꼴 남편과 함께 통의동 작은 한옥에 둥지를 튼다. 책 속의 율이네 집은 기와지붕이 있고, 마당이 있고, ‘평상’을 떠올리게 하는 바깥마루가 있고 낮은 담이 있다. 그리고 손수 기른 허브 야채를 뜯어 소박하지만 정성스런 식탁을 차리는 남편이 있고, “할아버지가 된 집이 있어. 바로바로 한옥이야. 왜냐면 옛날애 만든 거니까.”라고 말하는 고운 감수성의 아들이 있고, 누가 버린 창틀을 뚝딱 고쳐 액자로 쓰는 남다른 감각의 엄마가 있다. 잡지 화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멋 부리지 않았지만 멋스런 이 집의 꾸밈새와 이들의 사는 법은 날 매혹시켰다. 이들은 버려진 것의 새로운 쓰임을 찾아주고, 오래된 것들의 따스함을 즐길 줄 안다. 투박해도 손수 만든 것들의 위트를 즐길 줄 안다. ‘빈티지’라는 이름으로, 엉뚱하게 새 것을 낡아 보이게 만드는, ‘겉멋’에서 벗어난 그들의 그 느림과 로하스의 삶.


작은 한옥에서 사는 일은 그러나 쉽지 않다. 아파트에 익숙해진 몸을 작은 한옥에 편안하게 부려 놓을 때까지 이들 부부는 비움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비우려면 버려야 했다. 이고지고 살았던, 꼭꼭 쟁여둔 살림살이들을 하나 둘 이웃과 친구에게 다 줘버린 다음에야 그 집은 율이네 가족을 환영해주었다.

이 과정을 보며, 스스로를 돌아본다. ‘언젠가 필요하겠지’라는 마음으로 미련하게 움켜쥐고 있던 나의 자질구레한 살림도구들을, 그 속에 켜켜히 서린 욕심을. 없어도 그만인 것들로 나를 꽉 채우고 살았던 나날을.

사실, 한옥에 아니 주택에 한 번만이라도 살아본 이라면 알 것이다. 주택에서 산다는 건, 편리하디 편리한 아파트가 제공하는 온갖 이기利器에서 소외된다는 걸. 이음새가 맞지 않는 창문 사이로 외풍이 들어오고, 작은 벌레들이 자주 찾아오고, 잔디도 나무도 가꾸지 않으면 죽기 일쑤이고, 나무 바닥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고... 그러나 [율이네 집]을 읽으면 그런 불편도 감수할만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자연이 본래 편리함만을 제공했던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죽이면서 인간의 편리만을 챙겨온 게 이제껏 인류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의식주衣食衣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식의주食衣衣라고 한다). 먹고 살기 팍팍했던 시절엔 집은 가장 나중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때론 집이 먹을거리를 바꾸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율이 엄마’ 조수정씨는 이 담백한 집에선 무얼 먹을까 고민하고, 어떤 먹거리를 사야할 지 고민하고 어디에서 사야할 지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집이 삶의 방향도 결정짓는 것이다. 그리하여 집은 ‘사람들 각자의 작은 우주’가 되는 것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언젠가 한옥에 살아볼 꿈을 꾼다. 내 경우는 주택의 불편함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반려자의 반대가 만만치 않을 터다. 그래도 꿈꿔본다. 대들보가 있고 마당이 있는 집을. 창호지는 아니더라도 햇빛이 아련히 드는 창을 가진 집을. 삐걱 소리가 정다운 여닫이로 여는 나무 문이 달린 집을. 그리고 그 집으로 인해 자연과 더 가깝게 변화해갈 나의 삶을. 단출하고 느리지만, 그리하여 야무진, 그런 삶을.

[율이네 집]이 내게 안겨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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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1 세미콜론 코믹스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김희정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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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뜬 하늘엔 올빼미가 날고, 옥색긴꼬리 산누에 나방은 푸드덕

대고, 물맞이게는 밭을 횡단해 걸어간다. 때로 자두를 따먹으러 곰이

출몰하기도 한다. 토호쿠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 ‘코모리’. 간단한

물건을 사러 가려면, 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중심까지 자전거를 타고도

족히 30분은 걸리는 이 산골마을이 ‘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의

무대다.

 


little forest
 

이십대 처녀인 이치코는 상채기만을 안긴, 도시생활을 버리고 고향인

이곳으로 돌아왔다. 7년 전, 갑자기 떠나버린 엄마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 산골의 작은 집으로.

그녀는 머위풀로 된장무침을 만들고, 비를 맞아 터져버린 봄양배추를

뜯어 요리를 만들고, 주변에서 자란 두릅과 민트로 튀김을 만든다. 엄

마가 일러준 대로 우스터소스도 만들고, 빵도 굽는다. 요리 하나에

시골 삶의 굽이굽이가 보이고 과거와 현재가 오버랩되고, 상처 받은

마음이 따뜻해진다.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던 빨간 수유 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갓 찧은 하얀 낫토떡, 엄마의 추억이 얽힌 머위된장,

벼베기를 하며 새참으로 먹는 햇호두를 넣은 호두밥의 감칠 맛.....

왜 작가가 요리라는 소재로, 시골의 생활을 풀어나가는지 읽어보면 안다.
 

 


little forest


시골에서 음식을 만든다는 건 단순한 도락이 아니니까. 다듬어져 나오는

야채와 인스턴트 재료를 사다가, 뚝딱 차리는 도시의 식탁과 달리,

이곳에서는 무엇 하나 수월하지 않다. 그렇기에 달걀 노른자가 터져

흐른 자국까지 빵으로 싹싹 닦아 먹는다. 땀과 시간을 들여 직접 길러

낸 재료를 가지고, 내 손으로 만들어먹는 이 ‘자급자족의 식탁’엔 왕후

장상의 식탁에서도 맛볼 수 없는 진미가 가득하다. 힘든 노동 속엔

추억이 섞이고, 지혜가 담기는 법이니까. 난 [리틀 포레스트]를 보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의 대단함을, 그런 자연과 마주대하는 농사짓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그들의 땀이 영글은 채소와 과일에 대한 감사를

되새김질한다.


아는 선배 중에, 저 강원도 산꼭대기로 옮겨간 이가 있다. 뛰어난 감수성과

재주, 불안한 영혼의 그 선배는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도시에서 사는 내내

“불우하다”고 노래했었다. 미친 듯한 연애와 술과 때론 발작적으로 동해안을

향하는 짧은 여행 사이사이, 그는 계속 박용하의 시를 빌어 “좇같은 세상”

이라 읊어댔다. 이탈리아에서 3년, 제주에서의 1년을 마지막으로 그는

강원도에 정착했고 손수 집도 만들고, 구절초 꽃밭도 일궈 지금은 성공한

‘낙향 농부’로, 세월을 재배하며 살고 있다. 농사는 때를 놓치면 안 된다.

거름을 주는 것도, 솎아내는 것도, 땅을 가는 것도 자연의 섭리에 맞는 ‘때’

를 놓치면 말짱 헛것이다. 그렇게 바지런히 몸을 놀리는 그이의 글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은 왜 영혼의 치유제인지, 노동이 왜 영혼을 건강하게 만드는

지 새삼 알겠다.  



이 책 [리틀 포레스트]는 저자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그래픽 노블이다. 1994년 경 고향에 내려간 그이는 지금껏 그곳에 살며 자

급자족 생활과 요리를 이어가고 있다. 이 작품으로 데즈카 오사무 상에 노미

네이트되었다고 한다. 이건 1권, 앞으로 몇 권이 나올지 모르지만 꼭 챙겨

읽어볼 참이다.

너무나 담백해서, 읽는 당시엔 미처 자리잡지 못했던 감동이 책을 덮고

한 시간, 두 시간이 흐른 뒤에나 떠오르는 이 책. 만화라 폄하하기엔 장점이

너무 많다. 그 중에 제일은 오랜 만에, 힘줘 말하거나, 꾸며내 말하는 법이

없는, 정직한 작가를 만났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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