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이네 집 - 작지만 넉넉한 한옥에서 살림하는 이야기
조수정 지음 / 앨리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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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잘나가던 영화잡지 기자였고, 지금은 누구보다 참신한 미디어 관련 기사들을 전송하고 있는 지인의 가회동 집에 놀러간 일이 있다. 채송화만큼 나지막한 키의 작은 한옥. 한때 이곳은 그의 ‘언니’중 한 명인 배우 모씨가 거처하던 집이었다고 했다. 하얀 광목과 자연스레 낡아간 나무의 색감이 주를 이루는 이곳에서 그는 고양이처럼 편안해 보였다. 오종종 냄비며 국자가 대들보 밑에 걸려 있는 주방에서, 몸을 재게 놀려 스파게티를 만드는 그녀. 손수 타일을 붙여 만들었다는 테이블에 앉아 조분조분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새 뽀얀 김을 내며 토마토소스의 스파게티가 내 앞에 놓여 있었다. 시모기타자와의 어느 카페에서나 봄직한 그 테이블과 창문 아래로 온통 지붕이 층층 계단을 이루던 그 밤 풍경. 햇빛이 뽀송뽀송 이불을 말려주는 이 집에서 살다보니, 아침밥을 차려 먹게 되고 늦잠을 자지 않게 되었다고 그는 말했었다.


[율이네 집]은 그 가회동 집과 밤풍경을 떠올리게 만든다. 집이 주는 위로와 온기를,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집의 좋은 기운을.

대학시절, 오래된 한옥이 주는 위로를 잊지 못하던 저자는 닮은꼴 남편과 함께 통의동 작은 한옥에 둥지를 튼다. 책 속의 율이네 집은 기와지붕이 있고, 마당이 있고, ‘평상’을 떠올리게 하는 바깥마루가 있고 낮은 담이 있다. 그리고 손수 기른 허브 야채를 뜯어 소박하지만 정성스런 식탁을 차리는 남편이 있고, “할아버지가 된 집이 있어. 바로바로 한옥이야. 왜냐면 옛날애 만든 거니까.”라고 말하는 고운 감수성의 아들이 있고, 누가 버린 창틀을 뚝딱 고쳐 액자로 쓰는 남다른 감각의 엄마가 있다. 잡지 화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멋 부리지 않았지만 멋스런 이 집의 꾸밈새와 이들의 사는 법은 날 매혹시켰다. 이들은 버려진 것의 새로운 쓰임을 찾아주고, 오래된 것들의 따스함을 즐길 줄 안다. 투박해도 손수 만든 것들의 위트를 즐길 줄 안다. ‘빈티지’라는 이름으로, 엉뚱하게 새 것을 낡아 보이게 만드는, ‘겉멋’에서 벗어난 그들의 그 느림과 로하스의 삶.


작은 한옥에서 사는 일은 그러나 쉽지 않다. 아파트에 익숙해진 몸을 작은 한옥에 편안하게 부려 놓을 때까지 이들 부부는 비움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비우려면 버려야 했다. 이고지고 살았던, 꼭꼭 쟁여둔 살림살이들을 하나 둘 이웃과 친구에게 다 줘버린 다음에야 그 집은 율이네 가족을 환영해주었다.

이 과정을 보며, 스스로를 돌아본다. ‘언젠가 필요하겠지’라는 마음으로 미련하게 움켜쥐고 있던 나의 자질구레한 살림도구들을, 그 속에 켜켜히 서린 욕심을. 없어도 그만인 것들로 나를 꽉 채우고 살았던 나날을.

사실, 한옥에 아니 주택에 한 번만이라도 살아본 이라면 알 것이다. 주택에서 산다는 건, 편리하디 편리한 아파트가 제공하는 온갖 이기利器에서 소외된다는 걸. 이음새가 맞지 않는 창문 사이로 외풍이 들어오고, 작은 벌레들이 자주 찾아오고, 잔디도 나무도 가꾸지 않으면 죽기 일쑤이고, 나무 바닥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고... 그러나 [율이네 집]을 읽으면 그런 불편도 감수할만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자연이 본래 편리함만을 제공했던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죽이면서 인간의 편리만을 챙겨온 게 이제껏 인류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의식주衣食衣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식의주食衣衣라고 한다). 먹고 살기 팍팍했던 시절엔 집은 가장 나중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때론 집이 먹을거리를 바꾸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율이 엄마’ 조수정씨는 이 담백한 집에선 무얼 먹을까 고민하고, 어떤 먹거리를 사야할 지 고민하고 어디에서 사야할 지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국 집이 삶의 방향도 결정짓는 것이다. 그리하여 집은 ‘사람들 각자의 작은 우주’가 되는 것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언젠가 한옥에 살아볼 꿈을 꾼다. 내 경우는 주택의 불편함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반려자의 반대가 만만치 않을 터다. 그래도 꿈꿔본다. 대들보가 있고 마당이 있는 집을. 창호지는 아니더라도 햇빛이 아련히 드는 창을 가진 집을. 삐걱 소리가 정다운 여닫이로 여는 나무 문이 달린 집을. 그리고 그 집으로 인해 자연과 더 가깝게 변화해갈 나의 삶을. 단출하고 느리지만, 그리하여 야무진, 그런 삶을.

[율이네 집]이 내게 안겨준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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