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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교사 추락 사건 - 제1회 소원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소원어린이책 30
정율리 지음, 해마 그림 / 소원나무 / 2026년 1월
평점 :
#협찬 #솔직후기

굉장히 현대적인 것과 엄청나게 구시대적인 시선이 얽혀 새로운 동화가 탄생했네요. 제목만 읽고서는 미스터리 추리물일까 잠시 고민도 해 보았지만 몇 줄만 읽어도 알 수 있었지요. '아, 초등 아이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다룬 동화구나!' 작가가 누군가 궁금해지는 이야기였어요.
일단 제목에서 강한 호기심을 유발했던 상담 교사는 AI 모드니였습니다. 누군가가 옥상에서 밀쳤다고 '믿어지는' 사건의 주인공이지요. 모드니는 이로운 초등학교 상담 교사로 일하면서 각종 자료와 정보에 의거한 정교한 진단을 내려 따뜻하게 때론 엄격하게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었어요. 그런 모드니가 추락해서 좋을 사람이 있을까? 궁금증이 몰려왔답니다.
이로운 초등학교에 다니는 6학년 여자아이 세 명이 나옵니다. 겉으로 보아서는 별다른 구석이 없는 평범한 소녀들이었지만 각자의 사연을 들어보면 저마다의 아픔이 있었어요. 엄격하면서도 폭력적인 엄마와 단둘이 사는 희주,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위장 이혼을 한 부모님과 사는 시연, 갑작스러운 사고로 엄마는 돌아가시고 새아빠와 사는 민아. 구구절절 시리고 따가운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었어요.
세 아이는 한 데 뭉쳐 다니면서도 서로를 향한 마음의 무게는 서로 달랐는데요. 친하면서도 버겁고,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은 의외다 싶었어요. 세 아이의 모습을 통해 가장 가까운 어른들의 모습을 거울 보듯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 부모님의 사랑과 믿음 안에 자란 민아는 다른 친구의 마음을 살필 정신적인 여유가 좀 있는 편이었고요. 엄마에게 학대받아 학교가 유일한 안식처였던 희주는 친구의 호의를 늘 의심합니다. 부모님은 위장이혼하시고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엉뚱한 일로 얽혀 전학까지 온 시연이는 시큰둥하게 시간을 보냈어요.
이 세 사람이 유일하게 마음을 열게 된 사건은 놀이공원으로 체험학습을 떠난 날이었어요. 관람차를 연이어 타면서 각자가 속마음을 털어놓고 서로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 주기로 약속을 하게 됩니다. 아슬아슬한 관람차 안에서 주고받은 진실은 상처투성이였어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괜히 말했나 싶을 정도로 찜찜하기도 했지요.
서로의 속 사정을 공유한 후에 살짝 어색해진 세 명의 아이들. 어느 날 AI 상담교사는 희주를 불러 부모님과의 관계를 자세하게 캐묻게 됩니다. 하지만 희주는 친구들 특히 타인에게 살가운 민아를 의심하게 되고, 불같은 엄마가 학교로 찾아올까 봐 덜덜 떨게 됩니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모드니를 옥상에서 밀어버린 범인이 희주는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숨 막히는 긴장감을 느낀 사람은 희주만이 아니었다는 사실!
시연이가 전학을 온 이유가 전에 다니던 곳에서 친구들 간의 오해가 쌓여서 몸싸움을 벌였기 때문인데요. 그래서인지 전학 온 이곳에서는 더 이상 골치 아픈 일에는 엮이고 싶지 않았어요. 희주와 민아의 어색한 관계 사이에 끼이고 싶지 않았던 시연이는 마음의 부담감을 떨치지 못하고 모드니의 뒤를 쫓다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인공지능 상담 교사 모드니는 이 아이들에게 변함없이 따뜻한 시선을 건네는 '어른'으로 나옵니다. '감정'도 없고 정보 그 이상을 바라봐야 하는 '의무'도 없는 모드니가 유일하게 다정한 어른이었다는 사실은 어쩐지 소름이 끼치는데요. 서두에 밝혔듯이 굉장히 현대적인 인공지능 로봇과 어린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엄청나게 구시대적인 어른들의 시선이 얽혀 있었지요. 인간과 거리가 먼 인공지능이 아이들에게 기회를 다시 준다는 점에서 머릿속이 멍하더라고요.
희주, 민아, 시연이가 극적으로 화해를 한다든지, 모드니를 밀어버린 범인을 추격하는 등의 뾰족한 결말은 없었어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세 아이가 곪아 터진 상처를 드러내고 주변에 위로를 받는 과정 자체가 결말이라고 여겨지는데요 그 안에서 넘어지고 상처받은 아이들이 다시 일어납니다. 갑자기 사라져서 모두의 걱정을 샀던 희주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답니다. 멀리서 친구들의 졸업식을 지켜보는 이방인 같던 희주. 이 장면에서 눈물이 앞을 가려서 마음이 참 힘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어린이문학'이었어요! 작가의 말대로 어린이들 곁에 '책임지는 어른이 있기를' 바라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