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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 - 제2회 현대문학*미래엔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하유지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9월
평점 :
#협찬 #솔직후기
구시렁 구시렁 투덜투덜 냉소적인 열다섯 살 강미리내의 마음 성장 이야기, 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를 읽어 보았습니다.
한 페이지만 읽어도 하유지 작가의 필력에 매료되고 마는데요. 사춘기 소녀의 직설적이고 삐딱한 마음까지 숨김없이 담아내는 문장들에 속이 시원하달까요.
중학생 미리내는 바쁜 엄마 송팀장, 퇴사 후 제주도로 셀프 유배 간 아빠 당근맨, 가사도우미 로봇 아미쿠가 인간관계의 전부입니다. 그마저도 로봇 아미쿠가 미리내의 옆을 가장 오래 채워 주고 있지요.
가사도우미지만 가정 교사 역할도 든든히 해 내는 로봇 아미쿠는 처음부터 미리내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었어요. 빨래도 엉망, 요리도 엉망, 가사도우미라는 타이틀이 맞나 싶을 정도였어요.
뒤처리는 미리내가 다 해야 하니까 가사도우미 로봇은 무쓸모 아닌가 생각이 들던 찰나, 이내 매력을 어필하게 되는데...
예상 가능한 관계의 예상치 못한 이야기 전개!
미리내는 소설가를 꿈꾸고 있어요. 학교 내에서도 존재감이 없는 미리내지만 온라인상에서는 작가 도로시로 살고 싶었지요. 그러나 인기 제로.
"강미리내는 어둠 속 그림자처럼 희미해도 되고 아예 안 보여도 그만이다. 하지만 도로시만큼은 해처럼 환하고 별처럼 빛나는 존재여야 한다.(20쪽)"
미리내의 소설을 읽고 조언을 해주는 아미쿠. 미리내의 1호 독자로 역할을 톡톡히 해냅니다. 잠깐이지만 평화로웠던 '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를 지켜볼 수 있었는데요. 그렇다면 이 작품은 미리내의 것일까, 아미쿠의 것일까. 고민스럽더라고요.
미리내의 같은 반 친구 파프리카는 AI가 쓴 글을 자기가 쓴 것처럼 속였다면서 미리내를 궁지로 몹니다. 화가 난 미리내가 아미쿠를 교환 신청하면서 이야기는 뜨거워지기 시작해요.
보내 놓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미리내. 자신의 작품을 함께 읽어 주고 교감해 준 것은 가족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나의 진지한 첫 독자를 잃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미리내는 글쓰기를 멈추었지만 마음의 회오리는 멈추지 못했답니다.
아미쿠의 숨겨진 능력으로 둘은 다시 재회해요. 서로를 응원하며 서로를 돕는 관계가 됩니다. 로봇과 인간의 우정이 쌓이는 순간이었지요.
"누구나 다른 이에게 도움을 받습니다.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야말로 관계의 본질입니다. 저도 미리내가 도와준 덕분에 집안일을 익혔습니다. (158쪽)"
미리내의 고민을 함께하게 되면서 아미쿠는 미리내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는데요. AI가 사용하는 사람의 인격을 적당히 흉내 내는 유사 인격 코드가 발동한 거라고 하는데 솔직히 좀 오싹하지요. 로봇에게도 마음이 있는 것일까? 알쏭달쏭했어요.
버려졌던 아미쿠가 미리내와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의 범위를 다시 설정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조금은 혼란스러웠답니다.
그러나 모든 고민을 싹 쓸어내려버린 대망의 에피소드가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바깥세상이 궁금했던 아미쿠를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미리내가 도움을 주게 됩니다. 아슬아슬하고 진땀 나는 과정을 숨죽여 지켜보게 되더라고요.
"이대로도 괜찮다는 거지. 내가 나여도 괜찮아.(214쪽)"
모험을 함께한 둘 사이에 우정을 넘어선 끈끈한 그 무엇인가 자리 잡게 됩니다. 내가 나라서 다행이야! 불완전한 존재들의 자아 찾기 대 성공! 경쾌하게 마무리되어 독자의 마음에 그늘을 없애 주었어요. 베리 나이스했던 독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