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 다다미 넉 장 반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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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정말 엄청나다. 다다미 넉 장 반으로 이런 스토리를, 이런 멀티버스를 표현해내다니 상상 그 이상이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은 것은 난 여전히 선입견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는 거다. 왜냐하면 이 책의 겉표지를 보자마자 ‘아하, 서포터즈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이 책 읽고 싶지 않은데…’라는 생각이었으니까.

책이나 영화, 음악을 감상할 때 관련 정보를 찾아보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읽고 보고 듣고난 후 나의 감상은 대게 일반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게 이런 의미였어?’하며 놀라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 역시 그랬다. 작가 소개에 이미 애니메이션으로 나왔다는 것도 쓰여 있었는데 난 알고도 왜 이렇게 이 책을 얕잡아본걸까. 반성 또 반성.

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는 2008년에 출간된 소설로 앞서 말했듯 이미 TV 애니메이션으로 나올만큼 굉장히 인기 있는 작품의 원작 소설이다. 대학교 3학년인 주인공 ‘나’는 지난 2년 간의 대학 생활을 허송세월로 보낸 것을 한탄하며 새내기 때 다른 동아리에 들어갔다면 더 유익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며 작금의 상황을 후회한다. 총 4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저마다 비슷한 듯 시작하지만 각기 다른 동아리에 들어간 주인공 ‘나’의 대학 생활을 보여준다. 다른 선택을 했지만 ‘나’라는 사람이 달라진 게 아니기 때문에 동일한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면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달라지게는 없는 걸까?

  • 허나 나는 깨달았다. 아주 작은 결단의 차이로 나의 운명은 변화한다. 나는 매일 무수한 결단을 내리니 무수한 다른 운명이 생겨난다. 무수한 내가 생겨난다. 무수한 다다미 넉 장 반이 생겨난다. (p.364)

그러니 다른 동아리를 선택했다는 걸로만은 나의 삶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나의 ‘결단’,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삶을 달라지게 하는 힘이 아닐까. 책을 다 읽고 나서 ‘다다미 넉 장 반 세계일주’의 명장면을 봤다.

나 : 전 자기의 가능성을 믿고 여기까지 왔어요. 어떻게든 잘 해 왔지만 왠지 마음이 추워요. 제가 선택해야 할 것은 좀 더 다른 가능성이었을지도, 1학년 때 선택을 잘못했을지도 몰라요.
히구치 : ‘가능성’이라는 말을 무한정으로 써서는 안 돼. 자네는 바니걸이 될 수 있나? 파일럿이 될 수 있나? 아이돌 가수가 필살기로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될 수 있나?
나 : 될 수 없어요.
히구치 : 될 수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있지도 않는 것에 눈을 빼앗겨서는 아무것도 안 돼. 자기의 다른 가능성이라고 하는 의지가 안 되는 것에 희망을 맡기는 게 모든 악의 근원이지. 지금 여기에 있는 자네 이외 다른 누구도 될 수 없는 자기를 인정해야만 하지. 자네가 유익한 학생 생활을 만낄할 수 있을 리 없어. 내가 보증할테니 진득하게 지내도록 해.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기보다는 지금의 선택에 나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럼 다른 다다미 넉 장 반의 세계가 열릴지도 모른다.

  • 비채 서포터즈 3기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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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수를 믿다
    나스타샤 마르탱 지음, 한국화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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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종 동물원 사육 동물들의 탈출 속보나 겨울철 먹잇감을 찾아 민가를 습격한 야생 동물의 출몰 소식을 뉴스로 접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장 먼저 동물을 위협의 대상으로 인지한다. 그러다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개체수가 줄어들었다는 기사를 보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한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는 늘 교만한다.

    나스탸샤 마르탱은 프랑스 인류학자로 러시아 극동의 캄차카 반도의 선주민인 에벤인에 대해 연구하며 그곳에 머물던 어느 날, 산에서 곰을 마주한다. 곰의 습격으로 머리를, 턱을, 다리를 크게 다쳤지만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여기서 ‘살아남았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는 그녀를 곰의 습격을 받은 가여운 사람으로 바라보고, 또 누군가는 바이러스(곰) 감염자로, 누군가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녀를 정의할 수 없다. 그녀는 곰과의 만남으로 인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고 인간도, 곰도 아닌 그 경계의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일들을, 그때의 감정을 쏟아내듯 이 책에 담았다.

    이 책은 살아남은 자의 기록이다. 그 사실만으로도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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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을 진 산정에서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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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채 서포터즈 3기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나트랑 여행 때 이 책을 가져갔다. 휴양지에서 읽는 책, 너무 좋잖아. 그런데 기후 변화로 인해 건기인 2월, 머무는 5일 내내 비가 내렸다. 나트랑의 비는 소나기처럼 2시간을 넘지 않는다고 했지만 태풍급이었다. 비가 쏟아지는 바닷가 앞에서 읽는 ‘노을 진 산정에서’의 처음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책을 통해 '나'를 읽을 때, 나는 '나'를 통해 타인과 세상을 같이 읽습니다.’

    - 고요한 책읽기, 이승우


    역시, 결국 책 읽기는 ‘자신’을 읽는 시간이다. 지금 나는 지속적으로 분주하고 불안하다. 숨을 고르고 다시 책을 열었다. 각자의 삶의 무게를 안고 산에 오르는 사람(여성)들. 제 삶의 고민이 제일 무거운 거다, 지금의 나처럼. 지금 내게는 산보다 집 앞 평평한 길이라도 걷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언젠가는 그들처럼 조금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기를 소망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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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일록 작전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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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채 서포터즈 3기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보면 종종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곤 한다. 특히 한국사와 관련된 이야기에는 상상력이 더욱 폭발한다.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다면, 혹은 고려가 멸망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한반도가 하나의 나라였다면, 대한민국이 핵 보유 국가였다면. 그리고 예전에 읽었던 소설에서처럼 우리나라가 강대국에 맞서 시원하게 대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니 이미 소설같은 일이 현재 일어나고 있기는 하지, 계엄령…….. 친위 쿠테타….. 골치야.


    그런 면에서 ‘샤일록 작전’ 역시 가자지구를 둘러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한다. 1993년에 쓰여진 책이기에 당연히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전쟁에 대한 내용은 없다. 또한 작가가 2018년 세상을 떠났기에 현 상황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없다는 것도 매우 유감이다. 다만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내게 유대인을 홀로코스트의 피해자가 아닌 1992년 오슬로협정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영토를 빼앗아 간 가해자로 관점을 전환시켰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는 책 한 권으로 끝이 났다. 어쩌면 현실이 소설보다 더 최악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어느 한 쪽의 이야기만 듣고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말하는 명분은 그저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일 뿐이다. 영토를 획득하기 위해서, 진영을 결집하기 위해서. 그러니 ‘우리’가 사는 이 땅, 권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더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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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상하고 천박하게 둘이서 1
    김사월.이훤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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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부턴가 책 한 권을 고르는 일도 어려워졌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더 많이 읽고 싶고 읽게 되지만 한 번 손을 놓게 되면 당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한동안은 한 작가의 책을 쭉 읽었고, 그러다 우연히 책 속에서 소개한 다른 책을 읽기도 했다. 그렇게 책의 고르는 범위가 점점 좁아질 때, 열린책들에서 새로 나온 시리즈 ‘둘이서’의 첫 책을 만났다.

    뮤지션 김사월 작가와 시인 이훤 작가가 일 년간 주고받은 편지로 구성된 ‘고상하고 천박하게’는 제목부터 읽고 싶기도, 읽기 싫기도 했다. 요즘 책을 향한 내 마음처럼 왔다 갔다 했다. 나는 ’젊은 작가상 수상집‘은 찾아 읽으면서도 스스로 젊은 작가들의 책을 고르진 않았다. 출간의 홍수에서 어떤 책을 골라야 잘 고른 걸까, 하는 말도 안 되는 꼴값만 떨고 있었다. 그래도 ‘열린책들’에서 나온 거니까 믿고 보자, 했는데 그 생각 역시 꼴값(왜냐하면 좋은 책은 출판사와 무관하게 그냥 ’좋은 책‘이니까). 아무튼 여러 허들을 지나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두 사람의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 집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편지라는 매체를 통해 한 뼘 더 깊게 그들의 사정을 알게 되다 보니 그들이 만든 노래와 사진, 시가 궁금해졌다. 늘 새로운 작품을 만들지만 그러기에 더 단단히 일상을 지키는 이들의 성실도 느껴졌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뮤지션과 시인도 저마다 분투하고 있구나, 모두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당연한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종종 편지 말미를 질문으로 마무리하는 이훤 작가의 글이 참 다정했다. 누군가를 궁금해한다는 것, 나는 그것이야말로 사랑(남녀 관계의 사랑을 넘어선 인간애)이 아닐까 생각한다.

    📍좋아하는 사람 <둘이서> 함께 쓰는 열린책들의 새로운 에세이 시리즈, 첫 번째인 둘이서1 ‘고상하고 천박하게’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었습니다만, 둘이서7 김혜진, 최진영 작가님의 책은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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