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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늙어버린 여름 - 늙음에 대한 시적이고 우아한, 타협적이지 않은 자기 성찰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 지음, 양영란 옮김 / 김영사 / 2021년 9월
평점 :

이 책은 세 번 나의 눈을 끌었다.
:: 첫 번째는 제목과 표지로!
금박의 심플한 타이포 한가운데에, 나이를 알 수 없는 한 여인이 붉은 입술을 반 쯤 감추고, 옷깃을 가다듬고 있는 일러스트가 있다. 아주 매력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왠지 눈길이 가는 표지였다.
:: 두 번째는 김영사 서평단 모집으로!
태어나서 서평단 신청을 해 본 일도 처음이지만, 당첨된 것도 처음이다. 정말이지, 무척 기뻤다.
:: 세 번째는 내용으로!
서평단 모집 댓글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늙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사는 사람은 분명 있겠지요. … 이 책을 통해 늙음을 마주할 용기를 얻기 바랍니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이 나의 기대에 부합하지는 아니었다. 작가 이자벨 드 쿠르티브롱은 '늙음'의 의미를 조금도 미화하지 않는다. 자신이 겪는 변화가 늙음의 정석인 듯, 자신의 체험으로 늙음을 일반화하지도 않는다. 그는 오직 자신의 늙음 자체에 집중할 뿐이다.
그가 체험하는 '늙음'의 빛깔은 매우 화려했다.
그 빛깔은 분명 화사한 봄의 기운을 지니지 않았고, 한여름의 선명함도 지니지 않았다. 그렇지만 초라하거나 마냥 쓸쓸하지는 않은,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화려함을 지녔다.
아마도 그가 살아온 여름이 유독 뜨거웠기 때문이겠지.
그는 프랑스 문학과 여성 문학, 이중 언어, 이중 문화 문학 전문가로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평생 학생들을 가르쳤고, MIT는 그녀의 공로를 인정해 이름을 딴 상을 제정했다고 한다.(오~~~) 그런 그가 어머니, 아버지, 조카, 전 남편, 여행, 문화, 등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관계와 측면에서 자신의 늙어버린 처지를 서술한다. "젊은 시절을 한껏 이상화하며 되새김질하는 사람, 언젠가 감히 아득히 먼 옛날의 모험담을 젊은 사람들에게 떠들어대는 나이 먹은 여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p.103)"던 그가 말이다.
차곡차곡 풀어가는 그의 이야기는...어쩌면...자신의 늙음을 회고할 여유도 없이 아직도 자식들 등쌀에 치여 사는 우리네 어머니들에겐 어쩌면 정말 우아하기 짝이 없는 성찰일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자신에게만 집중된 '개체'라기 보다는, 엄마, 아내, 며느리, 여자 등등의 '보편'으로 살아온 이들의 노년과는 어쩐지 결이 다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오히려,
그의 동년배보다는 대서(大暑)를 지나 입추(立秋)로 들어가는,
내 또래들에게 더 큰 울림을 주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가 지나온 여름은 이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 여름과 더 많이 닮았다. 자의든 타의든 혼자 살아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런 추세가 요 몇 해에 생긴 현상은 아니지만, 이 세대의 노년이 어떠할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들은 분명 지금의 노인과는 다른 모습으로 가을을 맞고, 겨울을 맞고, 죽음을 맞을 것이다. 그들 역시 다음 세대 사이에서는 '투명 인간'이 된 듯한 느낌을 받고, '고만고만한 여사님'으로 여겨지고, 꼰대가 되겠지만 말이다. 어찌 됐건 우리가 입추(立秋)를 지나 입동(立冬)으로 접어든다 하더라도, 저자처럼 자신의 늙음을 초라하지 않게, 책임감 있게 마주할 수 있으려면... 이 여름을 더욱 뜨겁게 -한여름은 아니더라도 아직 열기가 남아있다면- 아직 남은 여름의 시간을 더욱 성실히 살아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것은 나의 능력과 열정을 한껏 불사르자는 의미만은 아니다.
지금의 노년이 한 세대를 성실히 일궈주신 것에는 무한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그들이 써내려간 성공 신화는 다음 세대에게 성과, 능률, 외모 만능주의를 심어 주었고, 결국 그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시기에 와서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 안에서 더 시린 가을을 맞게했다. 노년의 아름다움이 그 자체로 존중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프레임을 바꿔 놓아야 한다. 기능이 쇠퇴해도, 탄력이 사라진 외모도, 결코 빠를 수 없는 속도도 '괜찮다'는 것을 이 여름에 우리 손으로 심어 놓지 않으면, 우리 역시 시린 가을을 맞을 테니.
* 이 서평은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노화는 이미 당신 안에 자리를 잡고 당신과 하나가 되어버리므로 노화를 오롯이 파악하기란 힘들다. 암튼 이 주제는 충분히 나이 들기 전까지는 제대로 다루기 어려울 터이니 … 결과적으로 내 안의 젊음이 완전히 죽지 않았을 때여야만 늙음에 대해 말할 수 있다. - P17
노화와 죽음에 대해서 생각할 때면, 흔히 잡지에서 지적 호기심과 창의성의 본보기처럼 소개하곤 하는 아흔 살 먹은 ‘선배들‘ 같은 지혜로움은 도저히 끄집어내지 못한다. … 예외적으로 뛰어난 이 인물들은 우리를 안심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무대 전면에 세워진 게 아닐까 자문해본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대다수 사람은 그 같은 건강을 누릴 수도 없거니와, 고통을 덜어주고 정상적인 노화며 심신의 쇠락을 최대한 늦춰주는 의료 행위에 접근할 만한 경제적·사회적 여건을 갖추지도 못한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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