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 복잡한 세상 & 명쾌한 과학
정재승 지음 / 동아시아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날 학문의 큰 흐름은 다학제적 통합 연구이다. 이는 학문이 지나치게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과정에 그 한계와 문제점이 발견되면서, 새로운 대안으로 학제간 교류의 필요성이 요구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지리학을 전공하는 나의 경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지 못하고 편식하는 습관만 늘어갔다. 그러나 전공 도서를 깊이있게 읽을수록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자연과학 등 다양한 학문의 지식을 더욱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사회 문화 현상을 과학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함으로써 학제적 단절의 불합리성을 일깨워 준다. 물리학을 전공하면서도 인문과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저자 정재승 박사만의 논리 전개가 돋보인다. 100여 년 전에 칼 마르크스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하나의 과학으로 통합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 책을 통해 그의 예견이 현실화되었음을 더욱 느끼게 한다.

O.J 심슨 사건을 무죄로 결말나게 했던 통계학의 오류, 현대 미술의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카오스 이론'의 접목, 서태지의 헤어 스타일에서 발견한 '프랙탈 구조'의 적용 등 일상 생활을 물리학적인 관점에서 쉽고 흥미있게 접근하고 있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회 현상을 물리학의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그렇지만 도시 교통 현상의 경우 지나치게 물리적인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다. 자동차가 밀려서 정체하는 현상을 고체라 보고, 웬만큼 소통되는 현상을 액체라고 보는가 하면, 한밤 중 한적한 대로의 자동차 흐름을 기체 상태로 보고 있다. 따라서 슈퍼 컴퓨터를 이용한 '입자 시뮬레이션'을 통해 교통 정체를 효율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말 물리학자다운 발상이다. 그러나 서구 선진 도시의 경험적 사례를 살펴볼 때 도시 교통은 물리적인 구조가 아닌, 사회성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도로의 확장은 오히려 더 많은 교통량을 유발하므로, 자동차 도로를 줄이고 보행 환경을 개선하여 대중 교통의 편리성을 증진하는 방안이 도시 교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케빈베이컨 게임에 나오는 예로 저자는 영화 배우 심은하를 들고 있는데, 나의 경우 가수 조성모와 3다리 관계(나-누나 친구-사촌동생 조성모)에 있다. 여섯 다리만 건너면 세상 사람들 모두 아는 사이라는 경험적 이론을 통해 매일 모르는 사람을 많이 접하게 되지만, 실상은 매우 가까운 관계임을 깨달았다. 만약 가계도에 이를 적용한다면 어떠한 결과가 나올까? 아마도 그물망처럼 얽혀져서 모든 사람들은 서로 가깝고도 먼 친척 관계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재승 박사는 과학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험실에서 과학자들만의 언어로 주고 받는 밀담이 되어서는 안되며, 많은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벌이는 정치 논쟁처럼 친근하게 우리 옆에 있어야 한다고.' 그의 말대로 과학자들만 이해하는 과학보다는 실생활에 적용되고 있는 과학을 알려주는 것이 과학자가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