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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박물관이 세계를 구하는 법 - 대멸종의 시대, 자연의 기억보관소가 들려주는 전시실 너머의 이야기
잭 애슈비 지음, 제효영 옮김 / 김영사 / 2026년 4월
평점 :
#도서제공

나와 같은 생각으로 이 책을 펼친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자연사박물관이 세계를 구하는 법'이라면 보통 생태계 연구와 교육을 통해 멸종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자연을 보호하는 내용이 떠오른다.
놀랍게도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위에 언급한 내용이 우리가 보는 자연사박물관이라면 이 책은 철저히 자연사박물관의 ‘보이지 않는’ 부분만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부분은 우리의 생각보다 오래되었고 거대하다.
자연사 박물관은 자연의 일부를 가져와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 중립적이지 않으며 실제 자연과 다르다.

표본의 채취부터 선택, 만들어진 표본을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하기기 위해 표본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박물관의 편향과 정치가 들어있다. 우리는 자연사박물관이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게 되는 것이다.
이 편향과 정치의 시작은 서구 열강이 식민지를 건설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서구 학자들이 학계에 남긴 큰 발자취의 이면에는 표본 채취에 힘쓴 이름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채취된 표본을 전시하는 과정에서도 편향은 계속된다. 표본의 위치와 자세에서조차 암컷과 수컷의 높낮이를 다르게 배치하는 등 시대의 선입견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케임브리지 자연사박물관에서 오랜 시간 재직 중인 저자 잭 애슈비는 이러한 한계를 정면으로 인정한다.
자연사박물관이 식민지배를 바탕으로 쌓아 올려진 결과물이라는 것, 정치적 편향이 반영된 공간이라는 것을 직시하며 변화의 필요성을 말한다. 특히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의 화석, 표본 반환 문제를 다룬 점이 인상 깊었다. 각국의 자연사박물관이 표본의 자연사와 함께 식민지배라는 불편한 역사까지 다루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깊이 공감한다.

멸종을 막고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자연사박물관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표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 누구의 손을 거쳤는지, 어떤 편향이 담겨 있는지 아는 것 또한 그만큼 중요하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더 이상 전과 같이 자연사박물관의 표본들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되었다.
평생 눈앞에 두고도 보지 못할 내용들을 알게된 것에 큰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