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 다섯 번의 자살과 다섯 편의 유서 같은 소설
다자이 오사무 지음, 이지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제공 #인간실격 #휴머니스트



 사실 난 요조, 아니 요조의 탈을 쓴 다자이라는 인간이 싫었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인생에 한 번 쯤 겪게 된다는 ‘일본 문학 시기’가 있다. 나 역시 그 시절에 처음으로 <인간실격>을 접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자전적 소설임을 알고 다자이가 싫었고 이 작품이 일본문학을 언급할 때 손꼽히는 명작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불쾌했다.


 휴머니스트의 인간실격은 다자이가 죽음을 지향한 서른 아홉 해 중 자살과 관련된 작품을 모았다.

 다자이의 페르소나인 요조가 나오는 인간실격부터 광대의 꽃,교겐의 신,도쿄팔경,우바스테를 담았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기에도 변명할 여지가 없는 한심한 인간이 평생 죽음을 지향하며 남긴 기록은 자기혐오로 가득찬 일기장이나 여전히 전세계에서 읽히고 있다.


 인간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종종 도망치고 싶거나 모든 것을 망쳐버리고 싶은 감정이 들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감춘다. 솔직히 일기장에도 내면의 바닥을 전부 드러내지 못한다.


 비난 받을 것이 뻔한 비겁함, 광대짓, 두려움, 중독, 애정 갈구를 보며 독자는 각자가 가지는 감정의 농도는 다르겠지만 공범의식을 느끼게 된다.


 다자이같은 인간이 여전히 싫기에 공감보다 누구나 가진 인간 본성의 바닥을 엿봄으로서 느끼는 공범의식이라 느껴진다. 어린 시절의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불쾌감의 원천이다.


“몹시 부끄러운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라는 문장은 ‘그러니 마음껏 비난해 주십시오.’라고 들린다. <인간실격>은 후기를 쓴 광인과 직접 아는 사이가 아닌 자가 수기를 얻고, 마담이 그 ‘광인’이 되어버린 자를 회상하며 끝을 맺는다. 죽음을 향해 가라앉는 느낌을 주었다.



“살아갈테니 꾸짖지 말아주십시오.”



“나는 맹렬하게 살아내기 위해 죽는다. 이제 와서 문답은 쓸모없을 터다. 죽음을 향해 일직선으로 명쾌하고도 완벽한 거푸집이 만들어져 있어서 나는 녹인 납처럼 그 거푸집에 스르륵 흘러들기만 하면 되었다.”


 5편의 소설 중 <교겐의 신>은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살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진다. 

<우바스테> 또한 죽고 싶지만 그러면서도 버티고자 하는 과정이 느껴진다.

 

 죽고싶으면서 살려고 한다. 모순이자 무엇보다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다.


 절망적으로 비관하는 상황에서 최대한을 끌어올려 쓰는 고백, 옮긴이의 말처럼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로 솔직한 고백을 외면할 수 없을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시간이 지난 후 읽은 <인간실격>의 요조, 그리고 다자이는 여전히 싫다. 

 

 그렇지만 불쾌함 위에 다른 감정이 드리워진 것도 사실이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외면할 수 없는 감정. 명작은 명작이다.



-휴머니스트의 인간실격의 5가지 작품은 사소설의 장점이 잘 보이는 구성이라고 생각된다. 옮긴이 이지수의 번역은 매끄러웠고 주석의 위치와 내용도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