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음식들 - 선재 스님의 인생 발효 에세이
선재 지음 / 나무의마음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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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재료를 음식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러나 그 변화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묻는다면, 나는 칼이나 불보다 먼저 요리사의 시선을 떠올린다. 같은 쑥을 보고도 누군가는 향이 강한 식재료를 보고, 누군가는 봄을 견디고 올라온 생명을 본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손질하는 방식도, 완성하려는 맛도 달라진다.

《나를 살리는 음식들》은 사찰음식을 통해 그 시선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이 책에서 음식은 취향의 표현이나 건강을 위한 수단에 머물지 않는다. 자연과 타인에게 빚지고 살아가는 인간이, 매일의 식탁에서 그 관계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 된다.

## 맛은 더하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요리사는 맛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그래서 때로는 부족한 인상을 양념으로 채우고, 더 강한 자극으로 기억에 남으려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사찰음식은 반대 방향을 보여 준다. 덜어 낸 자리에서 재료의 향이 드러나고, 조용한 맛을 알아차리기 위해 먹는 사람의 감각도 달라져야 한다.

여기서 절제는 포기가 아니다. 무엇이든 더할 수 있지만 더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재료가 가진 맛을 내 솜씨보다 앞에 놓는 것이다. 그것은 요리사의 존재감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요리사의 판단을 더 섬세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좋은 요리에는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구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 한 접시가 품은 관계

책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새싹을 씻는 장면이다. 물살에 새싹이 다치지 않도록 그릇에 물을 떠 살살 씻고, 떨어진 흙과 벌레는 다시 밭으로 돌려보내라는 가르침. 음식이 되기 전의 재료뿐 아니라, 그 곁에 있던 작은 생명까지 살피는 손길이다.

요리사의 손은 재료를 자르고 익히며 다른 형태로 만든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재료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장면은 요리란 자연을 지배해 접시에 올리는 일이 아니라, 자연에서 받은 것을 어떻게 다룰지 매번 결정하는 일임을 일깨운다. 한 끼는 요리사 혼자 이룬 성취가 아니다. 흙과 물, 계절과 시간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 음식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요리사는 재료를 낭비하지 않으려 한다. 절약이 비용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관계를 잊지 않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 기다림도 조리의 일부다

발효 음식에 관한 대목을 읽으며 시간 역시 재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사는 불의 세기와 조리 시간을 조절할 수 있지만, 발효를 마음대로 앞당길 수는 없다. 기다리는 동안 음식은 변하고, 요리사는 그 변화를 살피며 적절한 순간을 판단한다.

빠르게 완성하는 능력만이 실력은 아니다. 아직 손대지 말아야 할 때를 아는 것, 변화를 재촉하지 않는 것 또한 요리의 기술이다. 책 속 발효는 내게 그런 겸손을 가르쳤다. 요리사는 모든 맛의 창조자가 아니라, 재료와 시간이 만나는 과정을 돕는 사람일 수 있다.

## 누구를 살리는 음식인가

제목의 ‘살리는’이라는 말은 쉽게 소비해서는 안 될 표현이다. 모든 음식이 병을 낫게 할 수는 없고, 정성껏 만들었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맞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요리사라면 그 말 앞에서 더 조심스러워져야 한다. 먹는 사람마다 몸의 상태와 필요한 맛, 식사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에서 읽은 ‘살리는 음식’은 특별한 효능을 약속하는 음식이 아니다. 재료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먹는 사람에게 내 취향을 강요하지 않으며, 한 끼를 먹은 뒤의 편안함까지 생각하는 음식이다. 그것은 완벽한 식단의 이름이 아니라 요리사가 지켜야 할 방향에 가깝다.

나는 철학이 있는 셰프가 되고 싶다. 철학을 말로 설명하는 셰프보다, 매일 반복하는 선택으로 드러내는 셰프가 되고 싶다. 새싹을 씻는 손의 힘, 양념을 멈추는 순간, 장이 익기를 기다리는 인내, 접시를 내기 전 먹을 사람을 떠올리는 짧은 시간에 그 철학이 있어야 한다.

《나를 살리는 음식들》은 내게 좋은 요리의 답을 하나로 정해 주지 않았다. 대신 요리를 시작할 때마다 되돌아갈 질문을 남겼다. **이 음식은 무엇을 살리고, 나는 무엇을 소홀히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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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치 인류세 - 인간과 생태계를 잇는, 인류학의 새로운 자연사
애나 로웬하웁트 칭 외 지음, 김희정 옮김 / 해나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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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는 하나의 거대한 재앙이 아니다.
수많은 ‘패치’들이 모여 만들어진, 울퉁불퉁하고 불균질한 현실이다.
《버섯의 끝에서》로 전 세계 독자를 사로잡았던 안나 칭이 동료들과 함께 쓴 이 책은, 기후위기와 환경 파괴를 단일한 행성 규모의 이야기로만 바라보는 시각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대신 우리의 발밑과 일상 가까이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변화들—야생화된 존재들, 의도치 않은 생태적 결과들—에 주목하라고 권한다.

노예무역 선박에 실려 전 세계로 퍼진 쥐와 모기, 수로를 막아버린 물 히아신스, 목재와 함께 이동해 대규모 소나무를 죽인 딱정벌레, 비료 유출로 폭발적으로 늘어난 빗해파리… 이 모든 것들이 ‘패치’의 사례다. 인간 인프라가 만들어냈지만 더 이상 인간의 통제 아래에 있지 않은 생명과 관계들. 저자들은 이를 ‘feral(야생화된)’이라고 부른다.

책은 단순한 재앙의 목록이 아니다. 손상된 지구 위에서도 다종이 함께 살아가는 가능성을 포착하려는 시도다. 《Feral Atlas》 프로젝트의 책 버전으로, 관찰하고, 이름을 붙이고, 역사와 관계를 추적하는 새로운 ‘자연사’의 방법을 제안한다.

학술적 밀도가 높지만, 사례가 생생하고 문장이 문학적이어서 읽는 재미가 있다. 기후위기 담론에 지친 독자, 다종 인류학과 환경인문학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특히 추천한다. 《버섯의 끝에서》를 인상 깊게 읽었다면 반드시 이어서 보길 권한다.

한줄요약: Anthropocene(인류세)은 단일한 행성 규모의 현상이 아니라, 수많은 ‘패치(patch)’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불균질하고 국지적인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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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노래 - 나무는 말하고 그녀는 듣는다
진재운 지음 / 생각의힘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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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재운의 『나무의 노래: 나무는 말하고 그녀는 듣는다』는 자연을 다룬 책이지만, 결국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는 인문 에세이다. 책은 나무를 단순한 풍경이나 자원으로 보지 않는다. 나무는 저마다의 시간과 언어, 삶의 방식으로 존재하며, 인간은 그것을 듣고 배워야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 책의 중심에는 니카라과의 숲에서 나무를 심는 한 여성이 있다. 여든여덟 살의 나이에도 숲으로 들어가며, 여의도의 7배가 넘는 숲에 100만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목표를 품고 살아간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지구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서.” 이 한 문장은 기후위기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출발점을 보여 준다.[1][2]

현대인은 빠른 성과와 비교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나무는 서두르지 않는다.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가 굵어지며, 한 그루의 나무가 숲이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사진 속 목차의 「나무는 다른 삶을 부러워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은 특히 인상적이다. 나무는 다른 나무처럼 살려고 하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햇빛을 받고 바람을 견디며 자신의 방식으로 자란다. 이 책은 독자에게도 타인의 속도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자기 삶의 리듬과 뿌리를 돌아보라고 말한다.

“나무마다 사투리가 다 다른 것 알아요?”라는 문장은 이 책의 메시지를 잘 보여 준다. 나무마다 다른 사투리가 있다는 말은, 모든 존재가 서로 다른 삶의 조건과 고유한 시간을 지녔다는 뜻으로 읽힌다.[3]

‘나무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자연을 인간의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대상이 아니라, 존중하고 이해해야 할 타자로 대하는 일이다. 이는 자연을 향한 태도에 그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성급히 판단하지 않고, 그 사람만의 언어와 시간을 이해하려는 태도로도 이어진다.

숲은 나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토양과 물, 햇빛과 바람, 새와 곤충,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함께 얽혀 숲을 이룬다. 인간 사회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듯하지만, 타인의 노동과 돌봄, 자연환경과 이전 세대의 유산 위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나무를 심는 일은 미래를 위한 약속이다. 내가 그늘을 누리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누군가 그 나무 아래에서 쉬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담긴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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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의 가장자리 - 부서진 유년의 파편에서 출현한 신경과학자 이야기
데이비드 수실로 지음, 이충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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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수실로의 『Emergence: A Memoir of Boyhood, Computation, and the Mysteries of Mind』는 단순한 성공 회고록이 아니다. 헤로인 중독 부모 아래서 폭력과 방임을 겪고 알버커키의 집단보호시설을 전전한 소년이, 컴퓨터와 과학에 빠져 컬럼비아와 스탠퍼드를 거쳐 계산신경과학과 AI 연구자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그리면서, 한 가지 질문을 끈질기게 던진다. 복잡한 존재와 지능은 어떤 단순한 조건들의 상호작용에서 출현하는가.

저자는 자신의 삶을 ‘개인의 의지’나 ‘타고난 천재성’만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누이 에스터와 함께 보육원으로 들어간 경험, 외조부모와 교사의 관심, 영재교육 프로그램, 초기 PC와 BASIC, 《King’s Quest》에 대한 매혹, 그리고 반복된 실패와 학습이 서로 되먹임을 주며 한 연구자의 자아를 만들어 낸다. 특히 초등학교 과학 탐구대회에서 니켈과 철못을 식초에 넣어 산화를 관찰한 장면은 인상적이다. 통제된 실험실에서는 강력한 설명을 얻을 수 있지만, 현실 세계는 커피잔과 선인장, 폭포와 프레리도그처럼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존하는 복잡계다. 과학의 성공이 곧 인간 경험 전체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아니라는 통찰이 여기서 드러난다.

컴퓨터는 도피처이자 세계를 이해하는 언어였다. “세심하게 작성한 레시피를 입력하면 컴퓨터는 불평 한마디 없이 영원히 충실하게 실행한다”는 깨달음은 어린 수실로에게 거의 마술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그는 인간 마음과 삶이 코드의 직선적 실행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 또렷이 보여 준다. 신경세포 하나가 의식을 갖지 않듯, 한 인간의 삶도 유전·의지·가정환경 어느 하나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이 책은 AI 시대에 더욱 의미심장하다. 단순한 연산 요소들이 대규모로 연결되어 복잡한 패턴을 학습하는 현대 신경망의 원리를, 저자는 자신의 삶과 교차시킨다. 동시에 극심한 결핍을 딛고 성공한 이야기가 “노력하면 된다”는 낭만적 교훈으로 소비될 위험을 경계한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보호시설, 교사, 멘토, 학습공동체의 개입 덕분이었다.

『Emergence』는 뇌와 AI를 연구하는 과학자의 회고록이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교육과 돌봄에 관한 책이다. 어떤 아이가 질문을 멈추지 않도록 돕는 일, 실패를 학습의 재료로 다루는 일, 삶이 무너진 아이에게 다시 연결될 수 있는 관계와 제도를 제공하는 일. 복잡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단순한 요소들이 오랜 시간 관계를 맺고, 오류를 수정하고, 예상치 못한 도움을 만나면서 천천히 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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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
이지윤 지음 / 쌤앤파커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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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돈과 무관해야 진짜 예술 아닐까?”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생각이다. 미술관에 걸린 명화는 숭고하고, 경매장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작품은 왠지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이자윤의 『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는 바로 그 익숙한 생각에 정면으로 질문을 던진다.

책의 제목처럼 저자의 결론은 분명하다. 순수한 미술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미술은 오래전부터 돈, 권력, 후원자, 유행, 정치, 그리고 사람들의 욕망과 함께 움직여 왔다. 이 책은 미술을 ‘고상한 예술’과 ‘돈 되는 상품’으로 나누는 대신,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팔리고 소장되며 유명해지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작품은 세 번 태어난다

책의 프롤로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미술 작품은 세 번 태어난다”는 대목이다.

첫 번째는 작가의 작업실이다. 작가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재료를 고르고, 그림이나 조각을 완성하는 순간 작품은 처음 태어난다.

두 번째는 미술시장이다. 작품은 갤러리, 아트페어, 경매, 컬렉터를 만나면서 거래되는 상품이 된다. 이 과정에서 작품의 가격이 만들어지고, 작가의 이름이 알려지며, 누군가는 ‘유망 작가’가 되고 누군가는 시장의 관심 밖에 머문다.

세 번째는 미술관과 컬렉션이다. 작품이 미술관에 전시되거나 유명 컬렉터의 소장품이 되면, 작품은 또 다른 생명을 얻는다. 같은 그림이라도 어디에 걸리고, 누가 소장하며, 어떤 이야기와 함께 소개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아무도 보지 못하면 널리 알려지기 어렵다. 반대로 작품이 유명 갤러리, 미술관, 비엔날레, 경매 시장을 거치면 사람들은 그 작품을 더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작품의 가치는 화폭 안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르네상스 미술도 ‘시장’ 안에 있었다

우리는 르네상스 미술을 떠올리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보티첼리 같은 천재 예술가를 먼저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에도 화가들은 누군가의 주문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고, 그 주문을 한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 부, 권력, 가문의 명예를 드러내고 싶어 했다.

책은 14세기 상인 프란체스코 디 마르코 다티니를 소개한다. 그는 직물, 보석, 무기 같은 여러 사치품을 거래하던 국제 상인이었는데, 미술품도 유통했다. 저자는 다티니를 미술품 거래의 초기 장면을 보여주는 인물로 다룬다. 물론 그를 오늘날의 전문 갤러리스트처럼 보는 데에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미술품은 그의 사업에서 중요한 품목 중 하나였지만 전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사례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술이 오래전부터 시장과 완전히 분리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성모상이나 종교화도 누군가에게는 신앙의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값비싼 물건이자 집안의 위신을 드러내는 소유물이기도 했다.

보티첼리와 카날레토를 다르게 보는 법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마르스〉도 오늘날 미술관에서 보면 르네상스의 우아한 신화화로 보인다. 하지만 당시에는 귀족들의 사적인 생활공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작품이었다. 사랑, 결혼, 풍요, 가문의 번영 같은 의미가 담긴 그림은 침실이나 개인 공간을 장식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즉, 우리가 미술관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명화도 처음부터 미술관 벽에 걸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집과 방, 가문과 결혼, 취향과 과시를 위해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다.

18세기 베네치아의 풍경화가 카날레토 이야기도 흥미롭다. 당시 유럽의 귀족과 부유층은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그랜드 투어’를 교양의 필수 과정처럼 여겼다. 베네치아를 찾은 여행자들은 그곳의 풍경을 기억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교양과 경험을 보여주기 위해 그림을 샀다.

카날레토의 베네치아 풍경화는 오늘날로 치면 고급스러운 여행 기념품에 가까운 역할도 했다. 물론 단순한 기념사진과 같다는 뜻은 아니다. 뛰어난 회화적 완성도를 지닌 작품이었지만, 동시에 관광과 소비의 욕망이 만든 시장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이 대목을 읽고 나면 유명한 풍경화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작품 속 베네치아는 아름다운 도시 풍경인 동시에, 사람들이 ‘소유하고 싶어 한 여행의 기억’이었던 셈이다.

미술의 상업성은 꼭 나쁜 것일까

이 책이 좋은 이유는 미술시장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돈이 개입되면 예술은 타락한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말하지 않는다.

미술 시장은 때로 과열되고, 가격이 작품의 예술성과 지나치게 분리되는 문제도 있다. 유행에 따라 작품 가격이 급등했다가 급락하기도 하고, 일부 유명 작가에게만 관심과 자본이 몰리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분명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시장이 없다면 많은 작가가 작업을 지속하기 어렵고, 작품이 관객과 만날 기회도 줄어든다. 갤러리와 컬렉터는 작가를 지원하고 작품을 유통시키며, 미술관과 공공 컬렉션은 작품을 보존해 다음 세대에 전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예술이냐, 돈이냐”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예술적 가치와 시장의 가치가 어떻게 만나고 충돌하며 서로 영향을 주는지 이해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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