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 - 모든 종을 뛰어넘어 정점에 선 존재, 인간
가이아 빈스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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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빅 히스토리 장르란 것이 만들어진 것 같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나 어제까지의 세계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염두에 두면서 읽게 된다. 우리 사피엔스는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주파수를 다르게 맞춰가는데 세 책 모두 잘 읽힌다. 타고난 이야기꾼 작가들의 필력이 잘 드러난다. 


사피엔스에서 '사냥'을 중시한 것과 마찬가지로 '사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신만을 위한 사냥에서 집단생활 즉 사회적 동물의 성향을 본격적으로 보여주는 사냥을 하게 된다. 프로메테우스가 갖다 줬다는 '불'에 대해서도 신선한 접근을 하는데 생식에서 화식으로 전환하면서 소화기관의 효율성, 뇌기능 활성화라는 장점에 주목한다. 

고고학적 성과도 다뤄지고 있는데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에서 현생인류까지 종의 역사가 횡적 직신성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네안데르탈인과 사피엔스는 동시대에 꽤 오래 존속했고 사피엔스가 살아남은 거지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무짜르듯이 잘려지는 것은 절대적으로 아니다. 네안데르탈인과 이종교배가 어느 시점에서 이뤄지면서 인지 혁명이 유전자 변이를 통해 이뤘졌고 그 시점에 언어가 출현하고 도구사용에 혁신이 도래했다고 한다. (역시 사회의 발전은 다양성과 포용성에 있다. 지금이라도 이 땅에서 더 많은 이민 수용이 필요하다) 

문자는 어떻게 시작이 되었던 것일까? 구어에서 문어로의 이동도 혁명 중에 혁명이다. 구전으로 전파되던 것이 문자의 발명으로 정보를 드디어 안전하게 온전한 형태로 장기기억소로 옮겨갈 수 있게 되었다. 문자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알파벳의 시스템의 발명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시 책으로' '책읽는 뇌' 매리어 울프 저작을 살펴 보면 좋겠다) 

 

학교현장에서 진행되는 역사교육이 소위 국민국가 중심의 획일적인 전통의 통사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데 어차피 사피엔스는 저자의 말대로 세계시민 글로벌 세계의 한 축으로 살고 있음을 공통으로 인지한다는 가정하에 굳이 유일민족 우리민족의 협애한 역사에 매몰되어 있을 필요가 있을까? 

알파벳 이야기로 돌아가면 지금 영어의 모태가 된 페니키아 알파벳 전통과 한국어의 한글 가나다라 전 세계의 가장 효율적인 문자 체계는 이 것 두 가지다. 표음문자가 표현해낼 수 있는 인간의 소리의 폭은 실로 놀랍다. 문자의 위력을 상당 기간 정권을 차지한 세력의 권력수단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과 중세의 신부들 세속귀족들에게 그러나 인류 역사 속에서 민주화는 문해력의 대중화가 그 기폭제였다. 

바벨탑을 세운 인류 공통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음. 각 지역의 문명권이 별개로 서로 발달했으며 그 환경에 적응하면서 달라지고 발음이 가능한 형태로 서로 다르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인도의 불교가 중국의 격의불교로 수용되는데 노장의 언어를 빌려야 했던 것에서도 그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동남아처럼 기후가 온화하고 습도가 높으며 나무가 많이 자라는 지역의 언어는 모음을 더 많이 그리고 
자음을 더 적게 사용하며 대부분 음절이 단순하다." 인간이 이 대자연을 우리에 목적에 맞게 조작한다고 생각하지만 환경과 인간은 지금껏 상호작용 속에 함께 변화해 왔다. 인간은 자연 속의 부분으로 인정하지 않고 만물의 영장으로 별개 취급하면서 지금의 기후위기와 팬데믹 위기를 자초했닫고 빅히스토리는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교육현장의 난제 중에 하나가 조기영어교육의 시점이다. 저자는 "이중언어 사용은 사회적 심리적 생활 양식 등에 많은 이점을 제공한다"고 하며 "두 종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 중 상당수가 언어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말한다.  굳이 유태인이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을 인종적으로 민족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중언어를 취할 수 없던 환경적 요인이 더 크다고 봐야 할까? 책을 읽으며  서양인들의 오랜 난제: Nature vs Nurture의 답이 후자로 기우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인간을 자연에 군림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동식물과 환경에 상호의존하는 조화해야 하는 존재로 sustainable genesis를 새롭게 써야 한다. 또는 환경복음을 추가해야 한다. 

고대인들에 비해 현대인이 퇴화하고 있는 것은 암기력이다. 옛날 우리 선조들은 사서삼경이 완전히 머릿 속에 있어서 필요할때마다 그대로 빼서 써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랩탑 어딘가에 쟁여져 있기만 하고 내 머릿 속에는 없는 ... 과연 우리는 진화하고 있는가? (이는 마치 소크라테스가 문자 사용을 경계했던 것과 유사하다) 인공지능 자율주행 가상증강현실 인류의 기술진보는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어쩌면 지난 2천년 많은 것을 이룬 호모 옴니스(저자의 용어로써 지구 속 모든 유기체를 통제할 수 있는 초유기체)는 공룡처러 일순간에 멸절할 위험은 없는 것일까? 이제 지구는 문제를 만들어내는 것도 호모 옴니스 자신이고 해결할 수 있는 것도 호모 옴니스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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