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공주 해적전 소설Q
곽재식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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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가 없는 상상력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책이었다. 우리 민족의 고대사야말로 상상력의 보고가 아니겠는가? 고구려는 유기라는 역사서가 있었다 하고 백제도  서기가 있었다. (이 서기를 따라 일본서기도 이름을 지은 것 아닐까?) 그 두 나라 모두 7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전 세계 어디에 그런 장수한 나라가 있었는가? 위대한 문화와 군사경제력의 뒷받침과 탁월한 인간들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 아닐까? 김부식이 삼국사기 쓸 때만 해도 삼국의 사료들이 많았을 터인데 그 많던 사료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혹시 일제 놈들이 약탈하면서 어딘가에 쳐 박아둔 것 아닐까? 

역사서가 남아있지 않아 고(구)려, 백제, 신라의 모습을 매우 뚜렷하게 우리는 알 수가 없는데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파편들에게 유추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예전에는 아쉬움이 컸다. 그런데 상상력의 출발점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지 못했다. 

통일신라의 삼한통일은 인정 못 하겠다. 김부식의 역사관에 동조해야 할 의무는 없으니까. 백제병합전쟁 정도로 정리해야 하는 것 아닐까? 고(구)려의 옛 영토는 발해가 다 이어받게 되니까. 백제만 해도 신라보다 앞선 문화강국이었기에 신라에 멸망당한 것은 이해의 영역 밖에 있다. 백제가 남긴 금동대향로만 봐도 백제는 당대 최고의 문화보국이었다. 신라가 통일신라로 바뀌고 250년 정도 국가가 유지되었는데 후반 150년은 진골귀족끼리의 다툼으로 나라가 망한다. 즉 내 개인적인 판단으로 보건대, 통일신라는 신분제의 모순으로 이미 한계가 있었는데 소위 통일전쟁 수행하면서 그런 모순이 묻혔다가 외부의 적이 사라지자 곧 내부적으로 병은 이미 깊었다. 

소설의 개연성은 수많던 백제의 왕족 귀족들은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당으로 모조리 끌려갔나? 아님 모두 왜땅으로 이주? 그런데 젖과 꿀이 흐르던 백제 고토를 두고 섬나라 왜 가뜩이나 하루가 멀다하고 자연재해가 닥치는 왜가 뭐가 그렇게 좋았겠는가? 복신과 도침 그리고 흑치상지 등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데 이들의 부흥운동도 상상력을 발휘할 부분이다. 그리고 백촌강 최후의 전투도 앞으로 영화로 만들어져야 할 부분이라고 사료된다. 

책은 장보고에서 시작한다. 장보고에 대한 기록은 내가 아는한 국내사료로 파악하긴 어렵다. 중국 일본에 오히려 기록이 남아있다고 하니...우리나라 고대의 역사는 더 장대한 역사였음을 방증한다. 그냥 반도에 갖혀서 정체된 역사로 기록하려던 일본제국주의 사관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나? 장보고 이순신 같은 해상세력을 품고 그들이 펼치려던 세상을 밀어주는 위대한 지도자가 없었기도 했다. 장보고도 이순신도 결국 쿠데타로 집권했어야 했을까? 상상력의 나래를 펴는데 제한은 없지 않은가? 장보고 그 한 인물이 죽었지만 장보고 어깨넘어로 세상을 배운 남은 세력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이 책은 거기서 출발한다. 벌써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후백제 후고(구)려 즉 후삼국은 신라지배층이 썩어빠져서 파생되었다고 볼 수 없다. 삼국통일이란 것은 없었고 백제 고(구)려의 유민들의 마음 속에는 그대로 그들의 정체성이 남아있었던 것이고 언젠가는 그것이 부활될 것임을 알았던 것 아닐까? 통일신라라고 해 봐야 후반기의 혼란의 역사를 빼버리면 100년 정도의 짦은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신문왕이 죽고 나서 원성왕 정도 빼곤 성군은 없었으니까?
 
우리고대 역사는 거친 상상력의 보고라 할 수있겠다. 해양대학교의 연구논문을 아래 첨부했다. 
장보고의 부하가 펼치게 될 스토리를 책을 통해 확인하길 바란다. 

http://kmou.dcollection.net/public_resource/pdf/000002175740_2020080511015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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