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로봇 - 우리가 지금껏 상상하지 못한 신화 이야기
에이드리엔 메이어 지음, 안인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전 포스트에서 그리스로마신화를 우리 문화가 더 이상 독해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다소 회의적인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4차산업혁명이 몰고 온 어젠다 중에 '로봇' 혹은 인공지능이  있는데 그간 우리는 그것이 몰고 온 파장 경제적 효과 등의 논의 수준에만 머물러 있었다. 많은 공상과학 소설과 영화 등에서 우리는 노동의 의미 상실이 몰고올 막연한 두려움에 머물러 있기도 하다. 

이 책은 '로봇'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해 서양인이 어떻게 답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어떻게? '신화'를 맘껏 인용하기를 뽐내면서. 작가의 화려한 인용을 읽다 보니 다시 그리스로마신화부터 읽어봐야 하나...라는 호기심이 샘솟는다.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으려면 저자가 소개하는 헐리우드 영화를 간간이 보면 좋겠다.

첫 단추는 서양문명 최초의 로봇. 탈로스로부터 꿰어야 한다. 탈로스는 헤파이스토스가 크레타섬을 지키라고 인간을 위해 만들어 준 청동거인이다. 탈로스는 이방인이 탄 낯선 배를 찾아낸 후 바위를 던져 파괴시키도록 고안되었다. 아르고호를 타고 탐험에 나선 그리스신화의 영웅들이 있는데 헤라클레스, 오르페우스, 테세우스(안 탔다는 설도 있다) 등의 5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쌩그짓말도 디테일한 스토리텔링만 되면 수천년을 남아 전승된다) 이들의 모험 이야기는 이윤기 선생의 <그리스로마신화> 제 5권을 일독하시기를 바란다. 


27쪽, 사람들은 인간'처럼 행동'하며 이름과 개인적인 '사연'을 가진 로봇 또는 인공 지능을 인간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로봇은 지각 능력이 없고 주관적 느낌이라 할 만한 것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움직이면서 인간의 행동을 흉내내는 대상들에게 감정과 고통받을 능력을 투사하고, 이들이 손상되거나 파괴되면 그에 대한 공감과 아픔을 느낀다. 

탈로스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일리야드에서 시작되어,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 최근 케네디언 신사(라이언 고슬링)가 주인공이었던 <블레이드 러너 2049>, <Her>, <Ex Machina>까지 끊임없이 오마쥬되고 있다. 

두번째 꼭지는 새벽의 신 에오스가 사랑한 티토노스이다. 에오스와 아레스(전쟁의 신) 사이의 불륜을 알 된 아프로디테가 에오스에게 저주를 내리게 된다. 잘 생긴 연하남만 보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저주인데 그런데 이게 왜 저주지?? 여하튼 트로이의 왕자 티토노스와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면서 불멸의 존재로 만든다. 그리스 신화를 보면 신들의 이야기라 완벽해야 할 것 같지만 그 신들이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의 피조물 답게 2%부족하다. 불멸이지만 시간이란 제약에서 벗어난 젊음을 유지한다는 조건은 빠트려서 점차 늙어가는 티토노스. 

100쪽, 인간의 필사(mortality)의 운명을 탄식하는 것과 똑같이, 신들도 자기들이 좋아하는 인간이 죽어야 한다는 운명을 탄식한다. 하지만 신들은 인간 애인들이 자연적으로 겪는 노년과 노쇠의 과정을 특히 싫어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신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말로 하면 결국 죽고 싶지 않다는 갈망의 발로 아니었을까?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다른 전통이라고는 하나 궁긍적으로 영생불사의 열망에서 같고, 어쩌면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은 것도 인류 공통적 사유:죽을 수 밖에 없 인간, '크로노스'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본원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동서양의 사유나 전통을 구분하는 것도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세번째는 프로메테우스다. 알레고리라는 것이 있는데 문학작품 속에 인물, 장소, 사건 등을 표면적 의미와는 다르게 진짜로 전달하고 싶은 다른 의미를 심어놓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영화 <기생충>을 보면서 계급적 차별이라는 사회적이슈로 이해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책 114쪽, 프로메테우스가 부여한 선물들은 최초로 '인간능력의 증강'을 보여주며, 이는 곧 자연적 또는인공적 수단을 동원하여 인간 신체의 한계를 일시적 또는 항구적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정의될 수 있다. 

우리 현대인들은 고대인들의 기술 수준이 더 낮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책에서 소개된 예들은 우리가 고대인보다 더 탁월하다는 통념이 틀렸음을 보여준다. 인류가 엄청나게 진화했다는 것은 빅히스트리적으로 보면 ...그냥 우리는 더 겸손해져야 한다 우리는 고대인들과 아직도 그닥 다르지 않다. 어쩌면 퇴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언전 3000년 전으로 추정되는 프랑스에 한 발굴지에서 이미 보철 귀가 발견되었고 이탈리아에서는 나무로 만든 인공다리가 출토되었다. 이란에서는 약 4800년 전에 살았단 한 여성의 시신에서 인공눈이 발견되었다. 

고대인들의 상상력이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발명가 다이달로스가 어린 아들 이카루스를 탈출시키기 위해 고안해 낸 것이 인류의 비행기 개발의 시초였다는 것이 너무 억지춘향일까?  인간이 전에 가 본 적이 없는 곳으로 가려는 스릴 넘치는 대담성...이카루스의 추락에 포커싱하지 말고 지금 많은 인류미래에 대한 묵시적 결론에 저항하고 싶다. 인간의 경계를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은 욕망이 탐욕이 될 것이라면서 도덕성 짙은 경고로 마무리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의 축복이자 저주? 속에서 살고 있다. 왜 저주냐? 자연을 도구화하고 개발의 대상화로 삼던 서구문명이 가져온 폐해가 코로나 19다. 이 책의 주제로 삼고 있는 인공지능 혹은 로보트도 축복이지만 저주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에 대한 인류의 사유는 이미 고대로부터 이어져 왔다. 다만 너무 섣부른 종교 윤리 도덕적 도그마틱에 사로잡혀 비관적 염세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19 이후의 시대를 살아갈 우리들에게 저자의 다음과 같은 메세지를 공유하고 싶다. 


"다른 어떤 생명체도 폭풍우 치는 바다를 항해하기, 땅을 경작하기, 말과 소를 길들이기, 사냥학고 고기 잡기, 법을 만들고 전쟁을 일으키기, 도시들을 만들어 다스리기 등의 기술과 대담성을...다른 어떤 생명체도 언어라는 장치를 갖지 못했고, 자연의 힘에서 도망칠 방법들을 끊임없이 궁리하는 "바람처럼 빠른 생각"이라는 능력도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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