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요괴 도감
고성배 지음 / 비에이블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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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 썼던 기억이 있다. "한 눈에 보는 그리스신 계보"라는 포스트를 찾아 읽어보시길 바란다. 그리스 신화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알다시피 그리스 것 그대로 가져다 베낀 거니까 로마는 솔직히 作한 것은 없고 述했다고만 봐야지. 여하튼 우리는 그리스신화 재밌게 읽는 것에서 열심히 강의까지 듣는다. 마치 그게 서양문명 전체를 이해하는데 초석이라도 되는 듯이 생각하면서. 그리스신화를 욕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솔직히 추잡한 인간들의 욕망의 화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 나는 결론내리고 싶다. 서양미술 건축의 주제를 이해하는 측면에서 알아둘 필요는 있겠으나 대단한 문화인냥 떠받들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다만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그런 "쌩거짓부렁이"를 만들어낸 상상력 그리스인들의 이야기 창조력은 높이 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이어 받은 서양의 헬레니즘 전통은 끊임없이 그것을 확대재생산해서 자신들의 전통문화로 만들었고 또 다른 플랫폼을 빌려 영화나 건축 미술로 승화시켰다. 

동야요괴도감을 책을 받아놓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추억들이 샘솟았다. 그리스신화만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동양문명 속에서 그런 것들이 있지 않았던가? 우리 속에 있던 신화적 양식들은 왜 다 사장되었는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보여준 다른 세계, 특히 우리네 도교전통, 불교전통에는 특히 괴력난신들이 많이 등장했다. 아마 추론컨대, 공자께서 괴력난신은 말씀하지 않았다(子不語怪力亂神)를 철저히 신봉한 유교적 가치관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인 조선이었기에 망각되었던 것은 아닌지. 


저자의 이전 책 <한국요괴도감>에 소개된 요괴들만 보아도 우리나라도 만만찮은 신화와 판타지보유국임을 알 수 있다.  '금강야차'라고 들어봤을 텐데 고려무신정변을 다룬 사극에서 배우 이덕화가 분한 역할로 유명한데, 원래는 불교에서 나오는 수호신 중에 하나다. 원래 사람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악귀였는데 불교에 귀의하여 악인만 잡아먹는다고 한다. 그 외에 '우렁각시' '저승사자' '만파식적' '구미호' '귀곡성'은 익히 들어보셨을 거다. 자세한 설명은 위의 책을 읽어보시길 바란다. 萬波息笛에 얽힌 설화는 꼭 읽어보면 좋겠다. 

본 책, 동양요괴도감을 열어보면 방대함에 놀라게 된다. 요괴가 이렇게 많았나 싶은데 그 요괴를 귀물, 괴물 신 종족 정령 사물로 분류했다. 귀물이 62종 괴물이 81종 신 9종 종족 11종 정령 16종 사물 3종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에서 보듯이 귀물과 괴물이 압도적이다. 이쯤에서 귀물과 괴물이 어떻게 다른지 내 나름대로 추측해 본다. 귀물은 아주 쉽게 말해 귀신이다. 괴물은 보편적이지 않게 생긴 동물이다.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신' 같은 경우,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신화 속의 신과 같지 않다. 신이 인간의 운명을 갖고 장난치지 않는다고 할까? 중국에 尺郭(척곽)이라는 신은 귀신을 잡아먹는 신인데 참 유익한 신 아니겠는가? 天吳(천오)라는 신은 물의 신인데 물이 마를까 걱정하는 신이다. 燭龍(촉룡)이라는 신은 말그대로 어두운 곳을 밝혀주는 신이다. 鵠蒼(곡창)은 황룡이 개의 모습으로 내려보낸 신인데 아무런 신통한 힘이 없다. 함 인간다운 신이라고 해야할까? 공자의 손자 子思(자사)가 지었다고 보는 <중용>이라는 서물에 다음의 구절이 있다. 

子曰:「鬼神之為德,其盛矣乎!視之而弗見,聽之而弗聞,體物而不可遺。使天下之人齊明盛服,以承祭祀,洋洋乎如在其上,如在其左右。《》曰:『神之格思,不可度思!矧可射思!』 夫微之顯,誠之不可掩如此夫。」


중용 16 장에 소개된 말인데 鬼神之為德,其盛矣乎을 우리말로 옮겨 보면 "귀신의 덕됨이 성대하다." 이 중용의 귀신장은 유명한데 도올 선생님께서는 중용한글역주 책에서 중동문명권의 창조주처럼 우주 전체를 지배하는 즉 우주 밖에 존재라는 신의 개념이 중국고전에는 없다는 것이다. (재밌는 것은 도올 檮杌이라는 요괴도 있는데 사람 얼굴에 호랑이 발을 한 괴물이다. 호랑이처럼 꾸짖는 도올선생님 왠지 잘 어울리는 이름인 것 같다)

"귀신은 어디까지나 천지 대자연에 내재하는 힘이다. 천지의 생명력 그 자체를 가리키며..."  


北冥有魚,其名為鯤。鯤之大,不知其幾千里也。化而為鳥,其名為鵬 장자 내편 소요유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鵬은 동양요괴도감 책에서 '봉황'으로 소개되고 있고 책에서 소개된 요괴 중에 내가 아는 거의 몇 안 되는 요괴 중에 하나라 반가웠다. 봉황이 노래와 춤을 잘 하는데 봉황이 어떤 한 시대에 출몰하면 태평성대의 시대라고 했다. 장자 속에 봉황은 끝을 알 수 없는 대자연의 경외로움을 상징한다. 

視之而弗見,聽之而弗聞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고 하면 들리지도 않는다. 
洋洋乎如在其上,如在其左右 바다처럼 넘칠 듯 하고 위에도 있는 듯하고 좌우에도 있는 듯하다. 
                                                                                                           (해석: 중용한글역주 참고)
위에 언급한 중용말씀을 다시 옮겨 보았는데  본 책 동양요괴도감에 실린 요괴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봉황만 해도 우리의 상상 속에 길조지만 그 모습에는 닭이 있다. 우리는 닭을 치느님이라고 숭배?하면서 밤마다 입안으로 집어넣는다. 닭이 그래서 신성하다. 주린 배를 채워주는 것... 그게 신이 존재하는 이유아닐까?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의 시작 부분에 농경과 종교의 탄생과 밀접하다고 했는데 하나님이고 알라고 바알신이고 잘 먹여주면 좋았다 고대에는. 닭을 어릴 적에 키웠는데 매일 달걀을 우리 가정에 선물해 주었다 그 왕성한 생식능력...치느님이라 불릴 만하다. 

용은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은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를 닮았다.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는 듯하고 위에도 좌우에도 있는 듯하다는 중용이 정의한 귀신에 너무나 부합하지 않는가?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우리 문화권 내에서는 요괴든 신이든 괴물이든 사람의 삶과 분리 괴리된 존재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불완전한 인간이 곧 요괴이고 괴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夫微之顯,誠之不可掩如此夫 '대저 귀신은 숨겨져 있지만 드러나고 誠의 그 진실함을 가릴 수 없음이 이와 같다.' 誠(성)은 중용의 핵심 사상이라 여기서 다룰 수는 없고 중용에 대한 해석서들을 일독하길 권한다.  귀신도 대자연의 道:물리학의 법칙 또는 섭리를 거스리지 않는 역동적인 조화로움의 한 부분으로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무언가로 본다는 점. 인간도 괴물 귀물 등이 무섭고 가끔 해로운 영향도 끼치지만 절대 죽여 없애거나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그러한 상태로 공생하는 생태적인 관점.

우리는 동서양 요괴들을 쳐없애는 ghostbuster가 되지 말아야한다. 우리 자신을 비춰 보는 거울로 생각하고 우린 인간끼리부터 서로 배척하고 배제하지 않는 포용하는 가치관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남과 나를 구분하고 차별하고 저주하는 나 자신의 괴물 만들기를 하지 않는 자성의 계기가 난 이 동양요괴도감을 읽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즐겁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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