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근대화를 상징하는 것! 한 가지 들라면 아마 "철도"가 아닐까? KTX SRT 없는 우리 일상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기차는 현대화된 고려?의 땅에 공기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1897년 첫 삽을 뜬 이래로 반 만년 역사를 놓고 보면 불과 122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제假題랄까 책 겉에는 다음의 표현이 실려있다.
"철도는 조선 백성들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졌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이런 구절도 보인다.
"철도는 조선 백성들의 피와 눈물로 맹글어진 거다." 
무심코 매주 주말 몸을 싣는 기차가 달라져 보이기 시작한다.

경부선 경인선에 그 철도 아래에는 강제로 땅이 수용되고 부역에 끌려나와 고생도 해야하는 불과 100년 전 우리의 모습이 깔려 있다고 요즘 누가 상상이라도 하겠는가...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이런 피눈물로 점철된 철도의 역사를 처음 마주한 것은 조정래 선생의 "아리랑"이다. 기억을 더듬어 아리랑 제 1권에서 읽었던 시가 떠올랐다. 

부모형제, 상봉가세
철도공사, 지옥살이
누굴위해, 골빠지나
묻지마라, 뻔헌대답
왜놈발에, 발통달기
어얼덜러, 어야데야

하아...지금도 철도놓는 것은 대공사다. 더구나 국토의 대부분이 산으로 구성된 이 강토에 철로를 깐다...
아리랑의 한 대목을 옮겨 보면 "어느 지점에서는 낮은 산줄기를 무질러가느라고 발파작업을 해야 했고, 또 어느 지점에서는 그것마저 불가능해 굴을 뚫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자니 산자를 끊어내는 일 정도는 예사였다. 야산마저 피해가는 평야지대의 공사에 비하면 몇십배 힘이 드는 공사였다. 아리랑 1권 아, 한반도 50쪽 " 우리 할아머지 할머니들의 맨발과 맨손으로 다져진 철길을 우리는 꽤 오래 편안하게 별 감정없이 타고 다녔다.  

 

서평을 일제시대 이야기로 시작하다보니 오해가 있을 법도 한데 책은 우리 지금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강남역 사거리 25미터 높이의 철탑 위에 김용희씨라고 계신다. 삼성항공에서 입사 후 95년 노조 설립하려다 해직되신 분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게 5월 25일이니 340일 가량이 지나갔다 무려 1년을 거기서 농성을 이어가시는 중이다. 삼성 무노조라는 허상은 잘 알려져있다시피 "테러" "간첩 누명" "회유" "협박'이라는 범죄 중에서도 아주 죄질이 안 좋은 중법죄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소위 주류 언론이라는 것들은 죄다 대기업 재벌이 주는 광고맛에 취해서 정녕 자신들이 돌아보고 편 들어줘야하는 곳이 어딘지 망각한 버린 "쓰레기"공작소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랬고 한명숙 총리도 그랬고 가깝게는 조국 장관이 그랬고 지금은 정의연에다가 그 똥물을 씌울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감히 말하겠다. 너네들이 지금 취재할 곳은 강남역 사거리 그 높고 좁은데 그 춥고 더운 곳에서 고생하는 그 현장이어야 한다. 

소위 "고공농성"이라는 표현이 있다. 그냥 그져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속물로만 살았다. 그런 노동쟁의는 모두 나와 무관한 다른 이야기였다. 왜 나도 노동자면서 노동에 무지했을까? 왜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눈물흘렸는데 행동하지 못 했는가?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결국 나도 교육노동자이고 노동자가 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말이다.

 

책 처음은 다음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이진오는 잠자리에서 되도록 먼 곳인 원형 통로의 반대편 구석에 용변 장소를 정해두었다. 처음에는 난간을 잡고 시도해보았지만, 상체가 앞으로 쏠렸다.

쭈그리고 앉은 자세를 유지하려면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어야 했다.

... (중략) ...

그는 고개를 숙이고 오물이 플라스틱 죽 그릇에 제대로 떨어지고 있는지 들여다보았다.처음에는 이 맞춤한 변기 대용품을 발견하지 못했다."

 

책을 잠시 덮고 고공투쟁의 역사가 궁금해졌다. (다음의 이어질 글은 tbs 색다른 시선 속 코너 서해성의 박학다설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우리 역사 최초로 그 유명한 을밀대에서 1931년 5월 평원고무공장 노동자 강주룡 열사가 시작했다. 당시 임금구조는 일본노동자의 절반을 조선 남성 노동자가 받았고 그 절반을 조선 여성 노동자가 받았다. (도대체 식민지 근대화를 찬양하는 족속들과는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을 깍겠다고 하자 단식 투쟁하고 을밀대까지 올라간 것이다. 

 

조금 시계를 우리와 가까운 시대로 돌리면 현대중공업 "골리앗 농성"이 있다. 30년 전 이야기인데 정말 까마득한 일정 때의 이야기와 진배없다는 듯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지는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현대가 지금은 노조가 강성노조고 귀족노조를 허용해 준 좋은? 기업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현대 역시 어용노조를 만들어 조직을 방해했고 구사대를 동원해 와해에 적극적이었다. 당시 노조 설립을 탄압하기 위해 그 유명한 백골단 12000명이 동원되었다.  (이런 노조저지 공작은 일본이 조선인에게 했던 만행과 닮아있다) 이 때의 주인공? 이갑용 열사의 글이 있다. "길은 복잡하지 않다" 일독을 권한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안타까운 죽음은 끊이지 않았더라. 김주익과 김진숙. 한진중공업. 

잊지 않기 위해 잊어선 않되기에 ...저자 황석영 선생은 다음의 발문을 첨가하셨다. 

"나는 이 소설을 한국문학의 비워진 부분에 채워넣으면서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하려 한다." 

되돌아보면 나조차도 노동자의 빈약한 처후를 몸소 겪어낸 적이 적잖았다. 노동청에 가서 권리행사를 해야 했고 부당해고에 준하는 계약해지 경험도 다수 있었다. 

사촉과 언론들의 갈라치기 분열책동에 국민들 여론 다수는 지금까지 속고 살았다. 고 김주익 열사의 유서를 읽으면서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대통령 한 명 바뀌면 크게 달라질 줄 알았다 예전에는. 그래서 실망도 컸다. 문재인대통령을 뽑고 무력한 국회를 목도했다. 언론지형도 사법농단도 검찰권력도 재벌지배력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노동투쟁의 역사가 바로 우리 옆 동네 아저씨 아줌마의 삶이라는 진실을 고스란히 받아들어야 한다. 

재벌은 일개 대통령이 어쩌지 못할 정도로 비대해졌다. 경제민주화가 가능한 일일 것인지 국민기본소득제 등의 코로나19 여파가 몰고 온 새로운 세상에 이 사회가 더불어 살아갈 만한 사회가 될지...그 해답은 재벌의 해체까지는 당장 힘들지 몰라도 골목상권을 보호하는 제도적 보완.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사라지게 될 일자리, 곧 우리 목숨줄과 같은 소득의 창구를 대체할 정책이 설 자리가 마련이 되려면...지금의 재벌-언론-사법 이 카르텔을 깨야 한다. 묘하게도 이 카르텔은 친일과 일본극우와 맞닿아 있다. 윤미향 당선자를 시작으로 제 2 제 3의 조국을 만들어 수술 시키려고 들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의식은 이들의 역사왜곡과 진실호도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