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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을 보라 - 비통한 시대에 살아남은 자,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
엘리 위젤.아리엘 버거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젤 교수는 아무 말 없이 재킷을 벗고 셔츠 소매 단추를 풀고는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 선뜻 팔을 들어 올려 강의실에 있는 학생들 모두에게 문신으로 새겨진 수인 번호를 보여 주었다." - 68p.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대한 이 보다 생생한 증거가 있겠나? 물론 우리는 쉰들러리스트에서 예루살렘의 아히이만까지 유태인 비극사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관념적으로 아는 것과 체험으로 '아는' 것의 차이를 극명하게 깨달았다고 해야 겠다.
이 책은 남다른 구성이 돋보인다. 위젤 교수에 대한 강의록의 성격을 지니지만, 그 강의를 기록한 저자 아리엘 버거 본인의 성장사(史)이기도 하다. 강의록도 위젤교수의 강의(lecture)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의 자유토론이 주(主)를 이룬다.
첫 번째 질문, "홀로코스트 이후 교수님을 지탱해 준 건 무엇인가요?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버티실 수 있었나요?" 우리에게 자문(自問)해 보자. 과연 생존의 위협을 받을 만한 사건을 겪고 이겨낸 후 우리는 무엇을 얘기할까? 대부분 '남탓하기' '환경탓하기'에서 더 나아가 '복수'가 아닐런지... 위젤 교수도 지체없이 "배움"이라는 답을 한다. 위젤 교수의 말을 좀 더 경청해 보자. "현재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있다면, 그 중심에는 분명 교육이 자리해야만 합니다." 지구온난화, 극우 민족주의 부활, 코로나19 같은 신종 바이러스, 광신교집단의 지속적인 등장 등 이 모든 문제들은 인류의 생존지속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문제가 정치적인 개입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야만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 신선하면서도 동양적인 사유다라는 생각이다.
이스라엘이 동서양 중에 어디에 가까운가라고 묻는다면 유대교전통과 유대인들이 특히 나치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미국으로 이민간 덕분에 서양문화라고들 생각한다. 동서양의 전통을 이분(二分)법적으로 보는 것에 이제는 동의하기 어려운 것 같다. 인도문명이 사실 서양문명의 기원이라고 볼 수도 있고 조로아스터교가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끼친 영향만 봐도 동서양 구분 자체도 재고(再考)되어야 한다.
시쳇말로 "형이 왜 거기서 나와?"라는 말이 있는데, 책을 읽다가 "도덕경"을 만났다. 유대인과 유대교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을 바꿀 때도 된 것 같다. 이들의 치열한 자기네 전통문화와 그것을 기록한 문헌에 대한 배움의 정신을 우리가 배워야 할 것 같다. 코로나 19 국면이 아직 진행 중이지만 그간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 따르고 배우고자 했던 미국을 비롯한 소위 '이미' 선진국들의 바이러스 정국에서의 치명적인 실책들을 반면교사화 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들이 우리에게 묻고 배우는 형국으로 바뀌었다. 그런 자긍심으로 우리는 더욱 우리의 전통과 우리 조상들이 쌓아온 유무형의 문화를 다시 돌아봐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앨리 위젤은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이 세상을 광기로부터 구해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다면 교육이 도덕적, 그리고 윤리적 타락을 이겨내도록 해주는 뭔가 숨겨진 주요 요소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위젤 교수의 제자이자 그리고 이 책의 저자:아리엘 버거의 말을 조금 옮겨 보았다. 교육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위젤 교수의 결론은 '기억'이라는 것이다. 위젤은 강의 중에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가 더 인간답게 사는 법을 배우 수 있을 거라고...(중략) 그렇게 된다면 당신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은 일종의 축복이 되는 셈입니다."
망각은 우리를 노예의 길로 이끌지만 기억은 우리를 구원합니다. -50p
100여년 전, 조선의 국권 상실은 망각 때문 아니었나? 임란과 호란을 겪은 후 즉 고통과 절망에 어떻게 반응했느냐가 중요한데,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는데 남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망했나 조선은. 그 훌륭한 실록을 남겼던 위대한 기록정신까지 모독당하면서. 그런데 그 후손들은 100여년이 지난 지금 메르스 사태를 기억했고 그에 대한 철저한 방비하는 자세로 대응했고 코로나19를 아직까지는 현명하게 대처해 왔다.
이 책은 앞서에도 썼지만 위젤 교수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구조지만 저자의 성장통과 그 극복과정도 솔직하게 그려나간다. "나는 하루하루 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일종의 직관을 통해 전달되는 감각에도 신경을 썼다. (중략) 나는 겸손을 배워가며 점점 더 나 자신을 낮춰갔다. 나는 온몸의 긴장을 풀고, 심지어 걸을 때도 이전보다 천천히 움직였다. - 219p"
이보다 '중용' 스러울 수가 있을까? 신독(愼獨)으로가는 여정 저자처럼 더 더 성장하고 싶어졌다. 이 책을 펴들고 있는 지금 내가 중용을 읽고 있었던 것도 마치 하늘이 내게 명령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유태인은 '홀로코스트' 마케팅으로 전세계 부와 권력의 핵심에 위치해 있다. 부와 권력을 지향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보다 더한 일제에 의한 홀로코스트 그 이상의 피해자였던 우리는 군부독재와 친일세력의 더 큰 희생의 역사를 치렀다.
과거사에 대한 복수보다는 새로운 미래를 세워 나가는 희망을 선택했던 '안네의 일기'의 저자 안네 프랑크처럼 우리 민족은 자의든 타의든 미래를 바라보고 지금까지 잘 왔다. 그렇기에 징용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 독립운동가 후손 등 절망과 공포 속에 살았을 그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사회로 한 단계 더 성숙해야 한다. 또 우리 민족 내에 문제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 기후변화에 대해서 멸종위기동물 보호에 대해서 즉 인류적인 이슈들을 우리가 고민하는 큰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북, 북남 문제도 저물고 있는 미국에만 기댈 문제가 아님을 이제는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책임질 만한 그릇이 되었다. 대한독립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