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이 끌리는 소설이 있다. 제목을 보는 순간.. 뭘까? 한없이 궁금해진다고 해야 할까? 박솔뫼님의 <을>이란 소설이 바로 그랬던거 같다. 보는 사람마다 물어봤다. "을이 뭐니?"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그 궁금증은 쉽사리 풀렸다. 아주 친절하게도 처음부터 그 제목의 의미를 아무런 조건없이 가르쳐주었다. [노을이 이민주를 ’민주’ 하고 불렀듯이 이민주도 노을을 ’을’ 이라 불렀다.] 이 소설은 이방의 한 도시에 있는 장기투숙자들을 위한 호텔방에 머물다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곳에 을이 있고 민주가 있고 프래니와 주이, 그리고 씨안이 있다. 이 소설의 분위기는 참 특이하다. 뭐랄까? 이제껏 쉽게 보지 못한 분위기의 소설이라고 하는게 맞겠다. 외로움과 쓸쓸함이 잔뜩 묻어있는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우울한 감정은 없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정체된 공기 속에 있는 기분, 습기없는 무더운 공간에 갇혀있는 기분.... 이 소설은 그랬다. 가끔씩 드라마나 영화나 소설등을 보고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나는 무슨 일에도 쉽게 오버하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편이 아닌데, 아니 많은 사람들 역시 저렇게 일일이 감정에 너무 충실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극히 드물텐데... 저렇게 보여지는 모든 감정들이 모두 우리가 사는 모습이라고 할수 있을까? 역시 그것들의 특성상 어쩔수 없는 거겠지?" 그런데 <을>은 그런 나의 편견을 완전히 깨게 해준 소설이었다. 민주가 곁에 없을때도, 윤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을때도, 씨안의 반복되는 생활들 속에서도, 프래 니가 손님을 총으로 쏘았을때도.. 이상하게도 이 소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고,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나를 발견하 곤 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한동안 아무 생각없이 가만히 있을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습기없는 무더운 곳에서 나와서 금방 샤워하고 나온듯한 기분이 들어 상쾌했다. 이 책은 독특한 매력을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정말 권하고 싶은 소설이다. 말로 다 표현할수 없는 이상한 매력을 가진 소설.. <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