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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버트 그레이프
피터 헤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막내집게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17년 전 남편의 자살 이후 폭식으로 인해 거구의 몸이 되어버린 엄마, 지적장애의 남동생 어니, 항상 제 멋대로인 여동생 엘렌, 누나 에이미.. 그리고 벗어날수 없는 현실에 답답한 엔도라의 램슨식품점 점원인 길버트 그레이프..

이 소설이 영화화 되었다는것을 알았을때 누가 연기를 했고,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무척 궁금했는데, 주인공 길버트 역에는 섹시한 남자 조니뎁이였고, 동생 어니 역에는 잘생긴 남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였다.
특히, 책에서는 어니에 대해 "내 동생은 둥글둥글하게 생겼고, 머리는 헝클어져서 할머니들이 보면 빗겨주고 싶어하는 그런 모습이다. 나보다 머리통 하나가 작고, 치열은 자유분방하다. 모자라다는 사실을 감출 도리가 없다." -13쪽 라고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어린시절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너무나 훈남의 모습 그대로였다.
메뚜기를 죽인 것에 대해 침까지 흘리며 울고 있는 장면에서는 저 침까지 손수 닦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영화 속 엘렌은 생각보다 제 멋대로의 모습이지 않았고, 에이미 누나 역시 뚱뚱하지 않았다.
특히 가장 다른 모습의 사람은 베키였다.
처음 책을 보며 느낀 그녀의 이미지는 반항적이고 무섭기까지 했는데 영화 속 베키는 처음부터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무성한 검은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왔다. 다리도 근사했다. 이런 세상에. 내가 있는 곳에서 보이는 그 모습을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다. 뭐랄까. 달님같았다." -58쪽
하지만 영화속의 그녀의 머리는 검은 색의 짧은 커트였고, 영화 내내 근사한 다리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으로 형인 래리의 언급은 잠깐 있었지만, 책에 나오는 또다른 누나 제니스에 관한 이야기는 전혀 볼수 없었다.

길버트 그레이프가 사는 곳은 엔도라라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인구중 절반이 예순다섯 살 이상이고 함께 졸업한 애들은 이제 네명밖에 남지 않았다.
모두들 자신의 미래를 위해 떠나고 그곳에는 학교 때 단짝인 터커와 사고로 불구가 된 쌍둥이 형제, 그리고 혼자 힘으론 움직이는것조차 쉽지 않은 거구의 엄마와 아픈 동생 어니를 돌봐야하는 길버트만이 남았다.
엔도라에는 두개의 식품점이 있다.
하나는 모든 사람들이 장을 보는 푸드랜드라는 곳이고. 하나는 푸드랜드로 인해 손님이 없는 램슨식품점이 그곳이다.
거기 램슨식품점 점원이 길버트 그레이프다.
길버트는 보험업자의 부인과 비밀스런 관계를 가지고 있는듯 하다.
"기념일이야. 7주년, 네가 처음.....왔던 날부터 7년 되는 날." -139쪽
하지만 영화에서는 "목요일이 우리가 만난지 1년째 되는 날이야."란 대사가 나온다.
영화에서보다 책에서 카버부인과 더 오랜 시간을 같이 보냈는가보다.
"왜 날 선택했어요? 네? 누구라도 차지할 수 있었잖아요." -140쪽
"그래. 다른 사람을 가질 수도 있었지. 하지만 나는 너를 선택했어." -140쪽
"왜요? 왜 그랬어요? 네?" -140쪽
"왜냐면 네가 너희 가족을 절대로 떠나지 않으리란 걸 알았으니까. 넌 절대로 엔도라를 떠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으니까."
-140쪽
이 대화에서 보여지는 길버트의 현실이 가슴 아팠다.
모두들 길버트는 가족을 두고는 절대 엔도라를 떠나지도, 떠날수도 없을거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리고 길버트 역시 벗어날수 없을거라 여기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지금 처해있는 상황에서 벗어날수 없을거란 생각에 답답할때가 있다.
뭘 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다 집어치우고 홀가분하게 떠나고 싶을때가 있다.
하지만 아직 젊고 미래가 있는데 너무 지금 현실에 안주하는건 아닌지..
여기 길버트 역시, 지금 상황에서도 자신이 할수 있고 그것을 하기 위한 길이 얼마든지 있을텐데 너무 포기하고 있는건 아닌지 씁슬한 마음이 들었다.
아픈 어니는 어쩔수 없는 상황이지만 감당할수 없는 현실에 자신을 놓아버린 거구의 엄마가 아들에게 너무 큰 짐을 짊어지게 만드는건 아닌지.. 그럴수밖에 없는 엄마도, 그 짐을 짊어질수밖에 없는 길버트도..안타까움과 답답함이 교차하게 만들었다. 
"전부 다 끝내줘요. 엄마는 바비큐소스만 있으면 자기 팔이라도 뜯어먹을 태세고, 멍청한 얼간이 형이랑 마녀 같은 누나는 여길 떠났고, 못돼 처먹은 여동생은 간밤에 예수 그리스도랑 뒤엉켜서 보낸 모양이고, 좋은 사람을 만나야하는 큰누나는 하루가 다르게 점점 뚱뚱해지고, 어디에 꼭꼭 숨어버린 모자란 동생은 또다시 물에 겁을 집어먹었죠." -271쪽
"너는 엔도라가 좋은가 봐?"
"아직도 여기 있는걸 보면 그런 게 틀림없어. 내가 디모인에서 일을 하는 동안 길버트 너는 쭉 여기에 있었잖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7년간 난 많은 걸 보고 많은 일을 했는데 너는 내내 엔도라에만 틀어박혀 있었다니. 재밌지않냐, 어떻게 두 인생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
277쪽

엔도라, 워터타워에 올라가며 말썽을 피우는 어니(영화에선 가스탱크라고 했다), 육중한 무게때문에 바닥까지 내려앉게 만드는 엄마, 불륜관계인 카버부인, 손님없는 램슨 식품점.. ..
길버트 그레이프를 생각하면 이런것 밖에 떠오르지 않는 절망 속 그에게도 희망이라는 빛 하나가 드리운 듯 했다.
베키.. ..
사실 그녀의 존재는 책에서보다 영화에서 더 빛나는 듯 하다.
책에서처럼 길버트를 화나게 하는 일도 없고, 항상 그에게 일상의 탈출구가 되어주는거 같았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틀림없이 천사의 모습이었다.
"장례식에서 네가 슬퍼하는 모습을 본 사람이 없다더라. 네가 우는 걸 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 -227쪽
"아무도 네가 마지막으로 울었던 게 언젠지 기억하지 못해." -222쪽
"바라는게 있으면 생각나는대로 이야기해봐요." -(영화에서 베키)
"모든걸 바꾸고 싶어, 새 집 . 가족들이 다같이 살 새 집" -(영화에서 길버트)
"엄마가 에어로빅이라도 했음 좋겠어. 엘렌도 얼른 커야하고. 어니의 두뇌를 바꿀수만 있다면.." -(영화에서 길버트)  
"자신을 위해서 바라는건 없어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영화에서 베키)
"난 그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영화에서 길버트)
"깨뜨리는 걸로 바로잡을 수 없는 상황도 있어." -
389쪽
"
길버트. 길버트를 사랑해봐." -390쪽

"나는 내 아들이 열여덟살이 되는걸 보고 싶을 뿐이야......"
항상 엄마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어니의 열여덟번째 생일.. 
그리고 그 전 날 어니의 생일 케익때문에 푸드랜드에 간 길버트..
그런데 열 번째 통로로 돌아 나오다가 램슨 씨와 마주치고 만다.
영화에서는 케익을 사고 나오는 길에 차를 타고 그 길을 지나던 램슨 씨와 마주치는데..
얼마나 놀랐을까? 얼마나 미안하고 정말 되는 일 없는 삶이라고 소리치고 싶었을까?
그런데 그 케익을 목욕도 하지 않은 더러운 어니가 또 가만두질 않는다.
그런 어니를 피가 날 정도로 때린 길버트..
"어니 때리지 마. 우리 어니 건드렸다간 가만 안 둘 줄 알아. 평생을 이러고 살았는데 하룻밤 사이에 모든게 불에 탄 재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게 간단하게, 이렇게 순식간에. 이런 인간에게는 증오도 과분했다." -393쪽
어니를 그토록 사랑하고 아꼈던 길버트지만 아마도 자신의 한계를 느꼈던 것 같다.
끝내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부터 나오는 울분이 터져서 곧 후회할 행동이었긴 했지만 그의 마지막 몸부림인거 같았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고 답답했을까? 그런 그가 참 안쓰러웠다.
어니의 열여덟번째 생일 파티가 있는날..
영화에서 그는 엄마에게 베키를 소개한다.
남들에게 놀림감이 되었던 엄마는 길버트가 자신을 부끄러워한다는 생각에 거부하지만 결국엔 화합과 사랑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 날 저녁에 엄마는 자신의 노력과 힘으로 걸어서 자신의 방에서 잠을 청하고..
"넌 나의 갑옷 입은 기사님이야." -(영화에서 엄마가 길버트에게)
내 아들의 열여덟번째 생일을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던 엄마는 그런 아들의 생일날 숨을 거두고 만다.
책에서는 에이미 누나가 엄마를 발견하지만 영화에서는 어니가 엄마가 죽은걸 발견하고 오열한다.
그 장면에선 정말 눈물이 났다. 엄마가 너무 불쌍했기에..
"우리는 저마다 자기 자신 안에서 엄마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엄마가 완전히 떠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엄마는 우리 속으로 들어온거고.이제 우리는 우리 삶을 계속 꾸려나가야 했다."
-445쪽
"아침이 되면 구경꾼들이 몰려올거야." -(영화에서)
"엄마를 절대 놀림감으로 만들지 않겠어." -(영화에서)
"엄마는 놀림감이 아냐. 사람들은 엄마를 보고 웃고, 엄마를 찔러대고 이러니 저러니 평가를 할거야! 그렇게 하게 놔둘 순 없어." -
447쪽
"엄마는 그것보다 나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어. 자격이 있다고...." -447쪽
그들은 죽은 엄마가 남들에게 놀림감이 될까봐 아빠가 계셨던 그 집과 함께 불 태우고 만다.
책에서는 없지만 영화에서는 후에 그들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도 해준다.
길버트와 어니는 처음 장면속 그 곳에 있고, 에이미 누나는 데모인에 있는 제과점에 취직했으며 엘렌은 전학을 갔다.
그리고 떠났던 베키가 다시 돌아와서 그들을 반긴다.
"우리는 원하면 어디든 갈수 있어." -(영화에서 길버트 그레이프)

처음 길버트 그레이프라는 책과 영화를 보면서 나는 왜 그는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지 참 답답했다.
아무리 어쩔수 없는 처지라 하지만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수도 있을텐데.. 너무 그 자리에서 나는 벗어날수 없다란 생각에 
미리 포기하고 있진 않은지..
하지만 그런 그가 동생 어니를 사랑으로 돌보고 엄마를 위해 그런 가족을 위해..
마지막엔 엄마가 놀림감이 될까봐 집을 불태우는 장면에선 그의 깊은 마음을 느낄수 있었다.
불쌍하기도 했고, 애절하기도 했고, 하지만 그런 그가 대단하기도 했고,
내가 만약 길버트였어도 그런 현실에선 그럴수 밖에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영화에선 연기자들의 연기도 너무 좋았고, 마지막엔 엄마와 더 행복한 모습으로 함께 할수 있었음 좋았겠지만,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그 장면들이 있어 더 감동을 줄수 있었는 듯 하다.
정말 재밌고 감동을 줬던 길버트 그레이프..
유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꼭 봤으면 하는 소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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