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윤정은 지음 / 북로망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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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은의 소설 󰡔메리골드의 마음 세탁소󰡕는 마음을 통째로 꺼내서 박박 빤 다음에 다시 집어넣고 싶다.”라는 기발하면서도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생각을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전개하는 판타지 소설이다. “아픈 날의 기억을 다 지워버리면 행복해질까?”라는 질문은 소설 전체를 가로지른다. 마음에 관한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마음이란 뭘까? 기쁨, 슬픔이란 감정이 머무는 장소일까? 대개의 질문이 답하는 몫을 읽는 이에게 돌리듯, 소설에 그 답은 명쾌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다. 애매하지 않은 대상에 질문은 더 이상 의미가 없으니까.

소설 속 문장들이 맥락 없이 툭툭 던져지는 느낌이다. “삶은 놀라운 비밀의 연속이다.” 이 문장은 사진을 찍은 후 사진이 포토 프린터에서 나오는 장면 바로 뒤에 이어진다. 그 뒤로는 파란 꽃잎이 바다 갤러리를 채운다. ‘꿈꾸는 일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이 마법 없이도 모두의 삶에서 가능하다는 점을 말하려고 그런 문장을 넣었을까? 소설의 모든 내용이 논리적으로 해석이 가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판타지 소설은 그런 이해(理解)를 초월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판타지 소설을 읽는 내가 갖춰야 할 적절한 자세가 아닐 테다. 그럼에도 거슬린다.

나는, 나도 󰡔메리골드의 마음 세탁소󰡕에서 나오는 달콤한 말이 내 마음에 착 안기게 하고 싶다. 사탕을 입에 물고 조금씩 단맛을 음미하며, 저절로 콧노래가 나올 만한 삶을 누리고 싶다. “어떤 아픈 기억은 지워져야만 살 수 있기도 하고, 어떤 기억은 아프지만 그 불행을 이겨내는 힘으로 살기도 하지. 슬픔이 때론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해.” 지워져야만 살 수 있게 하는 기억은 무엇일까. 어떤 슬픔이길래 활력이 될 수 있지? “누가 나를 싫어하고 미워한다면 그 마음을 받아서 상처로 만들지 마시고 돌려주세요. 상처는 내 것이 아니고 상대의 것입니다.” 내 마음에 만들어진 상처가 상대에게 돌려주지 못한 나로 인해 생겼나? “신은 인간에게 최고의 선물을 시련이라는 포장지로 싸서 준대. 오늘 힘든 일이 있다면 그건 선물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거야. 엄청난 선물의 포장지를 벗기는 중일 수도 있다는 거지.” 시련을 겪고 있는 당사자에게 신의 선물운운이 위로가 될까? 조언인가? 다음과 같은 말은 자기기만, 합리화, 정당화를 권유하고 있다. “원칙은 깨라고 있는 것 아닌가. 원칙이 깨지면 원칙을 또 만들면 되지.” 변칙, 꼼수 등을 정당화하는 말이다. 원칙이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 결코 깨기를 전제하지 않는다. 문제 해결이 어려워지고 마음이 복잡해지면 원칙을 되새기면서 나와 내 일이 원칙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확인해야 한다. 원칙은 기본이기 때문이다.

소설을 소설로만 읽자고, 즐기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단지 즐기기만 하기에는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 세월호, 오송 지하차도, 이태원, 화성 아리셀 배터리 제조업체에서 일어난 참사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은 소설 󰡔메리골드의 마음 세탁소󰡕를 어떻게 읽을까. 보이스 피싱 피해자, 전세 사기 피해자는? 그에게 현실의 마음 세탁소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을까? “과거를 후회하느라, 살아갈 미래에 눈이 멀어 미처 오늘을 보지 못한마음 세탁소 주인 지은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과거의 슬픔과 후회를 안고 살아가느라’, 오늘 현재의 행복을 부정하며 살고 있다. 지은을 향해, 마음 세탁소가 있는 건물 1층에 사는 우리 분식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걱정 말어. 모든 건 잠시뿐이고 그마저도 전부 흘러가는 겨. <중략> 끝의 끝까지 가보고 두려움의 얼굴을 마주 볼 때 새로운 시작도 할 수 있는 겨.” 내가 비평가쯤도 안 되니, 어색한 사투리가 소설의 작품성을 떨어뜨린다고 비난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우리 분식 사장이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없이 나오는 그 말은 헛돈다. 상처 입은 마음을 또 후벼 파는 느낌이 든다.

사람, 장소, 때에 따라 어떤 조언과 충고, 위로와 격려는 흉기가 될 수 있다. 좌절과 절망의 무게를 더 무겁게 하고, 자존감을 더 떨어뜨릴 수도 있다. “아무리 후회해도 어제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먼 미래이니 오늘을 살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공평하게 받은 마법 같은 선물이 바로 오늘 하루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길이고, 내 선택이 옳은 것이라, 잘될 것이라 믿는다면 결국 그렇게 될 거야. 말하는 대로, 믿는 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능력이 이미 네 안에 있어. 그냥 의심하지 말고 자신을 믿어봐.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믿어 봐.” 이와 대조가 되는 말이 있다. 심윤경이 쓴 책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에는 할머니가 건넨 다섯 가지 사랑의 말이 나온다. ‘그려(그래)’안뒤여(안돼)’는 자기 확신, ‘뒤얐어(됐어)’는 인정과 위로, ‘몰러(몰라)’는 틈, ‘워쩌(어떡해)’는 공감과 이해를 품고 있다. 앞의 긴 문장보다 뒤의 추임새 같은 짧은 단어가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소설 󰡔메리골드의 마음 세탁소󰡕에는 서사가 없다. 있다면 가십 또는 에피소드 정도의 이야기다. 마음에 위안을 주고 휴식을 주는 이야기 대신, 교훈을 담은 문장, 듣기에는 좋지만, 휘발성 높은 말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잔치에 나오는 말들은 공허, 말 그대로 비어 있다. 물론, 이 말들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행복, 믿음, 기억의 순화, 망각 등은 오늘과 내일의 삶을 평화롭게 하는 데 이바지한다. 하지만 그 평화가 온전히 개인만의 노력으로 이룬 결실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독자성, 독립성, 자주성을 지닌 개인은 사회를 떠나 그런 특성을 강조할 수 없다. 그러니 평화를 얻지 못하는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현실 사회에 실제로 있고, 있어야만 하는 마음 세탁소와 같은 것은 비현실적인 세계를 살아가는 초능력자가 만드는 기계가 아니다. 시민이 논의하고 합의하는 정치로 제정되는 법과 제도이어야 한다.

30만 부 이상이 우리나라에서 팔리고 해외 여러 국가에 판권이 수출된 데 축하한다. 많은 사람이 이 소설을 읽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찾고 나아가길 바란다. 특히 10, 20대 청소년과 젊은이처럼 현실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큰 사람이 지은의 마음 세탁소에서 얼룩을 지우고 햇볕에 잘 말린 후 다리미로 구김을 잘 다려입고 새출발 하길 바란다. 이 세상에 그런 마음 세탁소가 많이 생기길 바란다. 인권, 인간다움을 소중히 지켜주고 빛나게 하는 법과 제도가 그런 세탁소이다. 이것을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민주적인 공동체가 또 그런 세탁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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