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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평점 :
소설 눈부신 안부 1쪽을 넘기면서 나는 잊고 지냈던 **이가 생각났다. 화자인 ‘나’ 해미가 사진 전시회장에서 십여 년 전 자기를 ‘들뜨게도 갈급하게도 하던 사람’인 우재의 뒷모습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사십여 년 전 그해 가을과 겨울, 나를 들뜨고 갈급하게 만들었던 동아리 동기였던 그가 떠올랐다. 같은 학과 여자 동기에게 무례하게 고백했다가 된통 차인 내 이야기를 그는 “어머! 걔 진짜 재수 없다.”라며 나를 두둔했다. 갑자기 친해졌다. ‘재수 없어!’를 입에 달고 살았던 그는 가끔 내 말과 행동에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며 감탄사도 아닌 그 말을 내게도 했다.
그가 늘 탔던 139번 시내버스를 같이 타고 가면 나는 청량리역에서 먼저 내려 새 버스로 갈아타고 서너 정거장을 더 가야 했지만, 그와 잡은 손을 내 호주머니에 넣고 도란도란 키득키득하는 일은 행복했다. ‘학원자주화투쟁’ 하느라 총장실과 학생처 사무실을 점거하고 철야 농성을 하던 여러 날, 연애를 금기시하는 운동권 분위기에다 정파까지 극과 극으로 달랐던 우리는 선배와 동료들 눈을 피해 늦은 시각 동아리방에서 만나,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은 이야기를 밤새 나누었다.
새 학년이 시작된 지 열흘쯤, 그의 생일, 내 마음을 전하려 했던 날 늦은 오후, 가두 투쟁에 나섰다가 하필 막다른 골목으로 도망친 바람에 전투경찰에 잡혀 구속되었다. 지갑에는 생일 선물을 사려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학교 식당 지배인에게 가불한 돈이 들어 있었다. 3개월 정도 감옥에 있다가 나온 후에 여름을 고향집에서 지내다 가을 학기를 맞아 학교에 왔다. 이런저런 환영 모임 술자리마다 그의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귀를 쫑긋 세우던 어느날, 술집 복도에서 그와 해후했다. 술의 힘을 빌어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채로, 보고 싶었다,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저으며 돌아서 간 모습이 그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그의 까맣고 맑고 깊은 눈에 물기가 맴돌았던 것도 같다.
소설 눈부신 안부에는 현재를 살아가는 화자인 ‘나’ 해미와 우재 이야기를 비롯해 해미를 둘러싼 여러 이야기가 버무려져 있다. 해미가 초등학생일 때 중학생이었던 언니가 가스 폭발 사고로 죽은 일과 해미의 자책, 엄마와 아빠의 다툼, 독일 유학, 파독 간호사와 광부의 삶, 해미 이모 오행자와 레나 엄마 최말숙 마리아 이모와 교류, 한수 이모 말자가 벌인 파독 간호사 강제 송환 반대와 광주 시민 학살 항의를 위한 시위 등이 윤슬처럼 빛나는 잔물결을 일으키고, 그 중심에 한수 엄마인 임선자의 첫사랑 K·H 찾기가 ‘뻔한 결말’로 나아간다. K·H가 이미 죽었거나 군사 독재 정권의 만행으로 불우한 삶을 살고 있거나 납북당했거나 아니면 그냥 못 만나고 소설이 끝나도 충분히 재미있는 독서였을 테다.
아~, 나의 상상력은 빈약의 끝판왕이다. 내 안에 있는 굳건한 성별 고정관념을 확인하면서 나는 충격에 빠졌다. 거짓 편지 쓰기가 드러난 해미가 느꼈을 자괴감과 참담함에 공감할 겨를도 없이 나는 천근호가 이해미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 전율, 울음이 곧 터질 것만 같은 감정, 격정이 넓은 사무실에 두어 명의 동료만 있는 상황에서 내게 밀려왔다. 혹시라도 울음이 터질까, 책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따가운 해를 피해 그늘에 섰지만, 무더운 바람이 불었다.
천근호가 해미에게 쓴 이메일만 따로 여러 번 읽었다. 천근호는 죽기 전에 선자가 자기에 쓴 편지와 선자가 평생 쓴 일기를 해가 질 때까지 창가에 앉아 읽었단다. 나는 얼마 전 내 일기장에 옮겨적어 둔 문정자 시인의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시의 한 구절을 읽었다.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 해가 질 때였을 것이다/ 숨죽여 홀로 운 것도 그때였을 것이다’ 해가 질 때, 그 무렵은 낮이 밤으로 이동하는 그 사이, 찰나의 시간이다. 근호는 그때까지 선자를 읽었고, 시인 문정자는 사랑한다고 입술을 열고 소리냈다. 묵직하고 먹먹한 느낌은 지금은 많이 가셨다.
눈부신 안부를 빌려보려고 집 근처 도서관을 검색하니 있더라. 퇴근길에 들러 서가에 갔더니 없다. 누군가 막 대출했다. 공공도서관 10여 군데를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딱 한 군데에 있는데, 자전거로 가려면 차도와 인도를 번갈아 가야 해서 위험했지만, 퇴근길에 지도 앱을 따라 달려갔다. 퇴근 직전에 도서관에 있는지도 확인했다. 낯선 도서관에 자전거 안전모를 쓴 채로 들어갔는데, 없다. 방금 누군가의 손에 들어갔다. 대출을 접고 서점에 문의해 보니, 있단다. 곧장 달려가서 책꽂이에서 꺼냈다. 여느 때라면 눈으로 찜해두기만 하고 다른 책 구경을 한창 했을 테다. 이번엔 손에 꼭 쥐고 다녔다. 어떤 이가 자꾸 근처를 왔다 갔다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급기야 점원이 오더니 데이터에는 재고 1권이 있다고 나온다면서 눈부신 안부가 꽂혀 있던 서가를 뒤진다. 내 손에 있는 눈부신 안부를 번쩍 들어 올리면서 두 사람을 향해 물음보다는 ‘내가 선점했소!’에 가까운 의미가 담긴 말, “이 책인가요?”를 무표정하게 전했다. 고단했지만 눈부신 안부와 눈부시게 만났다.
나는 선자 이모를 애도하고 추모하는 마음으로 그가 읽었던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에서, 이 책을 1961년에 한국에서 처음 번역했던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음에 읽을 도서 목록에 적었다. 세상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슬픔 같은 건 없다,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뭔가를 하려는 바보 같은 마음이 생기는 이유는 간절하기 때문이다, 항상 생각만 하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나면 그것이 사실처럼 느껴진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는 지극한 정성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문장은 오래 담아 두고 싶다. 독후감을 쓰는 일이란 나를 정리하는 일이다. 소설 속 이야기와 등장인물에 빠져 흐느적거리는 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일이다. **이를 향한 마음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