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정한 삶
김경일 지음 / 진성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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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심리학 책이다.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금세 빠져든다. 󰡔적정한 삶󰡕에는 저자 개인의 감정이 고스란히 표현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남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이다 보니 나와 우리 이야기가 된다. 고개를 저절로 끄덕이게 하고 웃음 짓게 하다가 빵 터지게 한다. ‘의지력 총량의 법칙에 나오는 내용대로, 엉터리 논문을 봐달라는 학생 앞에서, 점심시간 교직원 식당에서 동료 교수를 향해서, 그리고 막내딸 채원에게서 저자가 품은 감정은 평범하고 착한 보통 사람들을 위한 학문을 하는 저자의 마음을 그대로, 나의 마음과 똑같게 보여준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고독과 혼자 하는 일을 즐기고 나만의 비밀을 소중하게 여기는 현대인의 모습을 말이다. 한 공간에 여럿이 모여 있는 것보다 혼자 있는 공간에서 여럿을 만나는 일도 재미있고 나름 효율 넘치는 일이라는 점을 알게 했다. 과잉된 관계로 피로한 현대인에게 비대면이 주는 자유로움은 일종의 해방구였는지 모르겠다. 󰡔적정한 삶󰡕이 지니는 여러 가치 중 하나는 팬데믹 상황에서 팬데믹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지만, 팬데믹 전후를 살았거나 살아갈 모두에게 적용해도 의미가 있다는 데 있다. 그것이 이 책을 더 값지게 한다.

저자에 따르면, 감정이야말로 인간의 모든 결정을 가능하게 한다. 감정을 정확하게 알고 다스려야 불쾌감을 피하고 건강을 증진한다. 더 나아가 판단의 질이 향상되어 탁월하고 유능한 인재가 될 수 있다. 더 나은 일상과 인생을 열어주는 작지만, 위대한 비밀을 저자는 나의 뇌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을 명확히 인지하고 조절하고 풍요롭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 책은 이를 이타성, 감사하는 마음, 만족감, 행복감, 정직과 겸손, 웃음 등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타성은 악어, 개코원숭이, 늑대, 침팬지 등이 멸종을 피하고 생존과 번영을 하게 한 힘이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사람의 태도, 인간을 강력한 생물학적 개체로 만들어 낸 진화의 전략이 이타성이다. ‘정직이 있는 그대로 솔직히 말하는 것이라면 겸손은 상대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사회적 기술이다. 적정한 겸손의 지점을 아는 일은 오랜 훈련의 결과이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이다. 감사는 타인에 대한 의무감을 증가하게 한다. 감사할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진 빚을 갚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웃음은 어떤 일을 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신념이나 가치와 달리 하루하루를 계속 이어가게 만드는 힘이다. 심리적 근육을 만들어 주는 것이 웃음이다. 내가 독서기록장에 기록한 문구들이다. 무엇 하나도 적정성을 무시할 수 없는 감정이다.

5년 전 겨울이었다. 나는 큰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자초한 일이었다. 참담함이 내 감정을 지배했다. 앞으로 닥칠 여러 일들이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왔다. 불안과 우울이 늘 꿈틀댔다. 󰡔우리 아이 명시 낭독󰡕 책을 샀다. 초등학교 2학년, 6학년 자식과 암송한 첫 시가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그리고 기형도의 엄마 걱정’. 나보다 훨씬 잘 외우는 딸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 잘못된 행동과 말을 반성하고, 기운을 냈다. 낮에는 고향 집에서 나무 농사를 짓는 형 일을 도왔다. 전지한 나뭇가지를 요란하면서도 살벌한 소음을 내는 파쇄기에 넣어가며 나무밭을 정리했다. 내 일상을 아주 세세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B5 크기의 공책을 늘 지니고 다니면서 쓸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이면 적었다. 어제 일과 오늘 일, 그리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떠오르는 잘못과 실수의 장면을 되새기면서 내 마음을 글로 옮겨 적었다. 일곱 권째 쓰고 있다. 저자 김경일이 제안한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으로 행동하기’, 이순신 장군이 했던 것처럼 아주 작고 구체적인 것들을 기록하기등을 나는 그 일을 겪은 후부터 했다. 평범하고 보통 사람인 내가 적정한 감정을 지니기 위해 했던 일이었다. “실패는 성공보다 중요하다.”, “실패는 우리의 데이터베이스다.”라는 말은 진실이지만 아프다. 아프니까 진실이겠다. ‘상대의 실패를 조롱하거나 처벌하지 않고 소중한 경험으로 대우해 주는 지혜를나를 비롯한 많은 실패자는 바란다.

󰡔적정한 삶󰡕은 단순한 삶의 기술을 넘어 다음과 같은 문구로 성찰의 기회와 지혜를 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기질이다. 사람은 변한다. 낙천성은 타고나지만, 낙관성은 후천적이다. 명사는 사람을 인식하는 데 분명하고 빠르지만, 낙인을 강화한다. 사람을 동사로 표현하자. 소시오패스는 자신의 권리를 우선 주장한다. 만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성취 지향적인 사람은 권력 지향적인 사람에게 이용당하기 쉽다. 󰡔피로사회󰡕를 쓴 철학자 한병철이 신자유주의적 성과사회를 비판하면서 지적한 자유를 착취하는 이’, ‘자기 착취자성취 지향적인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낌없이 표현해도 되는 부정적인 감정은 슬픔이다.”라는 김경일 교수의 주장은 우울증을 긍정성의 과잉 징후로 읽으면서 정신을 살아있게 하는 것부정성의 회복을 강조하는 한병철의 주장과 상통하는 것 같다. 나쁜 습관을 사람의 의지로 없애는 것은 허황한 주장이라는 로이 바우마이스터의 입장에 보태 김경일 교수는 나쁜 습관 위에 좋은 습관을 덮어씌우자고 제안한다. 50대 중반이 코앞인 내게 다음 두 가지는 꼭 기억해야 할 내용이다. 󰡔여성의 활로, 남성의 말로󰡕라는 책 제목과 목적 없는 대화 상대인 저자의 경상도 친구다. 내 여생의 행복은 좋은 관계가 결정할 것 같다.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딱 알맞은 환경, 과잉도 결핍도 아닌 적정의 상태, 내가 이런 환경과 상태에서 살고 있는지 아닌지는 내 감정이 지금 적정한지 살펴보면 알 것 같다. 5년 전 나의 잘못, 실패, 좌절은 분명 적정을 넘어선 과잉 감정의 결과였다. 한 번의 과잉이 아닌 여러 번 반복된 과잉의 결과이다. 그 옆에 적정한 만족감을 누리지 못한 결핍의 감정이 있었다. 요즘 들어 생동하다라는 단어를 곧잘 떠올리고 쓴다. 동사로는 생기 있게 살아 움직이다’, 형용사로는 그림이나 글씨 따위(물질)가 살아 움직이는 듯이 힘이 있다는 뜻이다. ‘생동하는 적정한 삶의 중심에 적정한 감정이 있다. 김경일의 󰡔적정한 삶󰡕은 나와 같이 평범하고 (착한×) 보통인 사람에게 자꾸 넛지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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