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도시를 생각해 - 우리가 먹고 자고 일하고 노는 도시의 안녕을 고민하다
최성용 지음 / 북트리거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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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전거, 천변 산책길

작년 9월부터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차도에서 자전거 타기는 무서운 일이다. 자동차 경적에 움찔움찔 놀라고 짜증 난다. 요란한 경고음에 항의라도 하면 당신 생각해서 빵빵거렸다.”라고 되레 큰소리다. 보도블록이 울퉁불퉁 튀어나온 인도를 불법적으로 5분 정도 엉덩이 들고 자전거를 타는 동안 횡단보도를 불법적으로 자전거를 탄 채 세 차례나 건넌다. 자전거를 타고 건널 수 있는 횡단로는 딱 한 군데다. 역주행도 서너 번 한다. 차가 달리는 도로에서 자전거 타는 이는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긴장한다. 그런데 천변 산책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순간 나는 사고 유발자가 된다.

내가 사는 도시에는 도청사가 있어도 소도시라고 해야 할 정도로 아담하다.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강은 한강, 금강 정도에 훨씬 미치지 못해서 ○○이라 불린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물고기가 가득하고 빨래하기, 멱감기 등을 할 정도로 깨끗했다. 그러다 10여 년 사이에 똥물이 되어 악취를 풍겼다. 1990년대 말 하천 정비 사업을 하면서 하수도를 따로 내더니 1급수에 가까운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천이 되어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봄이면 그 연한 푸르름에 몸과 마음이 열린다. 늦가을부터 늦겨울까지는 막 엮어 씌운 초가지붕에서 느낄 만한 따스함과 옛 고향의 정취를 은근하게 풍기는 갈대숲이 천변 곳곳에 펼쳐져 도시의 삶에 행복이 더해진다. 한여름 다리 밑에서 맴도는 시원한 바람과 짙은 풀 향은 무더위마저 즐기게 한다. 사계절 내내 물줄기와 식생을 만끽하려는 사람이 천변 산책길을 거닌다.

그런데 산책길을 달리는 자전거는 걷는 이의 안전을 위협한다. 2m 포장도로를 반절로 나눠 한쪽은 자전거길, 한쪽은 걷는 길로 표시해 놓았다. 사람끼리 교차하는 순간 자전거끼리 교행하는 찰나는 위험하다. 속도를 줄이고 사람 뒤에서 서행하거나 멀리서부터 나 자전거, 지나가요라는 신호로 딸랑이를 울린다. 행여 2~3m 뒤에서 딸랑거렸다가 두 손 번쩍 들면서 화들짝 놀라는 몸짓을 하는 사람을 맞닥뜨리면 나마저 덩달아 놀라고 자전거 타기를 접고 버스 타기로 바꿀지 고민한다.

2. 우리 집, 도시

도로변에 있는 이층 짜리 처가의 상가 건물 바로 옆 건물의 이층 사무실을 주거 공간으로 고쳐서 15년 전에 이사할 때만 해도 도로 건너편은 주거지로 막혀 있었다. 5년 전쯤, 소방도로를 내면서 집 건너편 불법 점유 건물을 철거하니 안방 창문에서 팔달로를 달리는 차들이 보일 정도로 툭 틔어졌다. 대신 아늑한 거주 공간 느낌은 크게 줄었다. 집 앞 도로는 팔달로가 나기 전 이 도시의 중심 도로였다. 아내의 어린 시절, 집 앞은 서울의 명동거리만큼 사람으로 북적였다. 신도시 개발 무렵부터는 저녁 6~7시만 되어도 시장이 바로 옆인데도 사람과 차 모두 별로 없다. 함박눈이 내리는 날 우리 아이들을 플라스틱 썰매에 태워 집 앞 도로를 미끄러지며 달리곤 했을 정도다. 집 서쪽에는 파산한 저축은행 건물이 버려진 채로 3년 정도 있다 헐리고 두 동짜리 25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지금에야 많이 익숙해졌지만, 막대기 두 개가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모습은 무척 위압적이었다. 가장 아쉬운 일은 도시의 반절을 동과 서로 나누고 있는 야트막한 산에 걸린 큼지막하고 발간 저녁 해를 더는 감상할 수 없게 된 일이다. 수돗물 세기는 약해졌다. 가끔 옥상에 장작불을 피워 캠핑을 즐기고 불멍할 때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아파트 주민 눈치가 보이지만, 그들이 우리를 더 부러워할 것이라 믿으며 이제는 개의하지 않는다. 저자 최성용은 우리가도시의 모습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들어가며에 적었다. 내가 받은 영향은 무엇일까.

우리 집은 구도심에 있는 재래시장 입구에 있다. 서울의 청계천처럼 도심을 흐르는 작은 하천이 있다. 5.16쿠데타 이후 예비역 장성이 이권을 챙기려는 수단으로 하천 복개 공사를 도맡았다. 복개된 도로 양편에 있던 닭집에서 버린 닭털을 비롯한 부산물이 복개 하천을 가득 메웠다. 청계천 정비 사업이 긍정적인 평가를 얻자 그 사업을 벤치마킹한 우리 시는 하천을 덮은 콘크리트를 시장 상인들의 거센 반대를 딛고 걷어냈다. 저수지 두 곳을 지나온 물이 자연 그대로 흐르도록 했다. 여름에 집 앞의 대기 온도가 27도인 걸 확인하고 시내버스를 20분 남짓 타고 도시 외곽 야산 밑에 자리 잡은 직장에 출근해서 건물 현관에 걸린 온도계를 보면 24도였다. 그런데 복개천을 자연 하천으로 만든 뒤에는 기온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된 책 속 사진으로 본 수원천이나 공주의 제민천 모습과는 크게 다르고 볼품은 없지만, 원래 물이 흐르던 개천(개울)을 눈으로 보고 물비린내를 맡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이다.

 

3. 정치, 내일의 도시가 현실이 되게 하는 방법

최성용의 󰡔내일의 도시를 생각해󰡕를 숨 헐떡여 가며 재미나게 읽으면서, 왜 이제야 이런 책을 읽게 되었는지, 진작에 읽었으면 내가 사는 도시를 제대로 재미있게 둘러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희열을 함께 느꼈다. 도로의 주인은 단연코 사람이어야 한다. 내일의 도시가 기후 위기를 이겨내려면, 자전거(전기자전거 말고)가 자동차보다 더 많아지고 일반적인 이동 수단이 되려면, ‘혁명적인 필요 창출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시내 중심 도로에 2~3km 길이의 관광자원 차원으로 노면전차인 트램 설치 사업은 최소 사백억 원에서 육백억 원이 든다. 그 돈을 시내버스 정기권 혜택을 늘리는 데 쓰거나 사람이 편하게 거닐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도로로 만드는 데 쓰는 것이 훨씬 낫다. 내가 말하는 혁명이란 그렇게 되는 것, 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린벨트가 김신조 사건 이후 군사시설을 숨겨 놓을 땅을 조성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최성용의 󰡔내일의 도시를 생각해󰡕로 처음 알았다. 물을 머금는 도시, 인도를 투수 포장으로 바꿔 빗물을 머금게 한다는 것, 덕수궁 돌담길처럼 트래픽 카밍 기법을 적용한 우리 지역 기차역 앞 마중길, 덴마크 코펜하겐의 친환경 쓰레기 처리장, 무장애 숲길 등 익숙한 것을 신선하게 바르게 알고, 또 새로 알고 깨달았다. 내가 사는 동네에 낡은 공간이나 건물이 있나, 있다. 호텔 건물. 얼마 전에 집 앞 100m 떨어진 곳에 이십 년 가까이 빈 채로 있는 공간을 시에서 매입해 소규모 공공주택으로 개조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아내와 나눈 적이 있다. 강력한 지역 균형 개발 정책을 실시하면 녹지 공간 훼손 없이도 살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 지방의 공공주택은 비어 있다. 입법, 사법, 행정부 소속 모든 기관이 세종시로 모이고 주요 공공기관이 수도권에서 벗어나 분산 배치되도록 헌법과 법률이 제정된다. 그야말로 무혈혁명’, ‘작은 혁명이 이뤄진다면 내일의 도시는 살만한 데가 된다. 혁명적인 사고정책이 아니고서는 현재의 기후 위기, 출생률 위기, 지역 위기 등을 해결할 수 없다. 󰡔내일의 도시를 생각해󰡕는 우리에게 그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저자는 지역단체장이나 입법기관으로서의 정치를 꼭 해야 한다. 그래야 내일의 도시는 생각에 머물지 않고 현실이 된다. ‘여전히 도시에 살고, 도시를 구경하며, 도시에 대해 쓰고 있는최성용 저자가 정치를 한다면, 정치는 긍정어의 대표 명사가 될 수 있다.

저자를 찬양하는 글은 처음 쓴다. 저자의 글을 칭찬하면서 저자를 존경하는 마음은 가진 적은 있지만, 저자의 글을 통해 저자 자체를 추앙까지 하고 있다. 저자의 어릴 적 꿈이 시장이니, 이런 분이 시장으로 일하고 있는 도시에 언제일지 몰라도 한 달만이라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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