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투쟁기 -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우춘희 지음 / 교양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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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무 농사, 이주노동자

우리 형은 나무 농사를 20여 년째 짓고 있다. 교목보다 관목 위주로 묘목을 생산하는 우리 형은 여성 노동을 주로 필요로 한다. 주저앉은 채로 조심스럽고 세심한 손길로 막 싹 튼 묘목 사이에 자란 잡초를 뽑거나 2~3cm 간격으로 촘촘히 꺾꽂이하고 옮겨 심는 작업 등이 많기 때문이다. 다른 곡물 농사처럼 나무 농사도 때를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싹 트기 전인 4월까지 밭고랑을 만들어 비닐을 치고 묘목 작업을 하려면 여러 일손이 집중적으로 필요하다. 현금을 손에 바로 쥐는 일이 많지 않은 농촌에서 나무 농사 품팔이는 하루 일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현금을 받는 일인데도, 막상 참여하는 이는 자기네 봄 농사 준비 다 마치고 한숨 돌리는 70~80대 할머니들이다. 손이 느린 할머니 일손 탓에 작업 속도가 더디다 보니 도시의 스무 살 청년과 맞먹는 농촌의 50대 중반인 우리 형은 속이 타들어 가는데도 달리 도리가 없었다. 최근 들어서는 자식이 밭일하지 말라고 해서, 기력이 떨어져서, 요양병원에 들어가서 더는 품을 팔지 못하는 할머니 일꾼이 늘어나 더욱 일손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2~4월 자연과 사람 모두 봄기운을 느끼며 생기를 띠어가는 시절에 봄을 찬양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리는 가운데 형은 사람 구하는 데 온 힘을 다하다 결국에는 포기하고 체념하다 농부가 된 걸 후회하면서 봄 가뭄처럼 속이 탄다. 관목을 포기하고 교목 위주로 농사 방향을 틀려고 하던 즈음, 작년과 올해 외국인 계절근로자 프로그램으로 태국 국적의 20대 초반 여성 일꾼 10여 명을 얻었다. 한 달 걸릴 일거리를 일주일 만에 끝내고 얼마나 흡족해하던지. 더욱이 두 말 세 말 반복하지 않아도 단번에 알아듣고 깔끔하게 처리하는 솜씨에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딱 한 번,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다며 문화 수준이 낮다는 불평 한마디 했다.

 

2. 깻잎, 이주노동자, 임금 체불

깻잎을 좋아하는 나는 작년 5월 말, 토요판 신문 책 소개 면에서 깻잎 따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이란 소제목이 붙은 󰡔깻잎 투쟁기󰡕를 처음 접했다. ‘하루 10시간씩 매일 깻잎 15천 장이란 문구를 보고 설마, 그게 가능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마침 이금이의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는 중이었다. 일제 강점기에 포와로 불린 미국 하와이에 있는 사탕수수밭에 사진 신부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이주한 이들의 삶을 그린 소설이었다. 100여 년을 사이에 두고 우리 땅에서 다른 나라 국적을 지닌 이들이 사진 신부가 겪었던 이주 노동의 고통을 고스란히 겪고 있는 사실에 놀라웠고 안타까웠다.

수천만 원의 임금체불로 고통을 겪은 캄보디아 국적의 쓰레이응 씨 사연이 가슴에 먹먹하게 남는다. 22살 여성, 20168월부터 20202월까지 37개월 동안 채소 농장에서 일하고 받은 임금이 950만 원이다. 최저임금으로 계산해도 6천만 원 이상을 받지 못한 셈이다. 옛일이 떠올랐다. 이름있는 대학교 학생이 아니었던 나는 친누나 친구의 중학생 딸 영어 과외를 했다. 이름있는 대학 다니는 사람보다 3분의 1 수준인 월 10만 원을 받았다. 보통 과외비는 선불이지만, 그 부모가 후불로 하자 해서 궁색한 처지였던 나는 관례를 깨고 그러자 했다. 6개월 남짓하다가 그 중학생이 그만하자 해서 끝났다. 두 달분 과외비를 못 받은 상태였다. 20만 원을 곧 보내주겠다던 그 부모는 석 달이 지나도록 과외비를 입금하지 않았다. 그동안 거의 매일 같이 입금 여부를 텔레뱅킹으로 확인했다. 돈 버는 손위 남매들에게 몇만 원씩 용돈을 타가며, 옥탑 자취방에서 버텼다. 더는 손 벌리기가 어려웠던 어느 날 동전을 모아둔 저금통에서 동전을 모두 꺼내 보니 200원 하는 백자 담배 한 갑에 라면 두 봉지 살 돈이 나왔다. 그 돈을 책상 위에 놓고 등교했다. 돌아와 보니 주택가 일대에 도둑이 들어 온갖 금품을 싹 쓸어 갔다며 경찰이 분주히 다녔다. 설마하니 내 동전까지? 옥탑방에 들어와 보니 창문은 열려 있고 신발 자국이 방바닥에 찍혀 있었다. 내 동전은 없어졌다. 저녁을 굶어야 했다. 결국 과외비 달라는 전화를 또 걸었지만, 형편이 어렵다며 양해해달라는 답을 받았다. 그때 절박했던 심정이 잊히지 않는다. 나는 누나에게 전화했다. 누나가 보내준 돈으로 라면과 달걀을 사서 저녁을 먹었다. 누나가 그 친구에게 말했는지 그 뒤로 한 달이 지나, 거의 포기할 무렵에 20만 원이 입금되었다. 쓰레이잉 씨는 나보다 몇백 배 더한 상황이었다.

 

3. 이주노동자에 대한 기회주의적인 한국인의 태도

우춘희의 󰡔깻잎 투쟁기󰡕는 이금이 소설을 먼 옛 이야기가 아닌 오늘의 우리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별과 고통의 이야기로 전하고 있다. 󰡔깻잎 투쟁기󰡕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데, 정회옥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쓴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혐오와 차별의 정치학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다. 그는 유럽에서 마녀 누명을 쓰고 화형을 당한 여성이 대개 혼자 살면서 재산이 있는 유복한 여성이란 점을 근거로 희생양 찾기가 그 사회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경향신문 김준기 뉴스콘텐츠부문장은 2023914일 자 칼럼에서 197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경제가 침체하면서 불법 이민자에 대한 탄압과 혐오가 거세졌다고 적었다. 한국 경제의 성장세가 주춤하면서 이주노동자가 희생양이 될까 두렵다. 이를 정회옥 교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우리 한국인의 태도가 기회주의적이라고 힐난한다. 경제 상황이 좋을 때는 한국이라는 멀고 낯선 땅에 와서 고생이 많다고 호의를 보이다가도, 경기가 안 좋을 때면 외국인 노동자가 좋은 일자리를 다 빼앗아 간다거나 그들과 경쟁하다가 내 임금이 깎인다고 하거나 하는 식으로 연민과 호의가 혐오와 적대감으로 바뀐다고 지적한다. 이런 태도는 미국인이 아시아계 이주자를 대하는 태도와 똑같다. 우리나라 사람이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행태는 서구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 인종주의의 왜곡된 변형의 결과이다. 우리는 차별받는 인종이면서 동시에 차별하는 인종이라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처지에 놓여 있다. 정희옥 교수의 이런 판단의 근거가 󰡔깻잎 투쟁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4. 사소(些少)한 혁명 바라기

집 근처 재래시장 점포 세 군데에 동남아시아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채소, 과일, 생선 등을 팔고 있다. 1~2년 사이에 그들은 우리 곁에 사장님으로 함께 자리하고 있다. 주말에는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이들이 주변에 있는 구제 옷 가게를 찾는다. 우리나라 사람이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들어대듯 그들의 말과 웃음도 요란하다. 똑같은 사람이다. 특별히 더 비난하거나 신경 쓸 이유가 없다. 출생률 0.78명인 현재, 한국이라는 나라가 아니라 그냥 우리 사회가 덜 불행하고 더불어 살아가려면 모두가 그저 사람이라는 생각을 저절로 해야 한다. 깻잎뿐만 아니라 상추, 고추 등 모든 먹을거리를 큰 걱정 없이 나누어 먹을 수 있으려면 제도와 법, 정책 모두를 동원해서라도 인종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거창한 체제의 혁명이 아닌, 아주 사소해 보이는 영역에서 혁명이 아니면 우리는 크게 후회할지 모른다.

처음에는아주 작은 사소한 혁명이라고 썼다. 혹시 사소작다는 뜻이 있어서 동어반복이 아닌지 사전을 찾아보니 그렇다. ‘些少한자어 자체도 동어반복이다. 작고 적고 보잘것없다는 뜻이 중첩된 단어다. 다르고 익숙하지 않은 그 무언가를 대상으로 텃새를 부리고 차별하고 혐오와 조롱을 일삼는 행태가 당하는 처지에서 보면 결코 작거나 적거나 보잘것없지 않음은 분명하다. 그 무엇이 대개 수적으로 적은그 무엇이다 보니 사소하게 여기는 일을 무척 당연하게 여긴다. 다르고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이 사소해 보이는 인식과 태도, 제도와 정책의 혁명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혁명이다. 조영관 이주민센터장도,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도 신문 칼럼에서 사람이 오는 일이다.’를 강조한다. 혁명이 필요하다. 마음 편하게 상추 한 잎 위에 깻잎 한 장 포개어 고기 한 점 기분 좋게 쌈 싸 먹을 사소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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