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독립운동 열전 1~2 - 전2권 독립운동 열전
임경석 지음 / 푸른역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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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서술만큼 품이 많이 드는 일이 또 있을까싶다. 저자의 노고가 면면마다 줄줄 흘러넘친다. 1900년 전후의 한글을 독해하는 일은 거의 외국어 번역 수준일 텐데, 󰡔독립운동 열전󰡕 1, 2권에는 그 시절 사료가 즐비하다.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기 위해 역사학자의 눈과 손을 거친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에 북경어와 광둥어로 된 자료의 흔적이 생생하다.

  한국의 독립운동 역사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잊힌 사건과 잊힌 인물을 각각 400여 쪽씩 되는 낱권에 넣었다. 두 권의 책은 씨줄과 날줄처럼 서로 얽힌다. 사건 들 간, 인물 들 간 서술이 독립운동, 해방운동, 혁명운동의 베로 짜인다. 한국의 독립운동에서 잊힌 한국사회주의 운동사를 하나의 실에 꿸 수도 있다.

  서술이 독특하다. 시사 잡지 기고문을 모은 책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독자의 궁금증을 자극하면서 흥미와 긴장감을 높여준다. ‘놀랍다.’, ‘이제 가장 중요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라는 문장은 역사책에서 처음 접한다. 15만원 사건을 소개하면서 한 꼭지 글의 마지막을 기선에 탑승한 네 청년은 안도감을 느꼈다. 무모하고 불가능해 보였던 계획이 성공한 것만 같았다.”로 맺는다. 사료를 근거로 인물의 감정을 적시한다. 다음 절을 곧바로 읽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최봉설의 회고록을 기초로 한 그의 도주 장면 서술은 당장에 액션 영화를 찍어도 될 만큼 세밀하다. 신문 기사와 자서전, 증언 등을 종합하여 독립 운동에 참여한 인물이 겪었던 체포, 심문, 고문, 수형 생활의 참혹함을 전율하며 느낄 수 있다.

  딱딱하고 건조하기보다는 부드럽고 눈물 기운이 가득 배여 있는 가슴 뭉클한 역사책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두어 문장으로 2시간짜리 영화를 만들어 내는 요즘, 이 두 권만으로도 수백 편의 영화를 찍을 수 있겠다. 1차 사료도 풍부하거니와 저자의 독창적이고 열정적인 해석과 평가도 이 책의 매력이다. 개인적 차원의 활동으로 여겨진 의열단 활동을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당과 연계해서 해석하거나 전로한족총회 내의 다수파와 소수파 간 갈등을 상해파 공산당과 이르쿠츠크 공산당 간의 분쟁의 연원으로 평가한다. 잊힌 사건과 인물을 재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의 독립운동 담론을 풍부하게 할 만한 논쟁적인 책으로서의 위상을 지닌다.

  역사적 사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역사가로서 자세가 돋보인다. 한국 독립운동에 사회주의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세세하게 파악하고 서술한다고 해서 사회주의 자체를 옹호하거나 찬양하지는 않는다. 역사가로서 객관적 사실에 입각해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역사적 사실은 단순해보이지만, 진실은 그 사실의 이면과 그림자와 함께 복잡한 양상을 띤다. 레닌과 이동휘의 회담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독립운동 정파 간 대립이라는 또 다른 사실 속에서 그 진실이 드러나듯 말이다.

  운동과 투쟁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배신자, 변절자 중에서 동지의 고통과 죽음을 팔아 일신의 안위를 누린 자 다섯 명이 16장에 실명으로 나온다. 20228월에 고위 경찰 공무원의 과거 프락치 의혹을 읽는 듯하다. 한국 독립운동 역사는 현재진행형으로서의 역사의 본보기임을 이 책은 증명하고 있다. 사진으로 남은 얼굴 하나하나가 현재의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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