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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6년 6월
평점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14일』은 국적도 나이도 다르고 집필하는 장르조차 다른 36명의 작가가 모여 한 권으로 엮어낸 책이다. 단편을 모아둔 것도 아니고,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하나의 이야기였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시절, 뉴욕 로어이스트사이드 리빙턴가에 있는 한 건물 관리인 ‘펀스비 암스‘의 이야기가 서두였다. 그는 이전 관리인이 작성한 노트를 발견하게 되고 건물 세입자들을 알게 된다. 펀스비 암스에 의하면 이 건물에는 유명한 사람은 없다고 했지만, 세입자들이 옥상에서 서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어떤 유명 인사의 말보다도 흥미로웠다.
로맨스부터 스릴러, 순수문학에서 아동문학, 시와 논픽션까지. 각 장르에서 저명한 작가가 공동 집필한 소설이라더니, 세입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작가 고유의 색이 묻어 나오기도 했다.
특히 내가 맡은 파트이자, 가장 집중해서 읽었던 ‘열두째 날’에는 이야기 속에 시를 인용했는데, 나는 분명 이 이야기를 쓴 사람이 시인일 것이라고 추측했었다. 사실 나는 참여 작가 가운데 익숙한 이름이 거의 없었기에 시인이라고 추측한다 해도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은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끝난 뒤 ‘열두째 날’을 쓴 작가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것도 이 소설의 재미라고 생각되었다. 읽기 전에는 작가를 추측하고, 읽고 나서는 작가를 알고, 작가가 세입자들의 이름을 빌려 쓴 이야기에 묻어 나오는 고유의 색을 발견하는 재미. 이 소설이 아니고서야 이런 재미를 언제 느낄 수 있을까.
나는 ‘열두째 날’ 중에서도 시인이 들려준 이야기가 좋았다. 소설을 읽는 독자도, 옥상에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 나누는 세입자들도, 「데카메론」을 떠올렸을 것이다. 흑사병을 피해 피렌체 교외로 피신한 10명의 남녀가 열흘 동안 매일 이야기를 나누는 책 말이다. 시인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예술행정가 부부가 전염병에 대한 관한 고전 독서회에서 「데카메론」을 가져오면서부터였다.
“다음에 전염병에 관해 글을 쓴 작가를 선택할 때는 전염병에 희생된 작가면서도 기쁨과 유머를 찾아냈던 사람을 고르십시오.”
부부는 사람들에게 「데카메론」이 퀴어 혐오니 장애인 혐오니 하는 비난을 잔뜩 듣는다. 세계적인 고전 작품이지만, 현대의 시각에서는 비판받을 부분이 있는 작품이다. 어쩌면 관리인이 몰래 녹음했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온다면, 아주 먼 미래에는 지금의 「데카메론」처럼 그 시대의 시선으로 평가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쉽지 않은 글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마지막까지 읽어야 하는 책이 분명하다. 팬데믹 시절, 주민들은 왜 「데카메론」처럼 옥상에 모여 하나둘씩 저마다의 이야기를 꺼냈을까. 전염병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기다림에는 이야기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