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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관청기행 - 조선은 어떻게 왕조 500년을 운영하고 통치했을까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18년 7월
평점 :
조선관청 기행 - 박영규 지음 / 김영사
부제 : 조선은 어떻게 왕조 500년을 운영하고 통치했을까
조선 500년의 관청 현황과 그 기능 그리고 그 관청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여다본다.
얼마 전부터 『한 권으로 읽는 **』 시리즈로 조선, 고려, 고구려 등을 들여다보는 저자로서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저자는 철학과 독문학 전공자로서 역사 쪽에 관심을 두고 책을 써 가는 중
일반인들이 읽기 좋은 수준의 대중 역사서를 만드는 중인데 그렇다고 가볍지는 않은 책을 만들어 낸다.
그 길고 깊은 우리 역사를 깊이 파서 정확하게 정의하고 멋지고 깊이 있는 우리 문화를 만천하에 정확하게 알리는 정통파 연구가로서의 사학자들도 필요하고 그 유산을 오래 보전하는 보존 전문가도 필요하지만 그 집대성된 여러 자료들을 한데 모아서 잘 정리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 또한 저자의 몫이고 강사의 몫이며 그를 잘 풀어서 영상과 함께 재미있게 전파하는 스타 강사들도 나타는 것은 좋은 현상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 또한 최근의 트렌드.
텍스트를 특정 계층만 점유하던 시절이 있었고, 책을 찍어서 사전을 끼고 번역서를 공부해야 했던 시절을 지나 출판과 정보의 홍수를 인터넷에서 가볍게 볼 수 있는 세상이지만, 세상을 보통 사람들은 거기에 스토리를 엮어서 재미있게 들려주는 동영상과 방송으로 흘러가 연예인인지 사학자인지 구별이 잘 안되는 경계인들로부터 편하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듣는 것이 시청률, 시청률은 몸값으로 이어지는 요즘....
사학자를 원하는지 사학을 기반으로 하는 탤런트를 원하는지 모르겠으나, 일반인들에게 어떻하면 쏙쏙 잘 집어넣어 주는가가 그 저자와 강사의 동력이고 미래 가능성이 아닐까...
이번에 나온 책은 텍스트로 조선의 관청을 잘 정리해서 요점만 차곡차곡 잘 쌓은 듯 하다.
지나간 우리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잘 전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에 철학을 엮어 지금의 역사를 새로 쓰는 것으로 이어지는 철학이 가미된 역사 공부와 미래 역사에 대한 길을 안내하는 소신도 좀 필요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겨우 몇 달, 몇 년 사이에 과거의 역사와 지금의 정치사와 미래에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신선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촛불로 밝혀진듯해서 살짝 한숨을 돌리는 요즘이다.
아무튼 저자 박영규는 역사를 발굴하고 캐는 사학자라기보다는 우리 역사에 대해 독자들의 수준을 감안하여 다양한 역사들을 눈높이에 맞게 적절하게 편집한 책이 한 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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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조선 시대 관직은 실직과 산직으로 나뉜다. 실직은 실무를 담당한 실제 관직을 말한다. 산직은 벼슬이 있으나 근무처는 없는 관직으로 일종의 명예직
_ 실직은 녹관과 무록관으로 구분한다. 녹관은 녹봉이 있고, 무록관은 당연 녹봉이 없다.
_ 녹관은 정직과 체아직으로 구분한다. 정직은 지속적으로 근무하고 정기적으로 녹을 받는 정규직, 체아직은 일정 기간씩 교대로 근무하되 근무할 때만 녹을 받는 임시직 또는 계약직. 체아직은 녹봉 없이 1년에 네 차례 근무평정에 따라 녹봉을 주되 직책을 보장하지 않았다. 조선 시대의 무반직 중 하급직은 대부분 체아직이었고, 기술 관료와 훈도도 마찬가지. 체아직에는 전체아와 반체아가 있었음. 전체아는 1년 동안 보장, 반체아는 6개월 단위로 근무를 평정해 근무 연장 여부를 결정
_ 양반을 중심으로 문관인 동반 벼슬과 무관인 서관 벼슬로 나뉘었고, 체아직은 서반 벼슬에 많음. 《경국대전》에 따르면 관직 수는 5,605개인데, 그중 체아직이 3,110개. 체아직이 전체 관직 수의 절반을 넘었던 것. 특히 문관인 동관 벼슬은 전체 1,799개 중에서 체아직이 105개로 약 6%에 불과했으나, 무관인 서반 벼슬은 전체 3,826개 중에서 3,005개가 체아직으로 무려 80%에 달했다. 그만큼 조선 사회는 무관 보다 문관을 훨씬 더 우대.
_ 자신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무록관을 받아들이지만 경제적 수익은 뒷거래로 올림. 이것도 조정에서도 알고 있었던 일.
_ 조선 왕조에서 왕이 후궁을 맞아들이는 제도는 태종 대에 처음 만듬, 초기에는 중국 황제의
_ 궁녀는 법으로 천민 중에서 뽑아 쓰도록 함. 하지만 궁녀는 임금과 왕비의 심부름꾼이자 살림꾼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뽑을 수 없었다. 결국 조선 시대 내내 법은 지켜지지 않았고 대개 평민이나 중인 출신의 딸을 뽑았다.
후궁 중에는 과부도 있었고, 자매를 후궁으로 받아들인 정종, 정종 대의 기록이 보여주는 과부 결혼과 자매가 한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것은 신라나 고려 시대에 종종 있었던 일. 조선 시대에 이르러 많이 사라지긴 했으나 이는 조선 초기만 해도 그러한 풍습이 성행했음을 보여줌.
_ 자식이 없는 후궁들은 출가해서 비구니로 살다가 여생을 마치는 사례가 많았음.
_ 궁녀란 말 그대로 궁궐 안에서 근무하는 여성들을 말한다. 궁녀는 궁중 여관의 별칭으로 궁궐 내에 거주하면서 일정한 지위와 월급을 받는 왕조 시대의 여성 공무원을 가리킴. 나인은 원래 궁궐 내에 산다는 뜻의 내인으로 이를 관습적으로 나인이라 부른 것. 궁궐에 들어온다고 처음부터 나인이 되는 것은 아니고 15년을 일해야 비로소 나인이 됨. 나인이 되고 나서 다시 15년이 지나여 상궁이 됨.
_ 지밀은 왕과 왕비를 직접 챙기는 곳이라 모든 궁녀들이 원하는 근무처. 인물이 곱고 공부를 잘 해야 하며 출신 집안도 평민이 아니라 중인 이상. 지밀 궁녀의 월급은 250만 원에서 980만 원 내외, 일반 궁녀는 200만 원에서 400만 원, 노비인 비자는 90만 원 정도를 받음. 하루 쉬고 하루 일하는 2교대 근무.
_ 집현전 존속 기간은 37년. 세종 2년(1420년)부터 세조 3년(1457년)까지. 집현전 제도는 원래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나라 때 처음 등장. 그 조직이 확대되어 학문적인 기관으로 성장한 것은 당 현종 무렵. 우리나라가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은 삼국시대지만 구체적으로 조직을 갖추고 집현전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때는 고려 인종 대. 1459년 6월 사육신 사건으로 단종 복위 사건과 연루되어 혁파.
_ 육조라는 조선시대 정무 행정기관의 전신은 고려 6대 성종. 원나라 복속기에 사라졌다가 원나라 영향을 벗어나는 공양왕 원년에 조준, 정도전 등의 개혁 세력이 중심이 되어 도입. 고려 시대 육조의 서열은 이,병,호,형,예,조, 공조 순이었으나 유교 국가 조선은 유교 경전 《주례》의 순서에 따라 이,호,예,병,형,공조 순으로 바꿈.
_ 조선 후기에 지나치게 무과 급제자가 생기면서 여러 가지 폐단이 나타남. 양민이면 누구나 무과에 응시할 수 있었으나 대개는 양반 자제들이 시험을 치름. 무과는 문과에 비해 상대적으로 급제가 쉬워 손쉽게 관직을 얻을 수 있었음. 문과의 복시가 33명으로 고정된 것과 달리 무과는 숫자가 늘어나 심지어 수천 명의 합격자가 나오기도 함.
_ 한양은 성광 안쪽인 것, 한성부의 관할 구역은 성밖 10리까지.
_ 향리는 세습직. 무록직으로 백성에게 돈을 착복하는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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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관청 기행 - 박영규 지음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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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조선을 받쳐주던 행정기관의 종류와 기능 관원들의 출신 배경과 업무 그리고 녹봉의 유무 등... 조선 최고 정무기관인 의정부 정승 부터 말단 역참의 관노비까지의 조직과 구성원 급여 등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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