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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헌터 9
조정만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발전에 발전이 보인다.
본 만화를 처음 보았을 때, 주인공의 설정 등이 일본의 엑소시스트 내용을 다룬 모 만화가 떠올라서 조금 아쉬운 감정을 가졌다. 데뷔작이셔서 그런지 작화 역시 두개골의 오류 등으로 눈에 걸리는 부분이 조금씩 보였고 결국 이어서 살지 말지에 대해 약간의 망설임도 있었다.
하지만 독자들이 믿고 사서 봐야, 작가들도 힘을 내서 열심히 그릴 것이라는 생각에, 조 작가님을 믿고 후속 권들도 사모으기 시작했다. 가면 갈 수록 작화의 오류들은 줄어들어 갔고, 쓸대 없는 개그도 적정선으로 줄어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앞서 걸렸던 설정 등, 스토리 자체는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내려 하시는 모습이 꾸준히 보였고, 어느 순간 설정이 보다 작가의 것에 근접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연재속도가 매우 느려 단행본으로만 사서 보는 필자에게는 답답한 감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보다 발전된 모습으로 나타나서 믿음에 대한 보답을 받았다.(물론 월간 온라인 잡지의 특징상 시간이 두배로 걸린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으니 크게 불만은 없었지만.)
그렇게 다시 오랜 시간을 다른 만화들과 함께 지내다, 심심해서 서점에 갔더니, 위치헌터 9권이 올라와있었다. 래핑이 되어있는 책을 보고 있노라면 숨이 가빠지고 손이 뻗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책장에서 책을 꺼내 표지를 보고 감동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6권이후 감동의 발전을 거둔 표지들이였지만, 이번 표지는 적절한 시각적 패턴의 조화와 보다 성숙해진 인물 묘사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은 작가분의 존재가 잊혀지는 동안 그분은 한 번 더 발전을 이루셨구나 하는 마음이 절로 생기게 하였다. (마치 죽어가다가 살아나면 더욱 강해지는 사이아인의 정신이랄까?)
점심값을 털어가며 당장에 책을 구입한 후 내용을 감상하였다. 겉표지의 우아한 아가씨에 이어 핀업브로마이드의 아리따운 아가씨 둘이 필자를 반겨주었다. 음음, 하며 간단한 감탄사를 한 후, 본 내용으로 들어갔다.
우선적으로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과하지 않고 적절하게 들어간 톤의 활용이 저의 눈을 훈훈하게 해주었다. 충분한 펜선 위에 살짝 얹어진 톤은 톤만이 있는 작품들에 비해 보다 밀도있는 그림을 보여주었으며, 톤이 전혀 없는 작품들에 비해 깔끔함을 나타내어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거기에 과격할 정도의 컷 분할. 만화가 지망생인 필자가 제일 못하는 것이 과감한 컷 분할인데, 본 작품은 여전히 스피드하고, 박력있는 전개에 맞춰 크고 숫자가 적은 컷을 배치해 전장의 정신 없음을 보다 잘 표현 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용 이해에 문제가 가거나 하지는 않아 보는데에 지장은 없어 적절하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깔끔하고 좋은 작화에서 조금 필자의 개인적인 취향을 넣어주었으면 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9권 8,9쪽(원탁의 기사와 골렘간의 싸움), 140쪽(검에 가격당한 모습), 145쪽(마탄을 모으는 장면), 146쪽(마탄에 맞아 데미지를 입는 장면)등에는 박력이 넘치면 좋을 것 같다. 이런 부분에서는 약간 알아보기가 귀찮을지 모르더라도 일본의 베르세르크와 비슷한 거친 선으로 땀냄새 나게 효과 등을 표현한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물론 본 만화의 특징이라면 특징인 깔끔한 작화에 안 어울릴 수도 있으니 상상만 해볼 뿐.)
간단히 정리하자면 작화자체는 개인적인 취향과는 조금 달라서 아쉽지만, 굉장히 완성도가 올라갔고, 깔끔하며 힘이 있다. 돈 들이면서 모으는 보람을 느끼는 발전이다.
이제 내용적인 측면으로 넘어가볼까, 리뷰인데 스포일러짓을 할 수는 없으니 간단한 느낌만 넘겨짚을까한다.
동생을 다시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싸우는 주인공 타샤, 그런 주인공의 서포터로 활약하는 수수께끼의 소녀 할로윈, 주인공을 자신의 서포터로 만들고자 하는 동생 이리아, 스승의 죽음에 마녀사냥을 시작한 류환, 그리고 할로윈을 노리는 란슬롯. 이번 단행본에서 가장 주된 인물이 아닐까 싶다.
이번의 대립은 이리아와 할로윈,류환의 대립과, 타샤,할로윈,란슬롯 간의 대립으로 크게 둘로 나누어지는 듯하다. 두 사건을 보여주되, 한 사건의 완료로 다른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중도에 사건이 중복되어 일이 엉키는 식의 이야기 진행을 보여줘 몰입도는 약간 떨어지지만, 그리 다양한 갈등주제가 아님에도 읽는 내내 지루함을 못 느끼게 하는 구성이었다. 이야기 진행 중 할로윈의 과거가 살짝살짝 보이기도 하고, 파트너끼리의 갈등도 보이면서 작은 사건사건을 넣은 것도 관심을 끌고 뒷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좋은 장치였던 것 같다. 마지막부분에서는 S급 마녀 이디아의 죽음에 관한 또다른 물음도 나타나 후속권이 기대되는 그런 마무리까지 만들어두어 과연 프로구나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스토리 면에서도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는데 만화 초반에서 쿠가와 마녀의 서포터가 서로 맞붙기 시작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정말 두 페이지 대화로 끝이 나고 그 후로는 잊혀진 듯한 감이 있어서 왠지모를 아쉬움이 생긴다. 하지만 이 아쉬움을 노린 거라면 탁월한 선택. 왠지 쿠가의 싸움은 10권에서 등장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솟아오른다. 쿠가의 팬이 아닌 사람마저 기대되는 쿠가의 전투인데, 쿠가의 팬이라면 얼마나 기다릴지, 다음 이야기들의 독자는 이미 잡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토리도 간단히 정리하자면, A와 B라는 큰 사건이 연속적이지 않고 몽타주 기법처럼 등장해 이야기의 몰입도는 약간 떨어질지 몰라도 흥미는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과 적절하게 조이고 풀어주는 할로윈의 비밀, 그리고 아쉬움을 남기는 인물의 제한된 묘사가 좋았다.
이번 권은, 오랜만에 만나서 자신이 살던 이야기를 하던 중, 이야기를 끊어먹고 도망간 친구와 같이 반가우면서 재회가 기대되는 그런 책이었다. 독자로서 다음권이 매우 기대가 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