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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 150년
김호준 지음 / 주류성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김호준 著 주류성
저자는 저널리스트로서 이 책에 쓰인 방법론이 학문적 접근 보다는 저널리스틱한 어프로치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저널리스트로서의 전력 때문일 것이며, 책의 고려인들의 인생역정에 관한 기록의 대부분은 필자가 직접 찾아가 성사시킨 인터뷰에서 얻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불과 150년 50만의 역사이다 보니 향토지 읽는 기분이다. 아직 역사의 증언을 해줄 증인들이 생존해 있다 보니 인터뷰로 생생한 현장감 있는 역사를 엮어 갈 수는 있었으나 전문가가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 그렇게 세세한 부분까지 마음에 와 닿지 않는 부분이 많다. 분량이 많다보니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이 책의 대의는 ‘디아스포라’ 단어 하나에 응축되어있다.
고려인의 정체성
1928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소련으로 망명한 작가 조명희가 연해주의 한글신문 ‘선봉’에 발표한 ‘짓밟힌 구려’라는 항일 산문시가 ‘고려’라는 용어 사용에 불길을 지핀 효시라고 한다. 일제 강점 아래 조선 민중의 연민과 서러움을 그린 시는 당시 큰 반향과 함께 고려인 청년들이 어느 모임에서나 낭송하면서 불타는 애국심을 드러내는 데 사용되었고, 그 후 ‘고려’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고려인의 정체성은 뿌리로서의 고향의식은 한반도에서 연해주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이주 때문에 2중 3중의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그들은 ‘신종 유라시아인’이다.
현대판 디아스포라
연해주는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는 ‘현대판 디아스포라’ 고려인들의 역사적 고향이다. 러시아 땅 연해주는 조선왕조 말, 가난 때문에 한반도를 떠난 고려인들의 역외 개척의 현장이었으며 조국독립운동의 피어린 무대였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정책으로 고려인들이 한 맺힌 눈물을 흘리며 중앙아시아로 떠난 곳이다. 지금도 구소련지역 내의 많은 고려인들의 고단한 삶을 추스르고자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을 안고 다시 모여 들고 있는 ‘마음의 고향’이 바로 연해주다
고려인 사회의 황금기
1923-1933년까지 10년이 고려인 사회의 황금기이다. 인구 20만 고려인 사회 토지문제 국적문제 해결되어 당당한 소련의 공민이 되었고 고려인 민족구역이 지정되어 자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려인의 고난의 세월 강제이주
1937년 봄 스탈린 시대의 고려인에 일본 첩자의 누명을 씌워 강제 이주 시작, 18만 명의 고려인 중앙아시아로 일거에 강제 이주 시켰으며 2500명 이상의 지도자를 투옥하였고 자신 소유의 가축 농기구 파종종자 건축물들을 국가에 양도하여야 했으며 강제 이주 중에 희생자만도 1만 6500명으로 추정된다. 고려인 강제이주가 세상에 처음 공개된 것은 40년이 지난 소련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솔제니친에 의해서이다.
해방후 북한 창건 전위대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한 고려인 수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나 250-500여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해방 초기에 고려인들은 소련 군정을 지원하면서 김일성 빨지산파와 함께 북한을 통치해나간 중심세력이었다.
왜 지금 고려인인가?
구한말과 일제 때 고려인들은 구국 의병활동의 선봉에 섣고, 그들의 고향 연해주는 해외 구국항쟁의 본거지였다. 그들의 민족혼이 망국을 독립으로 이끌고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배경이다. 이제 조국은 그들에게 ‘빚진 자의 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글로벌 시대에 재외동포는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이요 미래이며 5대양 6대주에 한민족 네트워크를 엮어낼 첨병이 바로 재외동포다. 그동안 한민족 네트워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것이 고려인이었다. 냉전 종식과 함께 더불어 50만 고려인은 한민족공동체의 범세계적 고리 완성에 참으로 큰 의미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