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입을 열면,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발견한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다. 사랑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됐다면 거기서 멈춰야만한다. 너무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즉 너무 알려고 하지말아야만 한다. 너무 사랑한다는 말은 상대방의 정체성마저 요구하는 일이다. 그건 무방비 도시의 어둠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너무 무리한 요구다. 현대적인 사랑의방식이란 우리가 절대로 알지 못하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마도 혹은 어쩌면 으로 시작되는 문장의 본뜻이 ‘You never know‘ 를 의미한다는 사실을이해하는 일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걸모르면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누구도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갈수는 없다. 누구도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없다. 그건 해가 바뀐 2003년 1월,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왜 기형도는 이세상 누구와도 닮지 않은 위대한 혼자에 대한 얘기로 시를 끝맺었을까? 사랑이 끝나면 자신에 대한 사랑만이 남게 되기 때문이다. 애당초 "사랑해" 라고 말하기 위해 거울을 보며 연습할 때 봤던 그 얼굴을 향한 사랑만이, 1982년8월 28일, 기형도는 일기장에 "언제나 나는 진실로 연애다운 사랑을 할 것인가라고 썼지만, 그런 점에서 그는 늘연애 중이었다. 꽃에는 입술이 없지만 자신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사랑에는 혀가 없지만 네가 누구인지 먼저 알아내라고 종용한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저마다 위대한 개인으로 자란다. 거울에 비친 그 위대한 개인을 사랑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향해 단호한 어조로 "사랑해" 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지구에서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느냐는 미 우주항공국의 업무지만, 우리가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느냐는스스로 대답할 문제다. 그건 우리가 얼마나 자신에 대해깊이 알고 있느냐, 혹은 우리가 얼마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사랑은 우리의 평생교육기관이다.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라도 상관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뿐이다. 사람도없는 막차버스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집에까지 가는동안 뭐가 그리 즐거웠던지 한없이 웃었던 기억, 아파트근처 으슥한 벤치에 어깨를 붙이고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말을 멈추고 어색한 마음에 둘이서 처음 입맞췄던 기억, 자존심 때문에 공연히 투정을 부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