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묘묘 방랑길 ㅣ 기기묘묘
박혜연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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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곳곳을 떠도는 효원과 요괴 사로의 여정은 마치 오래된 설화를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세상을 알고 싶은 소년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요괴가 함께 마주하는 사건들은 단순한 괴이함을 넘어 인간의 감정을 조명한다. 금도깨비의 실종을 시작으로 날개 달린 아이, 목각 인형, 도깨비불까지, 그 기묘한 이야기들 속엔 오해와 그리움, 두려움과 사랑이 깃들어 있다.

그 중 <차오르는 술잔> 편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손톱을 먹고 따라하는 쥐’라는 소재가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했고, "세상에 공짜 술은 없다"는 말은 뼈 있는 울림으로 다가왔다.

사로는 효원과의 여정을 통해, 자신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느낀다. 그 마음이 이 이야기를 더 깊고 따뜻하게 만든다. 『기기묘묘 방랑길』은 이상하고도 다정한 이야기다. 상처와 위로, 우정이 차분하게 스며드는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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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 - 신, 물리학, 젠더 전쟁
마거릿 워트하임 지음, 최애리 옮김 / 신사책방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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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의 역사 속에서 배제된 여성 과학자들의 존재를 조명하는 『물리학이 잃어버린 여성』은 과학이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순수 학문이라는 통념을 깨뜨린다. 물리학이 종교처럼 권위를 구축해온 과정과 그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소외되었는지를 고발하며, 과학 역시 사회적 맥락 속에서 구성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과학은 단지 이론과 실험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 그리고 인간의 갈등 속에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서사라는 점을 일깨운다. 이 책은 과학이라는 권위적 장르에 균열을 내고, 그 틈 사이로 오랫동안 잊힌 여성들의 목소리를 되찾아주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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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새 ㅣ 내일의 고전
신종원 지음, 한규현 그림 / 소전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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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신앙, 개인의 고뇌가 겹겹이 쌓인 이야기 속에서 나는 시간의 강을 부유하듯 떠다녔다.

『불새』를 읽는 경험은 이천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종교적 상징과 인간의 감정을 교차시키며, 시공간을 넘나드는 느낌을 주었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천주교 신자이고, 대학에서 종교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서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들이 많이 낯설지는 않았다. 만약 종교적 배경이 전혀 없는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혼란스러울까, 아니면 오히려 더 새롭고 신선하게 받아들일까? 궁금했다.

성가대원 헬레나의 임신과 죽음, 그리고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무너진 바오로 신부는 성배를 보기 위해 스페인으로 떠난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거룩함보다는 정치적 음모, 종교적 광신, 그리고 폭력이다. 작가는 그 혼란 속에서도 바오로, 헬레나, 페트리 같은 인물들을 통해 역사를 되풀이하는 인간의 모습과 그 안의 고통, 성숙, 갈망을 잘 잡아낸 것 같다.

‘불새’라는 존재는 고통을 지나 다시 일어나는 삶, 불타고도 사라지지 않는 어떤 의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이야기 속의 불새는, 그 많은 질문 끝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또 다른 모습의 '나 자신' 같았다.

『불새』는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익숙한 개념들을 다시 돌아보게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새로운 시선을 열어주는 책이다. 나에게는 신념, 진실, 희생, 그리고 자유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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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 - 상식과 통념을 부수는 60개의 역설들
조지 G. 슈피로 지음, 이혜경 옮김 / 현암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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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놈의 역설 같은 말장난스러운 수학, 확률, 통계 이런 것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완전 좋아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너무 즐겁게 읽었습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역설들입니다. 하나 하나 너무 재미있어서 한번에 끝까지 다 본 책이에요!
논문처럼 쓰여 있어서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했다는 후일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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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게 묻다
김희진 지음 / 폭스코너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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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집은 결코 의미 없이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단편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이야기의 주인공이 남성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야기는 대체로 상쾌하거나 명확하게 마무리되지 않고, 연극적인 과장된 감정을 드러내면서 결말은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열린 결말을 택하고 있다. 이런 느낌의 단편을 좋아하기 때문에 아주 즐겁게 읽었다.

<<늙은 밤>>의 주인공이 어린아이이고 <<헤어지는 중>>이 남녀 연인의 이야기라는 점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작품은 남성이 중심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체로 부조리한 경험을 하거나 비이상적인 상황에 놓이며, 때로는 비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런 설정들 덕분에 이 책의 이야기들은 더욱 독특하게 다가왔다.

보통 억울함과 부조리함을 호소하는 이야기는 여성의 목소리로 표현될 때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성인 남성을 중심에 두고도 충분히 그 부조리함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다소 익살스러울 정도로 과장된 주인공의 혼잣말, 욕설, 감정의 기복들이 오히려 진정성 있게 느껴진다.

책의 첫 번째 이야기인 <<오후에게 묻다>>는 오프닝으로서 제격이다. 이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주인공은 어느 날 무심코 편의점에 들렀다가 형사에게 붙잡혀, 수갑을 찬 채 그 자리에 방치된다. 한 손이 묶인 채 길 한복판에 오도가도 못하게 된 그는 온갖 곤경에 처한다. 사람들은 그를 도와주기는커녕 외면하거나 공격하기까지 한다. 유일하게 순수한 한 아이가 다가오지만, 곧 학원에 간다며 떠나버리고, 비까지 내려 더욱 처량한 상황이 된다. 결국 그는 묻는다. ‘내가 무언가 잘못한 걸까? 그럴 운명이었을까?’ 그러나 이 질문은 끝내 해답을 얻지 못한 채, 이야기는 그를 그 자리에 남겨둔 채 끝난다.

이 단편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모두 숨가쁘게 달려든다. 마치 ‘불가항력’이라는 주제를 중심에 두고 달리는 느낌이었다. 읽는 내내 가난과 고독, 절망과 불합리함이 뼛속 깊이 파고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안에는 묘한 희망이 스며 있다. 직접 읽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강렬한 감각이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단편은 <<헤어지는 중>>이다. 남녀가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멀어지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 변화의 계기를 이야기하던 여성은, 그 중심에 '강아지'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녀는 그 강아지가 사실 '로봇'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털어놓는다. 이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기이한데, 이야기는 마지막까지도 반전처럼 낯설고 묘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제목과 내용이 아주 잘 어울린다고 느꼈던 단편 <<거슬림>>. 적화원 집 셋째 아들. 하나부터 열까지 하는 행동이 정말 다 거슬린다. 좋아하는 신발가게 여사장님에게 잘 보이려고 배달을 핑계 삼아 빈집을 찾아다니며 신문투입구로 신발을 한 짝씩 훔친다. 한 짝만 없어지면 그 여사장님이 새로 살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심지어 엄마 가게 장사가 잘되라고 붙여놓은 부적까지 뜯어다가 그 여사장님께 가져다준다. 엄마가 점쟁이를 찾아가 주술을 믿는 걸 보고는, “행복이 지치지도 않나 봐요”라고 말하는데, 그 말투까지도 정말 신경을 긁는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신발을 훔치는 장면을 본 아이가 나타나고, 그 아이가 거슬린다는 이유로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마음에 드는 데가 없는, 그야말로 거슬림의 연속인 이야기아닌가!

흔히 볼 수 있는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로 흘러가지 않아서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익숙한 감정선 속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비현실적인 요소가 오히려 감정의 진폭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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