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나라 1 (양장)
김진명 지음 / 이타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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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란 나라의 뿌리요. 뿌리가 남의 흙에 심기면 나무가 자랄 수는 있겠지만 향기를 잃는 법 아니겠소?"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쓰고 있는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다룬 소설, <세종의 나라 1>이다. 이 책은 단순히 ‘한글 창제’라는 결과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왜 우리에게 우리만의 글자가 필요했는지, 그 절실한 이유를 꽤 집요하게, 그리고 아프게 짚어내며 시작한다. 그래서 그런지 역사 소설이어서 결말을 다 알고 있지만서도, 색다르고 더 몰입하게 되었다.

1편은 이야기의 시작답게 사건을 밀어붙이기보다 먼저 시대의 배경과 결핍을 보여준다. 가상의 인물인 숙현과 석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통해 ‘글이 없다는 것’이 어떤 슬픔으로 이어지는지를 드러낸다.
숙현은 기백이 있고 학식도 뛰어난 인물이다. 하지만 여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결국 사랑하는 이를 두고 명나라에 공물로 바쳐지게 되는 그녀의 운명은 개인의 비극이면서 동시에 나라의 처지를 그대로 닮아 있다. 마음을 전할 글조차 없다는 사실이 겹치면서, 그 장면은 더 오래 남는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선비들의 모습이다. 경학이라는 이름 아래 겉모습과 명분만을 붙잡고 있는 태도,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욕망들. 하영번과 윤교찬은 그 왜곡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두 사람은 숙현을 향한 감정과 질투에 눈이 멀어, 결국 그녀가 공물로 선택되도록 흘려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학문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망가뜨리는 데 쓰이는 순간이라서, 더 씁쓸하게 다가온다.

자연스럽게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석리와 장영실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단순히 외우는 배움이 아니라, 직접 보고 오래 들여다보는 ‘관찰’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실용적이지 못한 학문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들의 시선에서 다른 가능성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반화요설’을 피하기 위한 은밀한 수사가 진행되며 이야기의 긴장감을 끌고 간다. 사라진 기록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서책들,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던 걸까 하는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역사적 흐름 위에 얹힌 이 미스터리 요소가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한다.

주변 나라들은 모두 저마다의 문자를 가지고 있는데, 왜 조선에는 그것이 없었을까. 이 질문은 결국 세종에게로 향한다. 힘이 없는 나라의 왕으로서, 그리고 백성을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가 짊어졌을 고민이 깊게 전해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영실아, 목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는 장치를 만들 수 있겠느냐?"
이 한 문장이 1권 전체를 묶는다. 소리를 눈으로 본다는 것.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절실한 시도. 그 명령과 함께 이야기는 비로소 시작선에 선다.

역사적 무게감 위에 애절한 감정선, 그리고 은근히 이어지는 긴장감까지 겹쳐서 술술 읽힌다. 무엇보다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과 ‘글’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그 뿌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장영실의 활약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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