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와이프
어설라 패럿 지음, 정해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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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책으로 이혼한 여성의 이야기를 집어 든 건 묘한 우연이었다. 하지만 책장을 덮을 때쯤, 이 텍스트가 신년을 맞아 되새길 만한, 분명한 목소리를 지닌 주제임을 깨달았다.
​서사는 꽤 파격적이다. 친구의 친구와의 불륜, 상간녀, 수많은 연인, 술과 파티 문화. 1920년대 재즈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아도 고자극이다.

​읽는 내내 밑줄을 긋게 된 건, 100년 전의 이야기가 지금의 현실과 소름 끼치게 닮아있기 때문이다. 남성은 자유롭되 여성은 순결해야 한다는 모순, 이혼 후에도 남자의 비위를 맞추는 '전처 A등급'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
​책 속의 문장들은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관계가 끝났을 때 왜 여성만 더 가혹한 검열의 대상이 되는가. 남성의 방황은 '잠깐의 실수'로 용인되면서, 왜 여성의 방황은 '타락'으로 규정되는가.
​이혼 후에도 파티를 즐기고 욕망을 인정하는 여성의 모습은 당시에는 혐오스러울 정도로 파격적이었겠으나, 지금의 시선으로는 비로소 온전한 자아를 찾아가는 치열한 투쟁으로 읽힌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백미는 여성들의 연대다. 이별을 먼저 겪은 '언니'가 주인공에게 동거를 제안하며 기꺼이 곁을 내어주고, 훗날 주인공 역시 후배에게 똑같이 손을 내민다. 심지어 진정한 사랑이라 믿었던 남자의 본처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도 분노 대신 침착하게 돕는 모습은, 이 서사 속에 단순한 '악역'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숨기고 싶었던 삶을 드러냄으로써 우리는 편견 너머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 성적인 잣대로 평가받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친구 같은 관계로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말.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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