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하이드어웨이
후루우치 가즈에 지음, 민경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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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칠 곳도 딱히 없는 각박한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어디로 향해야 할까. 『도쿄 하이드어웨이』는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품고 견디는 이들에게 아늑한 안식처가 되어 줄 소설이다.

나는 IT 회사에 다니는 여성이어서 그런지 이 책에 매우 공감했다. 여섯 편의 연작 단편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현실적이고, 때로는 나의 처지와 비슷하기도 했다. 화려해 보이는 빌딩 속에서 일하지만 실상은 인간관계와 업무에 지친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갈 힘을 얻는 여정을 보여준다.

인상 깊었던 내용은 마지막 단편 <혹성>이었다. 어린 시절 납치당할 뻔한 사건의 트라우마로 인해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워진 바야시 리코는 점심마다 플라네타륨에서 혼자 쉬며 자신을 다잡는다. 소극적이고 수수한 그녀는 화려한 동료들 사이에서 묻혀 있지만, 그 나름의 방식으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젊은 날 사고로 죽은 사촌오빠를 떠올리는 장면, 자신을 향한 자책, 그리고 조금씩 나아가려는 움직임은 조용하지만 뭉클하다. 어제와 다른 길을 선택할 용기, 그게 리코가 보여주는 회복의 첫걸음이었다.

<전망 좋은 방>의 우에다 히사노는 마흔을 넘긴 독신 여성이다. 카페를 운영하고, 취미생활도 성실히 해내는 그녀는 열심히 살아가지만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걱정과 동정 어린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 자신을 “아무도 어울리지 않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여기는 히사노의 고백은 씁쓸했지만, 동시에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인상 깊었다.

<몸, 기술, 마음>에서는 물리적으로 도망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절망하는 오모리 게이타의 모습이 아프게 다가왔다. ‘도망가도 된다는 말이 의미 없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현실은 언제나 개인의 의지보다 복잡하다는 걸 일깨운다.

<숲의 방주>의 요네카와 에리코 이야기는 특히 내 이야기 같았다. 회사에선 중간관리자, 집에선 두 아들의 엄마로 살아가는 그녀는 지칠 대로 지쳐 있다. 어느 날 출근길에 그냥 종착역까지 가버린 그녀가 우연히 들어간 공원에서 거대한 배를 보고, 지금껏 자신이 아등바등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었다. 가족과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며 화해하는 과정은 따뜻했다.

<별하늘의 캐치볼>에서 기리토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지만, 그런 태도마저 ‘불편함’으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에 부딪힌다. “네가 너무 열심히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라는 말은 때론 가장 성실한 사람을 외롭게 만든다. 그런 그가 점심시간마다 따라간 플라네타륨에서 회복의 실마리를 찾고, 리코와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는 잔잔하지만 큰 울림을 준다.

『도쿄 하이드어웨이』는 쉬어갈 곳과 마음을 나눌 동지가 있다면 다시 걸어갈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 내 삶에는 다행히도 그런 것들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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