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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
야마다 무네키 지음, 김진아 옮김 / 빈페이지 / 2024년 12월
평점 :
이 책은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유를 몇 가지 들어보자면, 첫째, 특정 인물이 끝까지 주인공인 서사가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고, 긴 시간의 흐름이 신선했다. 둘째, 인공지능 기술이 터무니없지 않고 소설에 맞게 매력적으로 묘사된 부분이 좋았다. 셋째, 멸망이라는 테마의 허망함과 바라는 자와 바라지 않는 자의 대립 구도가 실감났다. 넷째, 간절한 바람과 기도밖에 할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한 모습과 동시에 강인한 의지를 표현하는 장면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일본 작가이기 때문에 더 잘 쓸 수 있었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소행성 충돌로 인한 지구 멸망에 대한 두려움과 허망함을 여러 세대가 겪는 비극과 그 표출구를 더 잘 표현한 것 같다. 많은 자연재해로 인해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없었던 비극을 많이 겪어 온 나라 사람이어서 그런지, 더 밀도 높은 표현력으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하나의 카테고리 장르로 묶어두기에는 이 소설 정말 크다. 지하세계 벙커, 인공지능 아바타, 가족 구성원과의 사랑, 지구 종말, 종교와 비슷한 집단들, 커뮤니티 기능과 희망 등 많은 내용을 담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방대한 양의 내용을 담으면서도 지저분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큰 틀이 지탱하고 있는 느낌이라 신선하면서도 산만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