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정치학 -상 - 현대사상총서 11
케이트 밀레트 지음, 정의숙.조정호 옮김 / 현대사상사 / 199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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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케이트 밀레트의 저서 <성의 정치학(Sexual Politics)>은 남녀의 사적인 관계를 권력과 지배라는 정치적 문제로 확장한 래디컬 페미니즘의 책이다. 


남녀 관계를 가부장제를 권력관계로 규정하며 제2물결 페미니즘의 포문을 열었으나 학술적·이론적 관점에서 이 책은 여러 가지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1. 내용상의 비판


1)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과소평가

밀레트는 성별(Gender)이 전적으로 사회화의 결과라고 주장한. 그러나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미치는 호르몬, 생물학적 메커니즘, 진화심리학적 요인들을 완전히 배제했다는 점에서 현대 과학 및 심리학계로부터 극단적인 사회적 결정론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2) 보편적 가부장제 개념의 오류 (본질주의)

역사, 인종, 계급, 문화적 배경의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남성은 지배자, 모든 여성은 피지배자'라는 도식을 전 세계 모든 사회에 보편적으로 적용했다. 이는 백인 중산층 여성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다양한 계급과 인종의 여성들이 겪는 다층적인 억압(교차성)을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유발했다.


3) 이분법적 대립 구도와 권력의 단순화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지배와 피지배, 억압자와 피억압자라는 일방향적 권력 구조로만 해석했다. 미셸 푸코 등의 권력 이론가들이 지적하듯, 권력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모세혈관처럼 작동하며 복잡하게 얽혀 있다. 밀레트의 분석은 이를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남성 내부의 취약계층이나 여성 내부의 지배 권력을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4) 프로이트에 대한 자의적 해석

밀레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주범으로 맹렬히 공격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제시한 개념(예: 남근 선망)을 은유나 심리적 방어기제가 아닌, 문자 그대로의 '남성 우월주의적 주장'으로만 비판함으로써 정신분석학의 임상적·이론적 깊이를 오독했다는 학계의 지적을 받았다.


2. 서술상의 특징에 대한 비판


1) 편향적인 문학 텍스트 발췌 (확증 편향)

1부와 3부에서 D.H. 로렌스, 헨리 밀러, 노먼 메일러 등의 문학 작품을 인용하여 남성의 공격성과 여성 혐오를 폭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논지를 증명하기 위해 가장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성 묘사 구절만 의도적으로 발췌했다는 텍스트 분석상의 치명적인 약점을 보이고 있다. 작가의 전체적인 문학적 맥락과 예술적 의도를 거세하고 평면적으로 비판했다는 평가를 받는 부분이다.


2) 정치적 팸플릿에 가까운 선동적 어조

이 책은 철저하게 중립적인 학술 논문의 형식을 띠기보다는 가부장제에 대한 고발과 선언의 성격으로 일관한다. 문체가 대단히 격정적이고 단정적이어서 대중적인 파급력은 컸으나, 학술적 엄밀성과 논리적 객관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3) 방대한 담론의 성긴 결합 (방만성)

문학비평에서 시작해 역사, 정치학, 정신분석학, 사회학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서술 방식을 취하고 있는 바, 학제간 연구로서의 신선함은 있었지만, 각 학문 분과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 부족하여 여러 분야의 이론을 가부장제 폭로라는 하나의 결론에 맞추기 위해 파편적으로 짜 맞추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책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을 확립하며 성차별의 구조적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공로를 인정받긴 했지만, 동시에 방법론적인 편협성과 극단성으로 인해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저작이기도 하다. 어쩌면 조금은 한물 간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남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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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 -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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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의 <담론>은 동양 고전을 관계론, 석과불식, 노자 사상 등을 통해 문명과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려는 노력은 돋보이나, 저자 특유의 편향적 정치 이념이 과도하게 투영되어 여러 가지 내용적, 서술적 문제점들이 드러나는 책이다. 


1. 내용상의 문제점

이념적 편향성과 도식화: 서구 근대성을 '존재론(개인주의, 정복)'으로, 동양 철학을 '관계론(공동체, 상생)'으로 이분법적으로 대비시킨다. 이는 서구 철학 내부의 공동체적 전통이나 동양 철학의 전제주의적 폐해를 간과한 지나친 도식화라는 비판을 받는 부분이다.


고전의 자의적 해석: '시경', '주역', '논어' 등의 텍스트를 감옥에서의 수형 경험과 민중주의적 관점에 결합해 해석하는데, 이 과정에서 원전이 가진 본래의 역사적 맥락이나 보수적 위계 질서(예: 군신 관계)가 진보적인 '연대'의 메시지로 자의적으로 치환되었다는 학술적 지적이 많다.


현실 대안의 구체성 결여: '관계'와 '성찰'이라는 추구 가치는 뚜렷하지만, 그것이 복잡한 현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제도나 시스템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천적 해답은 추상적인 수준에 머무는 '용두사미'의 경향이 있다.


2. 서술상의 문제점

감성적 호소에의 의존: 논리적 증명보다는 서화(書畵)와 일화, 감성적인 문체를 통해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지만, 이는 독서의 몰입도를 높이는 대신에, 비판적 거리두기를 방해하고 메시지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낭만주의적 서술'의 한계를 보인다는 점이다.


강의록 체제의 산만함: 이 책은 대학 강의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구어체적 친근함이 있으나, 논점의 비약이 잦고 주제 간의 연결이 엄밀하지 않은 부분이 다수 발견된다. 특정 경구(예: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여행")가 반복되면서 논리적 깊이보다는 격언 위주의 서술로 흐르기도 한다.


수형 경험의 절대화: 저자의 감옥 생활 경험이 모든 철학적 판단의 최종 근거가 되는 구조를 띠고 있다. 이는 특이한 느낌을 주지만, 동시에 그 특수한 경험이 보편적인 사회적 담론으로 확장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오류들을 덮어버리는 경향이 있다.(나만큼 경험해본 놈 있으면 나와봐! 같은)


결론적으로 '담론'은 인본주의적 시선을 제공하려는 노력은 돋보이지만, 이론적 엄밀함보다는 저자의 주관적인 윤리적 지향에 편향된 텍스트라는 점에서 문제점과 한계가 많은 저술이라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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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불교의 거울로 본 하이데거 인문정신의 탐구 7
권순홍 지음 / 길(도서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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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분야의 학위 논문이나 학회지 논문을 책으로 출간하는 경우에 저자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가 있다. 

자신의 논지를 구성하기 위해 부자연스러운 참고 자료 인용과 다소 억지스런 해석이 가미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책을 읽을 독자에 대한 배려 같은 것을 간과하는 것도 그것이다. 


오직 자기만의 '하이데거 읽기' 방식을 강요하는 글.

하이데거 사상을 터럭 한 오라기까지 자기 방식으로 박제화하여, 죽어서 고정불변한 사상으로 박물관 지하에 못박아 두는 글처럼 느껴진다. 


과연 하이데거가 이 책을 읽는다면 자신의 사상이 저자 권순홍 혼자만의 해석으로 고착화되는 것에 동의할까? 

아니면 생물처럼 유동화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꿈틀거리는 상상과 영감을 주는 마르지 않는 샘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을까?


무엇보다도 유식 불교를 논하는 저자의 논지가 과연 깨달음을 성취한 분상에서 우러나오는 절대적 진리의 말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하이데거는 저자의 논지에 동의할 것이며, 석가모니 부처님도 이 말에 동의할까?


이 책은 저자 자신만의 독창적 사상을 저술한 1차 전적(典籍)이 아닌 것은 물론이고,

1차 전적을 직접 해석한 2차 전적도 아니며,

김형효나 한자경이 저술한 2차 전적의 말꼬리를 붙잡고 비판하는 행태까지 보이고 있는 데다, 학계의 구태의연한 갑론을박이 드문드문 보이는 3차 전적이라 읽을 가치를 못 느끼겠다. 더구나 그 내용이 자기만의 아상에 편집(偏執)하는 속좁은 학위 치적용 산물이라면…


깨달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영적 수행도 없이, 

유식 불교의 논서를 낱말풀이와 맥락만으로만 따져가며 시비를 가리거나 

자기만의 주장을 고집하는 게 가당한가?


옛 논서나 하이데거가 남긴 그림자들만 엮어가며 제 주장을 펼친들

그 또한 새로운 그림자의 2차적 생산 같은 부질없는 짓 아닐까?

차라리 김형효처럼 자신만의 영적 깨달음이나 직관으로 새로운 빛을 비춰주지는 못할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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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관사상 불교입문총서 10
김성철 지음 / 민족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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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판단이 오류를 범하는 이유.

일상 판단이든, 아비달마 교학이론이든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이유는 그러한 것들이 모두 생각의 분할을 통해 작성된 판단이라는 점에 있다. 


우리의 생각은 마치 가위와 같아 이 세계를 자의적(恣意的)으로 오려서 갖가지 개념들을 만들어 내고, 그렇게 오려진 개념들을 주워 모아 다양한 판단들을 작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개념들은 생각의 가위에 의해 오려진 것이라는 점에서 태생적으로 허구의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개념들이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것인 양 간주하면서 일상적 판단은 물론이고 종교적 철학적 판단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판단들을 소재로 삼아 종교적 철학적 고민을 시작한다. 분별고(分別苦)의 탄생이다. 


연기(緣起)인 것 그것을 우리는 공성(空性)이라고 말한다. 그것(공성)은 의존된 가명(假名)이며 그것(공성)은 실로 중(中)의 실천(中道)이다.    


불교의 가르침은 도그마가 아니라 병에 따라 약을 주는 일(응병여약)과 같은 방편시설(方便施設)이다. 공성이라는 발화는 주장이 아니라, 자성이 있다는 착각을 시정하는 작용이다. 공성의 부정은, 선행하는 잘못이 있을 때에 한하여 발화될 수 있는 비정립적(非定立的) 부정 이다. 그리고 이런 공성의 발화에 의해 구현된 중도 역시 실체가 아니라 작용이며 실천이다. 

진속이제설에 의거할 때 불생불멸과 공성의 가르침은 진제에 해당하고, 사성제와 팔정도와 사향사과와 삼보의 가르침은 속제에 해당하기에 서로 모순하지 않는다. 속제에서는 세속을 건립하지만, 진제에서는 세속이 파기된다. 속제는 우리의 분별에 입각한 가르침이고, 진제는 우리의 분별을 파기하는 가르침이다. 

교설의 이런 변천과정에 대해 조감함으로써 우리는 이제가 변증법적 구조를 갖는다는 점을 알게 된다. … 무아는 속제로 전락하고 “유아도 아니고 무아도 아니다”라는 중도가 진제로서 제시된다. 여기서 우리는 진제가 비판하는 작용이지 어떤 내용을 갖는 도그마가 아님을 알게 된다. 

간화선과 <중론> 모두 우리의 분별적 사유를 차단함으로써 지적인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그 목적이 일치하긴 하지만 방식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직관을 사용하고, 후자는 분석을 사용한다. 직관은 순간적이고 전체적으로 일어나지만 지극히 주관적 방법이고, 분석은 누구나 동참할 수 있는 객관적 방법이긴 하지만 장시간을 요하며 그 조망이 부분적이기 쉽다. 

용수의 중론은 우리 한국 불교의 간화선 수행과 초기불교의 무기설을 잇는 논리적 가교인 것이다. 

김성철 교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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