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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관사상 ㅣ 불교입문총서 10
김성철 지음 / 민족사 / 2006년 9월
평점 :
모든 판단이 오류를 범하는 이유.
일상 판단이든, 아비달마 교학이론이든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이유는 그러한 것들이 모두 생각의 분할을 통해 작성된 판단이라는 점에 있다.
우리의 생각은 마치 가위와 같아 이 세계를 자의적(恣意的)으로 오려서 갖가지 개념들을 만들어 내고, 그렇게 오려진 개념들을 주워 모아 다양한 판단들을 작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개념들은 생각의 가위에 의해 오려진 것이라는 점에서 태생적으로 허구의 것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개념들이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것인 양 간주하면서 일상적 판단은 물론이고 종교적 철학적 판단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판단들을 소재로 삼아 종교적 철학적 고민을 시작한다. 분별고(分別苦)의 탄생이다.
연기(緣起)인 것 그것을 우리는 공성(空性)이라고 말한다. 그것(공성)은 의존된 가명(假名)이며 그것(공성)은 실로 중(中)의 실천(中道)이다.
불교의 가르침은 도그마가 아니라 병에 따라 약을 주는 일(응병여약)과 같은 방편시설(方便施設)이다. 공성이라는 발화는 주장이 아니라, 자성이 있다는 착각을 시정하는 작용이다. 공성의 부정은, 선행하는 잘못이 있을 때에 한하여 발화될 수 있는 비정립적(非定立的) 부정 이다. 그리고 이런 공성의 발화에 의해 구현된 중도 역시 실체가 아니라 작용이며 실천이다.
진속이제설에 의거할 때 불생불멸과 공성의 가르침은 진제에 해당하고, 사성제와 팔정도와 사향사과와 삼보의 가르침은 속제에 해당하기에 서로 모순하지 않는다. 속제에서는 세속을 건립하지만, 진제에서는 세속이 파기된다. 속제는 우리의 분별에 입각한 가르침이고, 진제는 우리의 분별을 파기하는 가르침이다.
교설의 이런 변천과정에 대해 조감함으로써 우리는 이제가 변증법적 구조를 갖는다는 점을 알게 된다. … 무아는 속제로 전락하고 “유아도 아니고 무아도 아니다”라는 중도가 진제로서 제시된다. 여기서 우리는 진제가 비판하는 작용이지 어떤 내용을 갖는 도그마가 아님을 알게 된다.
간화선과 <중론> 모두 우리의 분별적 사유를 차단함으로써 지적인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그 목적이 일치하긴 하지만 방식은 전혀 다르다. 전자는 직관을 사용하고, 후자는 분석을 사용한다. 직관은 순간적이고 전체적으로 일어나지만 지극히 주관적 방법이고, 분석은 누구나 동참할 수 있는 객관적 방법이긴 하지만 장시간을 요하며 그 조망이 부분적이기 쉽다.
용수의 중론은 우리 한국 불교의 간화선 수행과 초기불교의 무기설을 잇는 논리적 가교인 것이다.
김성철 교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