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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
나카 칸스케 지음, 양윤옥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은수저』와 『압록강은 흐른다』를 이어서 읽었다.
『은수저』는 하시모토 선생이 고베시의 한 중학교에서 3년 연속 6년간 국어교재로 사용하여 슬로 리딩의 선구자가 되었다는 기사를 확인하기 위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압록강은 흐른다』는 『은수저』를 대체할 우리 책을 찾다가 책으로 같은 시기를 기록하고 있는 이 책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두 책을 비교해보기로 했다.
대체 『은수저』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있을까? 교과서 편집자들이 선택하여 모은 다양한 교재보다 『은수저』 책 한 권에 들어있는 내용이 더 교육적이라면 그는 이 책의 어떤 내용을 어떻게 가르쳤을까?
1913년에 『은수저』가 발표되었다. 이 책이 나카 간스케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라면 1890년에서 1910년 즈음의 일본 사회상이 들어있을 것이다. 이미륵은 1899년에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서 1920년 독일로 유학가기까지의 성장기를 『압록강은 흐른다』에 기록했다. 대략 비슷한 시기에 조용하고 병약한 두 소년이 보고 겪고 생각이 커지는 일들이 기록되었다.
일본과 한국, 두 나라가 인접하여 문화가 교류되었기에 내용상으로 낯선 부분은 별로 없었다. 『은수저』에 들어있는 민속과 토착신앙과 먹거리, 아이들의 놀이와 친구사이, 학교에서의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 등은 『압록강은 흐른다』에도 비슷하거나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다만 『은수저』에는 어른사회가 줄 수 있는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지은이의 눈에 비치는 대로 그 시절이 기록되어 있다. 병약하고 소심했던 소년은 부모님의 영향보다 함께 사는 이모님의 거의 맹목적이고 희생적인 믿음과 보살핌으로 점차 대담해지고 건강하게 성장해간다.
오히려 낯선 부분은 『압록강은 흐른다』에서 발견된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혹독하고 힘들었던 기간으로 접어두었던 한 시대의 모습과 사람들의 생각이 이 책에 들어있다. 구한말의 말단 한직이나마 아직 여유가 있었던 지주인 아버지에게는 내 가족뿐만 아니라 어려운 일가친척을 거두고 서당을 열어 마을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소작인들을 통솔하는 위엄과 권위가 살아있다. 어머니 또한 무한한 자애로움으로 병약한 아들과 일가친척의 아이들을 건사한다. 이 넉넉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이미륵은 1910년 남문에 내걸린 ‘임금이 나라를 일본과 합쳤다’는 한일합병 알림문서를 보고도 ‘무슨 이유가 있겠지. 때가 되면 다시 회복되겠지.’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보여준다. 지병으로 쇠퇴해지는 몸으로 아버지는 시대의 변화를 알고자 한다. 결국 한시와 사서삼경을 읽던 아들에게 일본이 전해주는 신학문을 배우게 하고 날마다 ‘오늘은 무엇을 배웠느냐?’고 묻는다. 아들은 아버지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귀를 기울여 신학문을 듣고 오지만 사물의 이치를 궁리하던 구학문과 사물의 쓰임에 천착하는 신학문은 아버지와 아들 모두에게 혼란을 준다. 의사가 되기로 하고 경성의학전문학교에 들어간 이미륵은 우리를 도우러 왔다는 일본이 실상은 나라를 빼앗고 우리민족을 핍박한다는 사실을 바로 알게 되고 3.1운동에 가담하게 된다. 그 기간에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미륵이 더 이상 이 땅에서 살 수 없음을 알고 아들을 유럽으로 도피시킨다.
두 책의 전반부는 아직 어린 시절의 두 소년이 가정과 자연에 싸여서 아름답게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후반부에는 국가의 발전과 쇠퇴에 따라서 성장을 계속하는 소년 나카 간스케와 쇠퇴하는 조국을 떠나 이민족으로 방랑하게 되는 이미륵의 모습이 보인다.
『압록강은 흐른다』는 1946년 독일에서 독일어로 출판되었다. 그가 독일에 정착하기까지 그를 붙들어주었던 힘이 『압록강은 흐른다』 이 책에 들어있다고 보인다. 일본 중학생들에게 『은수저』가 의미 있는 책이라면 우리 중학생들에게는 『압록강은 흐른다』가 큰 의미를 줄 수 있다. 우리 역사가 가지고 있던 넉넉하고 아름다운 문화의 힘이 압록강이 조용히 흐르듯이 중단 없이 흐르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