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런던의 에이전트 레이디 - 백인, 남자들의 유럽축구판에서 한국인 여성 에이전트로 살아남기
김나나 지음 / 브레인스토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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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스포츠 에이전트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는 아마 영화 <제리 맥과이어>가 대부분을 만들었을 것 같다. 나도 재미있게 그 영화를 봤고, 그래서 선수를 대리해서 구단과 좋은 계약을 맺으며, 유망한 선수를 눈여겨봐 발굴하는 그런 일들을 하는 게 에이전트라고 생각해왔다. 또 축구나 야구나 시즌이 끝나고 나면 유명한 선수들의 계약과 이적에 관한 이야기가 에이전트를 통해서 나오니 에이전트=선수대리인나 다름 아니었다. 이 책의 저자가 유럽축구 에이전트라 하니 당연히 그런 이야기를 기대했었다. 선수들의 계약과 활동에 대한 재밌는 뒷이야기들이 나오겠거니 싶었다.

 

그런데 웬 걸, 이 책은 처음 생각한 그런 책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풍부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에이전트가 하는 일은 선수 대리만이 아니라 훨씬 다양했고, 축구 시장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다. 축구 중계권의 국내외 계약, 유니폼부터 구단 버스에 이르기까지 수십수백 종의 스폰서 계약, 상표권과 초상권 계약 등등 프로구단 대부분의 계약에는 에이전트들이 관여하고 있었다. 에이전트 없이는 축구계가 굴러가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빅클럽이라고 해도 경영 관련 직원은 40명을 넘지 않으며, 대부분의 실무 업무는 전문적인 에이전트에게 맡겨서 진행된다고 한다.

 

이 책은 이렇게 넓고 다양한 에이전트 세계의 일들을 여러 구단 및 선수들과 겪은 에피소드를 곁들어가며 알려준다. 리버풀의 클롭 감독이 에이전트의 협상 카드로도 활용되었다거나, 아스날 구단은 계약서를 안 쓰고 일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신사적이라는 이야기들, 라리가와 EPL 사무국의 차이점, 어떤 에이전트는 선수 관리를 위해 선수의 여자친구를 취업시키기까지 한다는 등의 흥미로운 내용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예전에 이야기가 돌았던 손흥민 선수의 볼프스부르크 이적을 이 책 저자가 직접 파토냈다는 에피소드가 재밌었다. 저자는 손흥민이 뛰고 있는 토트넘과 금호타이어 스폰서십을 성사시킨 입장이었는데, 손흥민이 이적해버리면 타격이 너무 크기에 어떤 수(뭔지는 비밀이란다)를 써서 무산시켰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의 이익으로 한 일이지만, 그 후 손흥민 선수가 토트넘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으니 결국 윈윈이라고 할까? 아무튼 에이전트가 저런 식의 개입도 한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호날두 노쇼 사건도 에이전트의 시선으로 새롭게 보게 해주는 면이 있었다. 호날두의 행동은 분명히 한국 팬들을 무시하고 그들에게 큰 상처를 준 것이었지만, 그것이 어떤 맥락과 구조 속에서 나왔는지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냥 호날두 나쁜 놈!’ 이렇고 말기에 그 사건은 우리에게 너무 큰 충격을 줬다. 리그나 에이전트 시장이 더 발전해야 그렇게 팬심을 가지고 사기를 치는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걸 그 사건을 가까이에서 본 저자(저자는 유벤투스의 에이전트이기도 하다)의 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유럽축구 리그의 한국인 에이전트가 들려주는 유럽축구 이야기라니, 다른 데서 결코 들어보지 못할 이야기가 가득하다. 저자의 이후 활동들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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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필립 톨레다노 지음, 최세희 옮김 / 저공비행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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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분이 출판사를 한다. 그분이 새로 나온 책이라며 한 권을 선물해줬다.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언제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더 잘할 걸 너무 늦었다고 후회하는 자식들이 보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이 책 저자인 필립 톨레다노는 너무 늦진 않았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치매 증세를 보이시자 아버지와 남은 생애를 함께하기로 한다. 그는 부인과 함께 아버지와 살며 가족의 추억을 되새기고 새로 쌓으며, 일상을 사진으로 남긴다. 이 책은 아버지와의 마지막 삶의 기록이다.

나도 이 책을 보면서 나도 우리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2년 전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다. 

그러니까 추석을 얼마 앞둔 어느 날이었다. 그 얼마전 아버지가 속이 안 좋으시다고 하면서 검진을 받으셨다. 나는 그런 것에 무심한 편이지만 걱정 많은 형은 역시 걱정이 많았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쯤 형이 결과가 어떠냐고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말을 흐리면서 정확히 말씀을 안 하셨다. 병명은 암이었다.

집에 내려간 우리 형제를 앞에 두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말고 있으라고. 수술받고 치료 잘 받아 나아질 것이라고. 암은 초기는 아니었다. 부위는 십이지장이라는 낯선 부위.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그래도 의연하셨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담배를 피셨다. 몇 년 전에 끊으셨지만, 하루 두 갑 가까이 피셨다. 술은 아주 자주 드셨고, 취하도록 폭음을 하셨다. 음식은 맵고 짜고 기름진 걸 즐기셨다. 자영업을 시작한 이후로는 속앓이도 많이 하셨다. 그러면서 건강관리는 잘 안 하셨다. 생각하면 암에 걸리기 쉬운 삶을 사셨지.

그리고 나는 담담했다. 물론 일하는 도중에도 한참 동안 인터넷으로 '십이지장암'이 어떤 것인지, 치료율은 얼마나 되는지 찾아보긴 했지만 평상심을 지켰다. 암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것이니까. 50대 이상 성인이 몇 퍼센트가 암에 걸리다고 하니까. 그 몇 퍼센트에 우리 아버지가 들어간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걸린 병을 걱정한다고 낳게 할 수 없으니까,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뇌리 한편에서는 '아버지 없는 미래'가 슬쩍슬쩍 스쳐 지나갔다. 섬뜩할 만큼 현실적으로.

한국의 많은 아버지들이 그렇듯 우리 아버지도 자식들에게 애정을 잘 표현하시는 분은 아니었고, 많은 아들들이 그렇듯 나도 살갑게 잘 하는 편은 아니었다. 술 마시고 주정하실 때는 미워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건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건 나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일이 현실로 다가오자 다른 많은 자식들처럼 더 잘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가 들었다. 언제나 너무 늦곤 하는 그런 후회가.

2011년 9월 어느날 아침, 아버지는 수술실로 들어가셨다. 어머니와 형과 나는 아버지 손을 잡고 힘내시라고 말했다. 수술실의 문은 닫히고 우리는 기다릴 뿐이었다. 아버지의 생명은 저 문 건너편에서 결정지어질 것이었다. 사소한 일들 하나하나가 중대한 의미로 다가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나왔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천만 다행히도 열어봤더니 수술해봤자 소용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8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을 우리는 멍하니, 초조하게, 걱정과 불안의 마음으로 보냈다. 내가 다섯 살에 심장수술을 받을 때도 아버지는 이런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셨겠지. 아니지, 부모가 자식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크니 더 걱정되셨을 것이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암세포는 3기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십이지장과 위 절반을 드러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다른 변고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기력과 체중은 상당히 떨어지셨지만, 그래도 건강하시다. 이전보다 건강에 신경쓰시며 운동도 하고 계셔서 더 병에 걸리기 전보다 오래 사실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기를 바란다. 수술 이후 새삼스레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애뜻하다. 우리 나이로 이제 예순, 갈수록 약해지실 나이다. 아버지 다리를 주무를 때면 마르고 탄력이 없어진 다리살이 마음에 걸린다.

하나씩 시간들을, 기억들을, 훗날 보물이 될 추억들을 더 쌓아가야겠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다행히도 기회가 또 주어졌으니 말이다. 이번 주엔 집에 내려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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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침묵 열린책들 세계문학 13
베르코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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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 시대의 인사들을 생각할 때 난 겸허해진다. 끝까지 굳히지 않고 투쟁한 사람들을 생각할 때만 아니라, '변절자'들을 생각할 때도. 지금 나는 (상대적으로) 평화롭고 자유로운 곳에 살고 있는 까닭에 유리한 입장에 서서 그들을 마음껏 도마 위에 올린다. 그러나 나에게 그럴 자격이 과연 있는가. 난 어떤 고문도-손톱이 빠져나가는 고통도, 코 속에 고춧가루를 탄 물이 들어가는 고통도, 눈에 들이미어진 전등불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는 고통도-겪어본 적 없다. 처자식이 굶주리는 괴로움과 모든 일을 감시당하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녀야 하는 고난도 겪어본 적 없다. 무엇보다 난 한번도 '절망'을 겪어본 적 없다. 30년이 넘도록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고서, 압제를 벗어날 길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나치 독일이 유럽을 점령하고, 일제는 아시아 일대를 차지하고 이들에 대항할 세력은 보이지 않을 때) 나는 과연 계속 희망을 간직할 수 있을까? 그 시기에 한국의 많은 문인들은 변절하고 일제에 협력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조선의 개화와 독립을 추구하던 사람들이었지만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그들은 길을 잃고, 일제와 동화되고 그 안에서 살아남기를 택했다.  

 

난 자신의 나약함을 잘 알고 있기에 변절자들을 비난하는 데 부담감을 느낀다. 물론 그들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한편으로 그렇게 쉽게 비난할 자격이 나에게 있는지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안락하고 안전한 자리에 앉아 고난을 논하기는 얼마나 쉽고, 어떤 핍박도 고문도 겪지 않고 정의와 진리를 입에 담는 것은 또 얼마나 가벼운가. 치기어린 어린 시절과 다르게 요즘 나는 '변절'을 생각할 때 나는 분노와 비난보다 '저항'의 어려움을 되새기게 되고, 희망이 없는 시기에 절망에 굴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긴다. 그렇다, "패배하더라도 좌절하지 않는" 것은 정말로 고귀한 영혼을 지닌 자들만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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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읽다가 든 잡생각이었고. 

 

<절망은 죽었다> 프랑스의 저항문학가 베르코스는 이런 제목의 서문으로 소설집의 문을 연다. 그는 나치에 점령당한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며 일련의 소설들을 썼단다. 그리고 저항 문학의 대표로 불린다고. 그는 암담한 현실이지만, '절망은 죽었다'고 활기차게 선언하고 지하로 유통되는 소설을 써나간다. 그렇지만 '저항 문학'이라는 뉘앙스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다르게, 오버하지 않고 담담하게, 나치 독일 치하의 프랑스인들이 겪는 심적 고통과 갈등, 부끄러움 등을 선명하게 담아냈다.  

 

 그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바로는, 당시 프랑스인들에게는 독일에게 패해 점령당했다는 것보다도, 친독일 정부인 비시 정부가 세워져 나치 독일과 협력하고 인종주의 정책을 실시했다는 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었던 것 같다. 소설집에서도 <별을 향한 행진>의 주인공 토마는 자신이 사랑해마지 않는 '자유, 평등, 박애'의 국가 프랑스가, 유대 출신인 자신을 처형한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이 불의한 범죄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당시의 양심적인 프랑스인들에게는 상당한 콤플렉스였던 듯하고, 베르코스의 소설들에는 그런 부끄러움이 담겨 있다(<별을 향한 행진>, <베르됭 인쇄소>)   

「그래도 참 안타까워…….」
「뭐가?」
「당신처럼 좋은 사람이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간다는 게.」
「누구한테?」
「위선자들한테. 특히, 내가 이 아름다운 순간을 망치지 않기 위해 굳이 이름을 밝히지는 않을 우두머리 위선자한테. 이건 드물게 아름다운 순간, 어쩌면 마지막 아름다운 순간이 될지도 몰라.」  
--<베르됭 인쇄소>  

 나아가 그런 부끄러움은 프랑스인을 넘어 '인류'로서의 부끄러움으로 확장된다. 죄없는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현실에서 예술과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냐고,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냐고 묻는 <무기력>과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얄팍한 동정이나 던진 채 안락한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모든 이들을 통렬히 비판하는 <꿈>이 그런 작품들이다.  

 

인간이란 게 뭐냐고? 가장 더러운 피조물! 가장 비열하고, 가장 음험하고, 가장 잔인한! 호랑이? 악어? 그것들은 우리에 비하면 천사나 다름없어! 게다가 그들은 결코 성인인 척, 사상가인 척, 철학자인 척, 시인인 척 하지 않아! 그런데 이따위 것들을 내 책장에 꽂아 두고 간직하라고? 뭐하게? 저들이 성당에서 여자와 아이들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이는 동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저녁마다 불가에 앉아 스탕달 씨, 보들레르 씨, 지드 씨, 발레리 씨와 우아하게 대화나 나누기 위해? 지구의 모든 표면에서 저들이 살육과 만행을 저지르는 동안? 도끼로 여자들을 갈가리 찢어 죽이는 동안? 질식시켜 죽이기 위해 일부러 방을 만들고 거기에 사람들을 몰아넣는 동안? 라디오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도처에서 교수형 당한 시체들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동안? 친구들의 이름을 불게 하려고 저들이 사람들의 손발을 불로 지지는 동안?   

--<무기력>에서 

거짓된 이데올로기에 속아 넘어간 인간들과 그런 이데올로기로도 결코 왜곡될 수 없는 인간의 선한 감정을 담은 작품도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신성한 결합이라는(일제의 내선일체 주장을 연상시켰다) 아름답지만 거짓된 이데올로기에 속아 프랑스에 왔지만 진실 알고 괴로워하는 독일 장교의 이야기를 다룬 <바다의 침묵>, 애국주의에 사로잡혀 정부의 정책을 굳게 믿다가 배신당하고 유대인 친구를 위해 반정부 활동을 시작하는 인쇄소 사장의 이야기를 담은 <베르됭 인쇄소>. 개인적으로는 <베르됭 인쇄소>가 제일 재밌었다.  

 

전반적으로 읽을 만한 소설들이었고, 또 번역자의 해설도 좋았다. 베르코스는 전후에는 독일에 부역한 문학인들을 처벌하는 일을 맡았다고 한다. 역시 언제나 드는 생각이지만 그런 부역자 처벌이 한국에서는 이루지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베르코스를 비롯한 프랑스인들은 '고작' 5~6년밖에 지배를 경험하지 않았다. 우리도 겨우 그 정도의 지배만을 겪었다면 일제에 협력한 지식인의 수는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무려 36년의 지배를 겪었고 의지할 세력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기야 이런 걸 따지는 것도 좀 우습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프랑스 지식인들이 감내해야 했을 고난과 절망은 조선의 지식인들의 것보다 더 적었을 것 같다. 그렇기에 역사의 죄과와는 별개로, 그들이 겪어야 했을 고뇌를 생각하는 것도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필요한 일일 것 같다. 물론 일제에 부역한 것도 모자라 독재에도 협력한 서정주 같은 답이 안 나오는 인간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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