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필립 톨레다노 지음, 최세희 옮김 / 저공비행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아는 분이 출판사를 한다. 그분이 새로 나온 책이라며 한 권을 선물해줬다.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언제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더 잘할 걸 너무 늦었다고 후회하는 자식들이 보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이 책 저자인 필립 톨레다노는 너무 늦진 않았다.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치매 증세를 보이시자 아버지와 남은 생애를 함께하기로 한다. 그는 부인과 함께 아버지와 살며 가족의 추억을 되새기고 새로 쌓으며, 일상을 사진으로 남긴다. 이 책은 아버지와의 마지막 삶의 기록이다.

나도 이 책을 보면서 나도 우리 아버지 생각을 많이 하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2년 전 아버지가 암에 걸리셨다. 

그러니까 추석을 얼마 앞둔 어느 날이었다. 그 얼마전 아버지가 속이 안 좋으시다고 하면서 검진을 받으셨다. 나는 그런 것에 무심한 편이지만 걱정 많은 형은 역시 걱정이 많았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쯤 형이 결과가 어떠냐고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말을 흐리면서 정확히 말씀을 안 하셨다. 병명은 암이었다.

집에 내려간 우리 형제를 앞에 두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말고 있으라고. 수술받고 치료 잘 받아 나아질 것이라고. 암은 초기는 아니었다. 부위는 십이지장이라는 낯선 부위.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그래도 의연하셨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담배를 피셨다. 몇 년 전에 끊으셨지만, 하루 두 갑 가까이 피셨다. 술은 아주 자주 드셨고, 취하도록 폭음을 하셨다. 음식은 맵고 짜고 기름진 걸 즐기셨다. 자영업을 시작한 이후로는 속앓이도 많이 하셨다. 그러면서 건강관리는 잘 안 하셨다. 생각하면 암에 걸리기 쉬운 삶을 사셨지.

그리고 나는 담담했다. 물론 일하는 도중에도 한참 동안 인터넷으로 '십이지장암'이 어떤 것인지, 치료율은 얼마나 되는지 찾아보긴 했지만 평상심을 지켰다. 암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것이니까. 50대 이상 성인이 몇 퍼센트가 암에 걸리다고 하니까. 그 몇 퍼센트에 우리 아버지가 들어간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미 걸린 병을 걱정한다고 낳게 할 수 없으니까,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뇌리 한편에서는 '아버지 없는 미래'가 슬쩍슬쩍 스쳐 지나갔다. 섬뜩할 만큼 현실적으로.

한국의 많은 아버지들이 그렇듯 우리 아버지도 자식들에게 애정을 잘 표현하시는 분은 아니었고, 많은 아들들이 그렇듯 나도 살갑게 잘 하는 편은 아니었다. 술 마시고 주정하실 때는 미워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건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건 나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일이 현실로 다가오자 다른 많은 자식들처럼 더 잘했어야 했는데,라는 후회가 들었다. 언제나 너무 늦곤 하는 그런 후회가.

2011년 9월 어느날 아침, 아버지는 수술실로 들어가셨다. 어머니와 형과 나는 아버지 손을 잡고 힘내시라고 말했다. 수술실의 문은 닫히고 우리는 기다릴 뿐이었다. 아버지의 생명은 저 문 건너편에서 결정지어질 것이었다. 사소한 일들 하나하나가 중대한 의미로 다가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가 나왔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천만 다행히도 열어봤더니 수술해봤자 소용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8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을 우리는 멍하니, 초조하게, 걱정과 불안의 마음으로 보냈다. 내가 다섯 살에 심장수술을 받을 때도 아버지는 이런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셨겠지. 아니지, 부모가 자식 생각하는 마음이 더 크니 더 걱정되셨을 것이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암세포는 3기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십이지장과 위 절반을 드러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다른 변고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기력과 체중은 상당히 떨어지셨지만, 그래도 건강하시다. 이전보다 건강에 신경쓰시며 운동도 하고 계셔서 더 병에 걸리기 전보다 오래 사실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기를 바란다. 수술 이후 새삼스레 아버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애뜻하다. 우리 나이로 이제 예순, 갈수록 약해지실 나이다. 아버지 다리를 주무를 때면 마르고 탄력이 없어진 다리살이 마음에 걸린다.

하나씩 시간들을, 기억들을, 훗날 보물이 될 추억들을 더 쌓아가야겠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다행히도 기회가 또 주어졌으니 말이다. 이번 주엔 집에 내려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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