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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와와 하지 마시고 예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서로의 빛을, 서로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지금 곁에 있는 당신의 누군가를 위해, 당신의 손길이 닿을 수 있고... 그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말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빛을 밝혀 가시기 바랍니다. 결국 이 세계는 당신과 나의 <상상력>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의 상상에 따라 우리를 불편하게 해온 모든 진리는 언젠가 곧 시시한 것으로 전락할 거라 저는 믿습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작가의 말' 중에서)
설레임으로 가득한 20대의 사랑을 지나 누군가를 향한 두근거림이 심장병으로 이해되는 삼십대를 지나자 사랑은 미확인비행물체처럼 정체불명의 것이 되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닌가보다. 전성은의 말을 빌자면 연령별로 사랑의 정의는 조금씩 달라진다. 10대 청소년들이 정의하는 ‘사랑’은 ‘있는 그대로를 봐주는 것’, 20대는 ‘편한 느낌’ 그러다 30,40대가 되면 심오한 사랑의 정의를 기대하지만 이 때는 ‘모르겠다’가 가장 많다고 한다.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사랑했지만 세월 따라 흘러가버리고, 죽고 못살아 결혼했는데 죽지 못해 살게 되고 아기를 낳아 목숨 바쳐 사랑하자 아이는 숨막혀 한다. 내 마음 같지 않은 가족 관계, 사회관계를 되짚어 보자 자신마저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구나 생각이 미치자 도대체 사랑이 뭘까 궁금해 하다 제 풀에 지쳐 버린다. 그 즈음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만났다.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사지육신 멀쩡하고 잘생긴 남자주인공(들) 이야기. 소설이니까 가능한 이야기라고 코웃음 칠 수도 있지만 책을 넘기는 순간 이들의 운명과 사랑이 궁금해 가슴 두근거린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228p.)
쨍! 하고 가슴에 얼음 한 조각 흘린 느낌이랄까. 지지부진한 일상에 사랑의 온기를 더하는 일을 잊어버리는 우리에게 박민규가 주는 처방전이다. 이 처방전은 ‘몸과 마음을 다해 목숨바쳐’ 상상해야하므로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배울 곳도 마땅찮으니 알아서 찾아야한다. 불완전한 너를 오랜 시간 포기하지 않고 상상한다면 심리학자 황상민의 ‘인생의 짝’을 만날 수 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갖춰야하는 조건의 목록표가 복잡하고 길어졌다. 조건이 갖춰졌으므로 가슴이 뜨거워질 채비를 꾸리는 우리 결혼과 만남의 풍속도를 심리학자 황상민이 여러 사례로 풀었다. 황상민의 ‘짝, 사랑’은 현재 우리가 사랑하는 모양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화들짝 놀라면서도 다 그렇게 살아가는데 뭐가 문제야 라며 가슴을 쓸어내릴 수도 있겠다. 가슴 한 켠 무언가 서걱거리는 느낌이 든다면 사랑의 상상력이 필요한 때다. 나를 상상하는 이를 찾고 있는가? 우선 자신을 상상하는 일부터 시작해보자. 상상력은 곧 누군가를 불러들일 것이다. 확실하냐고, 질문할 여유가 있는가. 지금 영하로 세상이 얼어붙고 있다. 따끈한 상상력으로 마음부터 후끈하게 덥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