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하는 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8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박인원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월 초에 겨우 반 읽고 던져뒀다. 어쩐지 읽히지가 않았고 마음이 심란했었다. 다른 이유들도 있었겠지만 왠지 내용이 그랬다. 글렌 굴드에 대한 아니 글렌 굴드가 등장하는 글이라니 클래식에 문외한이면서도 글렌 굴드 연주곡들을 들으며 읽었는데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때가 있는 모양이다. 책도 딱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어제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지난 번에는 겨우겨우 반을 읽은 거라 처음부터 다시.
이번에는 잘 읽힌다. 그래, 이런 내용이었지. 아, 이런 내용도 있었던가? 다 때가 있는 것이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르가 친구고 거기에 살리에르와 수준이 비슷한 친구가 한 명 더 있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등장인물을 다 해도 열 명 남짓이다. 글렌 굴드, 범접할 수 없는 천재성을 눈 앞에서 만나고 심지어 그와 친구가 된다면. 시시각각 상대의 천재성을 확인하고 매번 자신과의 차이를 절감하게 된다면. 천양지차라 어차피 틀려먹은 것도 아니고 아주 약간이지만 극명한 수준 차이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면. 그런 상대가 나를 몰락하는 자라고 부른다면- 몰락하는 자는 어떤 것도 남길 수가 없고 몰락하는 자를 지켜보는 자만이 무엇이건 남길 수 있다. 서서히 무려 28년간 몰락하는 자를 지켜본 자가 남긴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어차피 천재도 수재도 아니고 범인에 불과해서 편하다. 굳이 올라갈 일도 없고 올라가려 노력해 본 적도 없고 정점에 서는 것 따위 꿈조차 꿔본 적이 없고 덕분에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라 다행이다.
한 때, 지독하게 나만 당하고 있는 것 같아 괴롭던 시기가 있었는데 지나보니 뭐 다들 그렇더라. 정도의 차이가 있다해도 각자에겐 각자의 고통이 가장 큰 법이니 그것도 의미가 없다. 다들 아프고 울고 억울해하며 산다. 그것도 어느 이상이 지나면 지치고 질리게 마련이라 그만두기로 했다. 상대적인 평가는 집어치우고 자기 본위의 만족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니 좀 더 편해졌다. 하지만 간절히 바라는 것을 당연하게 손에 쥔 상대를 만나고 나는 절대 그것을 가질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은 좀 비참할 것 같다. 그러니 어디까지나 안분지족의 자세로 살아가야겠다고 한번 더 다짐해본다. 응? 이거 이 묘한 이야기에 대한 감상보다는 문장에 대해, 서술 방식에 대해 말하고 싶지만 그것을 설명하기엔 내 수준이 비루하다. 독특하고 놀랍다는 말 밖에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