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세상을 만나다 카르페디엠 20
시게마츠 키요시 지음, 오유리 옮김 / 양철북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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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면서 어린 시절의 내 마음을 자꾸 끄집어 내곤 한다. 저럴 때 내 마음은 어땠던가, 나는 무엇에 상처받고 무엇에 감동했던가를 자꾸 되새긴다. 이미 어른인 내 시선이 아닌 어린시절의 내 시선으로 아이를 이해하려 노력해본다. 그래봐야 지레짐작이고 그때와 요즘은 너무 다르다. 그만큼 많이 달라졌다. 옛날 생각만 해선 안된다. 그래도 덕분에 어린 시절의 상처들을 마주하고 조금쯤 더 자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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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일본 청소년의 시각으로 그려진 이 소설이 내 청소년기와는 너무도 달랐다. 아마 한국의 2000년대쯤 되지 않을까 싶다. 요즘 중학생인 아이는 또 다르다. 그래도 나 보다는 아이와 더 기깝게 느껴졌다. 그만큼 솔직하게 씌여진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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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청소년기에 국한되는 이야기라 보기도 어렵다. 몸은 자라도 마음이나 생각은 안자라는 경우도 많다. 민망하고 창피해서 쿨하지 못해서 요즘말로는 쪽팔려서(언젠가 이 단어를 사용했더니 아이가 놀랐다. 그런 말도 할 줄 아냐고- 물론 안다. 더한 말도 잘 알지. 조심할 뿐-) 중요한 것들을 외면한다. 아니 생각하는 것도 차단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어느 시기엔 어떤 것이 모든 가치와 기준을 뛰어넘기도 한다. 그 역시 당연하다. 그에 대한 잔소리는 지금은 그렇더라도 단언하진 말자 정도 일뿐. 뭐라고 하든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 역시 그렇고 요즘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어쩌면 아이에게 어른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것은 폭력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슬슬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더 중요한 것들이 생기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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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 선의와 악의에 대해 누가 확실한 대답을 줄 수 있을까.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사회적 함의와 교육으로 방법을 제시할 순 있을 것이다. 욕구와 충동이 모두 선하고 건전하고 바람직할 리는 없다. 아주 사소한 일로 살의를 느끼기도 하고 격렬한 파괴 욕구가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법과 도덕이라는 이름은 때에 따라선 꽤 멀다. 내 안의 욕구나 충동은 순간의 일인데, 법과 도덕은 저만치에 있다. 인간에겐 스스로를 잘 조절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욕구를 조절하고 충동을 대체하고 그 에너지를 변화시키기 위한 방법이 필요하고 그것을 훈련해야 한다. 이렇게 글자로 풀어쓰면 대단한 것 같지만 실제로 일상에서 빈번히 마주한다. 다만 좀 더 의지적이고 명확한 기준이 있는가의 차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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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말을 내뱉어도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의 마음이다. 각자의 마음 속 상처나 고통에 반응하고 잘 대처하는 것, 몸을 튼튼히 하는 것처럼 마음을 튼튼히 하는 것이 아닐까.
성장과 교육은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기준을 잘 만들 수 있도록 나 자신의 기준 역시 재확인 중이다. 대단하고 훌륭한 인간 이전에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좀 더 자라야 하고, 아이도 잘 자라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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