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B. A. 패리스 지음, 김은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5월
평점 :
일시품절



헤어나올 수 없는 끈적하고 깊은 늪에 빠진 기분이다. 감정이입이 잘 이루어져서 더 힘들고 지치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작은 부분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되어 겉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던 경험이 있다면(누가 없겠냐마는) 전적으로 주인공들의 심리에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기분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책은 주인공인 리비아의 40번째 생일, 그 날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리비아와 애덤은 학생 때 아이가 생겨 결혼한 커플이고, 첫째 조시와 둘째 마니를 둔 가족이다. 결혼식도 제대로 치루지 못했던 리비아에게 ‘40번째 생일 파티는 인생의 하나뿐인 목표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행사였고, 평생을 이 날만 준비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 파티를 앞두고 리비아와 애덤은 각자 마니에 대한 비밀을 갖게 되고, 서로를 위해 비밀을 숨기려 한다. ‘이 비밀을 지키는 것이 맞는가?’, ‘밝힌다면 언제, 어떻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은가?’를 고민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교차해서 나타난다.


사실 이 부분에서 너무너무너무(x99999999) 답답했다. 당장의 평화를 위해서 무조건 덮어 놓는 것이 능사는 아닌데. 오히려 숨기고 덮어놓는 시간 동안 문제는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결과적으로 파국적인 수준까지 다다른다.(이건 다른 경우에도 맞는 말이다. 지금 당장의 평화가 최우선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사실 리비아도 애덤도 말로는 상대를 위해서라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비밀을 덮는 것뿐이다. 과거에 저질렀던 자신의 잘못을 상쇄하기 위해서, 비밀이 밝혀졌을 때 비난받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비밀을 털어놓음으로써 자신의 과오를 소리내어 인정하기 싫기 때문에. 이런 면모는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적나라게 드러나는데, ‘상대를 위해서라고 말한 것과 달리 상대를 비난하고 원망하며 상처를 준다.


내가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은 판타지다.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이다. 이 책은 읽는 내내 그런 판타지를 꿈꾸게 하면서도 가차없이 부숴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잔혹하지만, 뭐 현실이라는게 늘 꽃밭일 수는 없는 거니까.


+ 늦었다고 생각이 들 때가 진짜 늦은거 맞다. 그니까 더 늦기 전에 지금 바로 해라.


+ 아무리 가족이라도, 리비아와 애덤처럼 사랑하는 사이라도, 넘겨짚는 것은 금물이다. ‘저 사람이 내 마음과 같겠지?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만큼 어리석은 생각도 없다. 아니 솔직히 내 마음도 잘 모르겠는데 남의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추측하냐구. 그러니까 제발 진솔한 의사소통, 대화라는 걸 좀 하고 살아야 한다.



[ 책수집가 활동을 통해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


펼친 카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오늘이란 시간이 당신이 바라는 모든 것 그 이상이 되길 바라. 당신은 그런 하루를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사랑하는 남편이. 추신 - 우린 최고의 부부야.’ - P30

목숨처럼 원하는 무언가를 박탈당하면 그 열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 P36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아이를 낳는 게 정말 좋은 점이 있네요." 조시가 말했다.

"자기 인생을 뒤로 미뤄두어야 하는 건 빼고 말이지?"

남편의 말이 농담인 건 알았지만 조시의 얼굴에 그늘이 스치는 걸 보자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 느낌이었다. 남편의 얼굴을 보니 방금 한 말을 주워 담았으면 좋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 P60

"이해가 안 돼요."

"오늘 밤엔 이해할 거다. 지금은 아빠 생각대로 할게."

"하긴 그동안 무슨 일이든 아빠가 원하는 대로 한 적은 없었으니까요." 조시는 그 말을 너무 태연하게 했다. 그 덕에 아들이 내가 살면서 모든 일을 자발적 선택이 아닌 의무감에서 해왔다고 믿는다는 걸 알아차렸다. - P67

맨 처음 남편이 외박했을 때 나는 남편이 사고를 당했거나 살해되었다고 생각했다. 흠씬 두들겨 맞고 상처투성이가 된 남편의 몸이 도랑에 누워 있는 모습이 그려졌고,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뒤이어 여자 경찰을 대동한 남자 경찰이 문간에 서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증략)... 속 좁은 생각인 건 나도 안다. 사실 그런 생각은 그 힘들던 시간을 떠올릴 때만 하게 된다. 하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게, 걱정으로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게 어떤 건지 남편도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악의 상황을 주려워한다는 게 어떤 건지. - P113

어쩌면 신은 내가 운명에 도전하고 있다고 판단해 나를 시험에 들게 하고 있는 걸까. - P131

폴라가 너무 외로워하는 모습에, 내가 부럽다는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따. 내가 폴라를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이 정말 싫지만 폴라 눈에는 내가 모든 걸 가진 것처럼 보였나 보다. 가족과 친구와 건강이 있으니 내가 정말 운 좋은 사람이라는 건 나도 안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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