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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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사람들 #프레드릭배크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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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대환장파티다. 읽는 내내 얼마나 끅끅대고 웃었는지ㅋㅋㅋㅋㅋㅋㅋ 역시 프레드릭 배크만. 최애 작가 자리를 다시 탈환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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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심약한 은행 강도와 진짜 말 드럽게 안들어 쳐먹는(;;;;) 인질들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 은행을 털려고 했던 은행 강도는 (누구나 처음은 힘들겠지만) 미숙하기 그지없고, 인질들은 이런 은행 강도를 ‘제대로’ 일 못한다고 혼내기도 하고(?!) 처음에는 다 그렇다고 위로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 인질들은 협상을 내걸면 ‘공짜로’ 피자를 먹을 수 있지 않냐며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서 경찰에게 피자를 주문한다.(“영화보니까 그렇던데요!”....) 이런 인질들을 보면서 은행 강도는 “정말 최악의 인질들”이라고 몇 번이고 되뇌인다.(사실 은행 강도도 ‘직업적으로’ 최악이기는 하다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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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불안하다. 각자의 삶에서 위태로운 일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다리 난간에 올라서기 직전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은행 강도의 인질’이 되었을 때, 즉 삶에서 한 번이라도 겪기 힘든 스트레스 상황을 직면했을 때 보이는 모습은 예상 밖이다. 굉장히 침착하고 유머러스하고 다정하다. 이런 모습을 통해 작가인 프레드릭 배크만은 어떤 굉장한 사건보다도 우리의 일상적인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어쩌면 가장 불안하고 힘든 일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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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책에 등장하는 은행 강도와 인질들은 각자의 역할(즉, ‘강도’와 ‘인질’ 역할)에 매우 서툴다. 정말 최악의 강도와 인질들인데(실제 상황에서 절대 이렇게 행동하면 안된다는 걸 양 측 모두 제발이지 알았으면 좋겠다;;;;) 이 또한 우리의 모습과 동일한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지만 모두 처음 사는 인생이기 때문에 살아가는 데 서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독자들에게 위로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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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사라. 거의 오베의 현신이다. 프로 팩폭러인데 말을 얼마나 찰지게 하는지, 듣는 내가 아플 정도(이런 사람과는 정말이지 말싸움을 해서는 안된다. 데미지 너무 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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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는 동안 정세랑 작가님의 <피프티 피플>이 계속 생각났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각자의 웃픈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아주 절묘하게 담겨져 있다. 그리고 아주 가벼운 이야기부터 쉽게 입에 담기 어려운 깊은 이야기까지 가슴에 꽂히는 정교한 문장으로 풀어낸다. 정말이지 한 문장도 뺄 것이 없다. 완-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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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강도. 인질극. 아파트를 급습하려는 경찰들로 가득한 계단. 이 지경에 다다르기까지는 수월했다. 생각보다 훨씬 수월했다. 정말 한심한 발상 하나만 있으면 됐다. - P15

여기서 인질극이 펼쳐지기는 하지만 그게 이 이야기의 주제는 아니다. 그러니까 어떤 이야기를 쓰겠다는 목적이 있기는 했지만 인질극이 주제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원래는 은행 강도 사건이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모든 게 조금 어그러져버렸는데, 은행 강도 사건이란 게 원래 가끔 그럴 때가 있다. - P17

(사라)
"그걸 커피라고 부르세요? 저기 저 기계에서 나오는 액체를 봤는데, 경관님하고 내가 이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두 명이고 경관님이 그게 독약이라고 장담하더라도 마시지 않겠어요."
(짐)
"저하고 커피, 둘 중 어느 쪽이 더 기분나빠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 P114

"돈을 어떤 데 쓰세요?"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를 사는 데 쓰죠."
심리상담사로서는 처음 듣는 대답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비싼 음식점은 테이블 간 간격이 넓어요. 비행기 1등석은 가운데 자리가 없고요. 특급 호텔에는 스위트룸 고객들이 드나드는 출입문이 따로 있죠.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에서는 가장 비싸게 팔리는 것이 남들과의 거리예요." - P145

로는 미소를 지었다, "딸이 있으세요? 몇 살인데요?"
운행 강도는 딸들의 나이를 밝히려니 목이 메는 모양이었다. "여섯 살하고 여덟 살요."
사라는 헛기침을 하고 물었다. "그럼 그 아이들이 가업을 물려받을 건가요?"
상처받은 은행 강도는 눈을 깜빡이며 권총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적은...... 처음 이에요. 나는......범죄자가 아니에요."
"그 말이 맞길 바라요. 충격적일 정도로 솜씨가 형편없거든요." 사라는 딱 잘라 말했다. - P201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아요!"
"알았어요."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은행 강도 일의 핵심이라 짚고 넘어갈 타이밍이 아니었기에 은행 강도는 이렇게 말했다. - P235

"좋았어! 내가 피자를 준비하겠어요!"
그는 성큼성큼 발코니 족으로 걸어갔다. 에스텔은 접시를 찾으러 얼른 부엌으로 종종걸음 쳤다. 로는 율리아에게 어떤 피자를 먹고 싶은지 물으려고 벽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현관홀에 혼자 남겨진 은행 강도는 권총을 움켜쥔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최약의 인질이야. 당신들은 역대 최악의 인질이야." - P263

어쩌면 당신도 우울한 상태이기 때문에. 엑스레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곳이 지독하게 아픈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조차 그걸 설명할 방법이 없는 날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대다수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기억 속 저 깊은 곳에서는, 바람과 다르게 우리가 다리 위에 선 그 남자와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걸 안다. 대부분의 어른들에게는 정말 끔찍했던 순간이 여럿 있었고,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꽤 행복한 사람들도 주야장천 행복할 수만은 없다. 따라서 당신은 그를 살리려고 할 것이다. 인생을 실수로 끝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직접 뛰어내리려면 선택을 해야 한다. 어디 높은 꼭대기로 올라가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뎌야 한다.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다. 당신은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 P30

그녀는 이후로 날마다 뛰어내린 남자와 자신의 차이점에 대해 고민했다. 그걸 발판 삼아 직업과 경력과 모든 인생을 선택했다. 그녀는 심리학자가 되었다.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한 발을 저쪽으로 내밀고 난간에 서 있는 것처럼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이었고 그녀는 맞은편 의자에 앉아서 눈빛으로 말했다,. "나도 겪어봤어요. 나는 거기서 무사히 내려오는 방법을 알아요." - P155

"그럼 앞으로 뭘 하실 거예요?"
"모르겠어요."
심리 상담사는 마침내 중요한 말이 생각난다. 대학교에서 배우지는 않았지만 누구나 가끔 들어야 하는 말이다.
"잘 모르겠다는 데서 출발하는 것도 좋죠."
- P456

"우리 걱정은 하지 마요." 율리아가 구슬렸다.
"사실 우리는 거짓말할 필요가 없어요." 로게르가 말했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인 척하면 돼요."
"맞아요, 그럼 아무 문제 없지 않나요? 다들 어려울 것도 없잖아요!" 사라가 단언했다. 이번만큼은 무시하는 발언이 아니라 진심 그대로였다. - P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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