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 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
이은선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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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지는 기분’이라고 해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경험한 일들을 얘기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글에서 말하는 ‘착해지는 기분’은 나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그 무엇보다 쉽게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어려운 일이 나에게 착하게 대하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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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음식을 먹는 것만큼 하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다(맛은 보장할 수 없지만;;; 얼추 실패해도 잘 먹기 때문에 걱정은 안함) 그래서 처음 혼자 자취를 시작했을 때는 과일청도 만들고, 밑반찬도 만들어 두고, 닭 두 마리를 통째로 삶아서 죽을 끓이고(내가 진짜 손이 크다는걸 이때 뼈저리게 느꼈다. 물릴 때까지 먹었음) 그랬다.


하지만 최근에 식단 관리를 열심히 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주방에 설 일이 거의 없어졌다. 기껏해야 샐러드를 씻거나 데우기만 하면 되는 닭가슴살을 통에 담아 전자레인지에 넣는 정도? 그래서 종종 우울한 마음이 들 때마다 그저 내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메뉴를 먹지 못해서 마음이 또 힘들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까 뭔가 생각이 달라졌다. 음식을 만들고 준비하는 그 과정도 정말 중요하구나. 이렇게 온전히 마음을 쏟을 수 있는 행동이구나. 하나를 먹더라도 정성껏 식탁을 차려야겠다. 온전히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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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작가님의 생각과 표현이 다정해서 우울할 때 펴들어도 좋을 것 같다. 기자님이라서 그런지 글도 술술 읽히고 책장도 쉽게 넘어간다. 나는 영화를 열심히 찾아보는 편은 아니라서 모르는 작품도 많았는데 영화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더 공감하며 읽으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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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왠지 맥시멀리스트이실 것 같은뎈ㅋㅋㅋㅋ 공감되는 부분 넘 많았잖아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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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수집가 활동을 통해 출판사 아르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솔직한 서평입니다. ]

언젠가 들었으나 누구에게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말이 있다. 아끼는 것을 떠올릴 때 다음 두 질문에 공통으로 ‘그렇다’라는 대답이 나와야 앞으로의 과정이 순탄하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좋아하는가. 그리고 이것도 나를 좋아하는가. - P7

‘정성껏’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내게 음식과 요리는 일상적인 행위인 동시에 사람과 삶을 한층 더 정성껏 바라보게 하는 대상이었다. 마음 안에 차오르는 길고 내밀한 언어들을 납작하게 접은 채 ‘좋아요’ 하나로 반응을 보이면 그만인 세상에서, 간편한 경험들이 우선하는 세상에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요리는 확실히 비효울적인 행동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감정의 맥락과 소통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단순히 허기를 달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취할 때의 마음을 구별하게 한다. 한 그릇의 요리에 담긴 의미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 P9

작은 거실은 음식 냄새와 사람들의 웃음소리, 귀여운 강아지들의 발소리로 가득 찼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기분 좋게 웃는 것.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에서 이보다 더 충만하게 행복한 순간들을 나는 떠올리기 어렵다. - P22

메뉴를 정하는 것부터 신경써서 재료를 고르고, 그것이 하나의 형태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온전히 이해한 상태로 음식을 먹는 것은 꽤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사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체험이다. 배만 부른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포만감을 주는 행위다. - P30

쓸데없이 부엌살림을 늘리는 데 질색하는 엄마는 내가 뭔가를 가지고 싶어 할 때마다 "독립하면 네 살림으로 사"라는 말을 하곤 했다. 엄마 말은 잘 들어야 한다. 독립한 나는 기다렸다는 듯 ‘내 살림’을 꾸준히 늘려나가는 것으로 효심을 발휘하는 중이다.
- P47

의지는 불타오르게 만드는 것보다 꺼뜨리는 게 더 쉽다. 포기하면 편하다. 발이 다 짓무르고 피가 나는 순간에 절벽에 잠깐 앉아서 상황을 수습하려는데, 그 와중에 등산화 한 짝이 수백 미터 아래로 떨어져버리는 게 인생이니까. 안락한 소파에 앉아 달콤한 핫초코 한 잔을 마시는 게 지친 심신을 위로하는 데는 더 효과적일지 모른다.
- P53

정리의 여왕이라 불리는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어록을 남겼고, 나는 그 말에 큰 감명을 받았다. ‘모두 설레니까 하나도 버리지 않아도 되는’ 삶을 실천할 명분이 생긴 것이다. - P75

인생에는 단맛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운 순간들을 맞이할 때, 피로가 몸과 마음을 지배하려 할 때 즉각적인 처방전으로 이보다 유용한 건 찾기 어렵다. 쓴맛을 보았을 때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달래는 일은 중요하다. 다시 힘을 내볼 수 있도록 기분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살아가려면 나라는 존재를 계속 구슬리고 달래며 움직여보는 수밖에 없지 않나.
발휘하는 힘이 세다는 측면에서 귀여움과 달콤함은 일맥상통한 지점이 있다. 무기력과 분노를 가라앉히고 내가 살아갈 세상으로 다시 눈 돌리게 한다. 지켜야 할 것들,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 P80

나는 진심으로 탄수화물이 인류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믿는다. 타인을 향한 애정, 너그러운 마음씨와 예절, 그런 게 다 탄수화물에서 나오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첫 끼는 되도록 탄수화물을 제외하고 채소를 풍부하게 섭취하는 게 좋다는 정론은 때론 나를 지치게 만든다. 어쩌다 탄수화물은 건강과 다이어트의 주적이 됐을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체중과 건강을 염려하며 식재료를 고를 때 칼로리를 따지고 계산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사는 게 매우 덧없이 느껴진다. 인생은 왜 이 맛과 저 맛 사이가 아니라 저칼로리와 고칼로리 사이란 말인가. - P106

세상의 모든 결과물은 애정과 열정과 선한 의도에 비례해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가 기억해주는 위대한 작업을 할 때보다 그렇게 될 리 없는 시시한 작업을 할 때가 더 많다. <에드 우드>에는 그런 모두를 위로하는 마음이 있다. 지치지 않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 그 꾸준한 마음이 실은 가장 대단한 것임을 말하는 목소리가 있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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