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원하는 것 모두 그대 안에 있다 - 아하 붓다 1
스티브 헤이근 지음, 송현주 옮김 / 이론과실천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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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불교를 믿고 있지만 솔직히 그다지 불교에 대한 관심을 그리 없었다는게 사실이다.이 책의 저자는 동양인이 아닌 서양인이라는 점에서 일단 호기심을 듬뿍 주었다.저자는 붓다의 가르침 특히 사성제와 팔정도를 중심으로 설명한 책이다.타종교 신자들에게는 어떻게 나의 이야기가 받아들여질지 모른다.하지만 불교신자의 입장에서 이책을 읽지 않았다.'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자신의 종교 이론에 신빙성을 더 준다는것은 부인하지 못할것이다.책을 읽음에 중심을 잃어버리기도 십상일터 나 스스로 객관적으로 저자가 말하는 '붓다의 가르침'으로 인간과 종교에 대해 깊은 생각을 가져보게 하였다.

人間은 아득한 옛날부터 인생과 우주의 궁극적인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해답을 추구해 왔다.또한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人間의 갈망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것이다.현대의 고도로 발달한 인류학의 연구에 의하면 원시인들에게도 인생의 궁극목적에 대한 탐구의 흔적이 나타나 있다고 한다. 원시인들도 그들 나름대로 인생에 대한 물음을 어떤 초월적 힘에 대한 외경(畏敬)에서 찾았으며, 마침내는 죽어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人間은 그 허무함과 무상을 극복하기 위해 영생 혹은 후세의 삶을 믿고 있었음이 그들의 장례예식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들이 살았던 동굴에 묻힌 사람의 뼈가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은, 죽은 후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믿고 죽은 이를 위해 정성 들여 장례식을 거행한 증거이다. 또한 人間의 유해는 동물의 시체와는 달리 정성 들여 매장했으며 죽음의 여행길에 필요한 도구나 음식 혹은 동반자까지 함께 묻은 흔적도 그 증거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던 동굴과 뼈가 묻혀 있는 무덤들에서 발견되는 조각과 그 밖의 예술작품들은 모두 그들의 종교의식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이렇게 人間은 시초부터 종교를 가지고 살았으며 현재에도 문명인이든, 미개인이든 모두 종교를 가지고 있다.불교란 무엇인가?인류의 역사와 문화, 인간의 지성과 불교는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일까? 人間의 문명이 발달하면 종교는 없어질 것이라고 하는데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에도 왜 불교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가?초심의 반문을 불식시켜 주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종교인 중에 불교인이 차지하는 수가 다소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하지만 선을 행하라는 불교의 가르침에 많은 이들이 선을 행하는데 관심이 없다. 적어도 잠시만이라도 질투, 자존심 그리고 사악함을 없애는 법을 배워간다면 불교를 실천할 올바른 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대단히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나쁜 생각을 없애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들을 마음속에 감추고 기르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이익과 권력을 위해 불교를 악용하는 듯하다.저자도 그런점에 아쉬워한다.

오늘날 우리 국민은 평화와 행복을 누리고 싶어한다.평화와 행복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국민과 지도자가 함께 반야바라밀다의 정신을 생활의 실천원리로 삼을 때 가능하다고 본다.그때 비로소 우리는 전쟁과 전재의 공포로부터 해방될수 있을 것이다.빈곤과 질병으로부터 해방될수 있으며,우리 속에 깃들인,그러면서도 우리가 지금까지 몰랐던 인간의 고귀함을 자각하게 되도록 우리 모두의 무명으로부터 해방될수 있을 것이다.반야바라밀을 생활의 원리로 실천할 때,우리 국가사회는 우리 모두의 사람됨을 보장해 주고,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아름답게 꽃피우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또한 人間 속에 잠자는 고귀한 것을 일깨워 주는 문화사회가 되고,자비심,풍부한 인간성,개혁과 창조를 위한 이성적 모색과 해결의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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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를 위한 영혼의 닭고기수프
잭 캔필드 외 엮음, 유은영 옮김 / 좋은생각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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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아득하다 10代의 시절이 그 언제 였던가.이런 말을 하면 나 자신이 무지 인생의 연륜이 쌓인거 처럼 보일것이다.나이 지긋하신분들에게는 참으로 송구스런 표현일것이다.지난 청소년시절을 생각해 보게끔 한 '십대를 위한 영혼의 닭고기수프'학교생활에 얽힌 청소년의 고민,부모와의 막,이성에 사랑의 열병,미래에 대한 불확실 등 청소년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있는 작품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사회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게 한다.사회의 청소년을 위한 제도가 그리 풍부하지 못한 점이 청소년들의 탈선과 비행을 조장하는것이다.한 사례 한 사례를 읽으면서 청소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더구나 가정과 사회가 청소년에 대해 어떻게 해야될지도 한번 생각하게 한 한권의 책이다.요즘 참으로 청소년 가출,비행 등등 좋지 못한 청소년 象들이 매스컴에 들낙거리는것이 못내 아쉽다.이는 다 가정과 사회의 문제일것이다.가정은 우리의 삶이 시작되고 또 끝을 마치게 되는 터전이다.

아버지들은 점점 가정에서 잊혀져 가는 존재가 되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일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이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남성 어른의 대표이자 사회를 내다볼 수 있게 해주는 창이다.자신의 힘이 들더라도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아버지를 더 필요로 한다. 이제 단순히 먹여주고 보호해주는 육체적인 부모보다는 삶의 방향을 보여주는 정신적인 부모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요즘은 가정에 아이가 적은 관계로 이기적이고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하는 청소년이 많고 부모 또한 과보호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아버지는 좀더 엄하고 훈계를 줄 수 있는 보다 어머니보다는 달라야 한다. 자식 앞에서 냉철해 져야 하며,자식들에게 아부하는 아버지가 되어서는 안되는 일이다.부모와의 갈등을 다룬 사례를 읽고 가정의 중요성을 절감할수 있었다.

청소년기는 성인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역할을 습득하는 시기이며 심리적 사회적 독립을 추구하는 시기이다.현실적으로는 성인신분에 도달하지 못한 채 성인역할을 훈련해야 하는 과도기적인 특성 때문에 청소년들은 많은 갈등과 문제에 부닥치게 마련이다.청소년은 아동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상태에 있으므로 아동과 같이 의존적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도 않다. 이들은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추구하는 반면에 부모나 성인들의 사랑과 관심을 기대하고 또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청소년기에 고유한 이러한 갈등과 함께, 사회변화에 따라 다양성이 심화되고 청소년의 생활공간이 가정을 넘어 학교, 친구집단, 사회 등으로 광범위하게 확대되어 이질적인 집단 및 가치와 접촉하게 됨에 따라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과거보다 몇갑절의 갈등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이 사회의 모순들이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 지 모르지만 청소년에 대한 교육은 아무리 주장해도 틀리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백년대계를 짊어지고 갈 일꾼들에 대한 투자 이기 때문이다.기성세대를 비롯하여 부모들도 함께 노력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고 올바른 가정관을 확립하고 소극적인 자세보다는 적극적으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선도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한 모습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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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는 어떻게 지구환경을 파괴하는가
힐러리 프렌치 지음, 주요섭 옮김 / 도요새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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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프렌치.저자는 누구보다 환경에 대한 심각한 경고성 발언을 하고 있다.비단 우리에게 경제 성장이라는 미명아래 속출하고 있는 환경파괴에 대한 그는 나름대로의 주관을 펼친 책이였다.나는 이 책을 읽고 난 후 평소 가벼이 알고 있었던 환경 문제에 심각성을 얻을 수 있었다.우리 삶은 자연을 향유함으로써 풍부해질 수 있다.그러나 우리가소비를 많이 할수록 자연세계는 변형될 위험이 높아지고,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자연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종종 종교적 혹은 도덕적 색채를 띠기도 한다.

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이 지적했듯이,많은 미국인들은 인간의 복리보다는 그 자체로서 소중한 생물의 종(種)을 보호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믿음을 갖고 나는 가져 본다.우리 국토의 생태계 맥을 이으려면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고 본다. 무엇보다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환경파괴 행위부터 막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환경파괴를 하지 않고 경제성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세계경제포럼의 환경지속지수조사에서 세계 122개국 가운데 95위를 차지할 만큼 이미 숱한 경제개발계획으로 인해 환경을 파괴해온 전력을 갖고 있다. 시화호 담수화 계획의 실패에서 보듯이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는 경제적 손실도 크지만 생태계의 맥을 끊어놓는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 개발사업이 시행될 때마다 이와 상충되는 환경정책은 뒷전으로 밀려왔던 전철을 이번에는 밟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간은 자연과의 관계에서 자연을 잘 다스리고 보호하여야는 명분에서 벗어나, 자연위에 군림하면서 인간의 이익과 풍요로움을 위하여, 오히려 자연환경 뿐만 아니라 정신환경 마저 훼손하고 파괴하였다. 이러한 일들로 인하여 인간 스스로가 오염된 환경으로부터 위협 받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따라서 환경오염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매우 시급하면서도 절실한 문제로 되었으나, 환경오염의 개선문제는 단순한 것이 아니고,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인 만큼 인류 모두가 함께 이에 협력해야 할 문제이다.

이러한 개선 과정에서 우리가 꼭 염두에 두어야 할 일은 환경오염에 의한 인류의 위기 의식과 환경 보존 및 개선에 대한 급박한 의식이 단순하게 ideologie화 되어 인간의 기본권리 및 인권까지 자연을 훼손시킨다는 명분하에 매도하는 행위는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은 자칫 독재나 좌경 사상으로 치우치게 될 위험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환경오염의 개선에는 매우 많은 경제적인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 실정에는 오히려 사치라고 조장하여 경제성장이 우선이라는 미명하에 자연환경 및 정신환경이 훼손되어 지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 들여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나친 환경 보호의식에 의해서 정상적인 산업 활동이 저해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즉,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신중히 검토해가며 인간의 복지증진과 자연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나씩 개선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이러한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어쩌면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과 고통의 대가를 치르고 지식을 빌려 받은 것인지 모른다.그리고 이것은 언제인가는 돌려줘야 하는 시간적 제약 때문에 더욱 값지게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값진 지식을 이용 하여 자연환경과 정신환경 오염의 개선을 통한 인류 복지와 평화를 이룩하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로 한 또 다른 하나의 과일을 우리는 얻도록 노력하여서, 이 땅위에 에덴동산을 다시 이루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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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김열규 지음 / 궁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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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적는 본인은 죽음에 대한 비관론자가 아니다.죽음!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본 테마일것이다.저자는 서구의 학자들의 죽음에 대한 사유를 탐색하여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가치관을 말하고 있는 작품이다.이책으로 나는 또다시 죽음에 대한 몰입적 사고를 가지게 하였다.죽음이 이렇게 엄연한 현실이며, 인간의 최대의 관심거리이며, 모든 철학과 삶과 문학과 예술의 가장 깊은 신비적 대상이면서도 현대인들은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려하지 않으며 죽음을 터부시 한다.

그동안 현대 문명사회, 특히 서구 문명사회에서는 죽음에 대하여서는 가급적 말을 않으려고 했다. 죽음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터부시하고 침묵을 지켜왔다고 말 할수 있을 것이다.서구사회에서 장례식은 지극히 제한된 식구나 친지의 일부가 모여 성직자의 종교의식에 따라 진행할 뿐이다. 아시아의 문화처럼 죽음의 장례가 삶의 커다란 통과의례가 되지 못하는 감이 있다.

그러나, 서구사회도 근대 이전 까지는 죽음이 삶과 긴말한 관계 속에서 운위되어 왔다. 그런대, 현세적 삶에 인간의 거의 모든 관심을 기울이게된 근세 계몽주의 시대 이후, 죽음의 문제는 삶의 변두리문제로 몰려나게 되었다. 인간이 죽음을 그의 전체 삶에서 도외시하고 소외시키면, 삶 그 자체도 비인간화되고 소외된다. 죽음은 본래적인 큰 삶의 일부분이며, 인간사회를 보다 인간다운 얼굴을 지닌 사회로 조성하는 인간의 근본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땅 위에서 가지고 살던 혈과 육으로 구성된 생물학적인 유기체로서의 몸이 그대로 지속하는것은 아니라고 난 생각한다.하늘에 속한 몸과 땅에 속한 몸의 영광이 다르다고 말하고 있으니,요사이 표현으로 하면 그 생명체의 존재방식과 구성원리와 구성체의 소재가 다르다는 말이다. 다시 간단하게 정리해서 말하자면,소크라테스나 사도바울이나, 영혼이 불멸한다 는 명제적 신념은 동일하지만, 그 불명성의 근거와 몸에 대한 신념이 다른 것이다. 소크라테스에게서는 인간 영혼자체가 지닌 불멸적 속성 때문에 불사하여 영존한다는 철학적 신념이지만, 바울은 모든 생명의 근원자이시며 지탱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영적 생명체를 선물처럼 벌거벗는 무와 같은 인간영혼에 덧입혀주시기 때문에 불멸적 영생의 생명을 지속한다는 이스라엘 전통의 신앙이 나는 문득 떠올랐다.

죽음을 철학적으로 종교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속의 학자들보다는 소박하게 살면서도 죽음의 두려움을 훌쩍 뛰어넘고 위대하게 살고가는 수많은 보통사람들을 난 보게 된다. 자기의 죽음뒤 시신을 화장시키지 못하게하고, 평소빚지고 살았던 산속의 생물들에게 먹이가 되도록 공양하는 선승(禪僧)들의 초연한 자세, 의학발전을 위해 해부학자료로 시신을 기증하라고 유언을 남기는 사람들, 장기이식자들은 모두 훌륭한 사람들이다. 그에 비하여 수많은 독재자들과 그 추종자들이 시신을 방부제로 처리하여 기념관 속에서 항구보존하려는 작태는 자연의 순리에도 어긋날 뿐아니라, 매우 역겹고 추해보인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삶에 대한 집착과 긴밀한 관련이 있고 따라서 죽기 전에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현세의 삶의 방식을 왜곡하고 각종의 부조리를 낳을 수 있다. 또 지나친 사후 세계의 존재에 대한 신념은 우리 자신의 현재의 삶을 무의미하게 만들 뿐이다. 우리는 현재의 삶을 보다 충실하고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죽음을 직시해야 한다. 죽음이란 호흡이 정지하고 심장 박동이 느려지며 마침내 세상과의 단절을 꾀하게 되는 그런 단순한 과정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평소에 이런 죽음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서로 대화하는 과정을 가짐으로서 우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하고 얼마든지 평화롭게 삶을 마감할 수 있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친구나 선생님, 부모님의 조언을 많이 얻고 충분히 준비함으로 해서 그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죽음도 이와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죽음을 두려워하고 현세의 삶에 집착하며 죽음에 대해 쉬쉬하는 것은 오히려 죽음에 대한 더 큰 두려움을 가져올 뿐이다.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죽음과 보다 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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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인터넷 - 엽기.포르노.게임의 광기에 대한 보고서
라도삼 지음 / 자우출판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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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디지털 혁명이란 거대한 변화의 파고에 휩싸여 있다.개인은 물론 국가의 운명조차 이 변화의 물결에 올바로 대응하지 못하면 미래사회의 앞날을 약속할 수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디지털 혁명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고 본다.지금 우리는 산업사회로부터 디지털사회로 패러다임이 전환하는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지식과 정보가 힘이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정보화와 지식기반산업에 기초한 세계화에 대해 우리는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며 법과 제도 그리고 문화까지 디지털화되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우리나라는 21세기에 또다시 역사 속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기로에 서 있다.정보화를 통한 디지털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우리에게 반드시 풍요로운 복지사회와 생산적인 문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산업사회보다 몰인간 화의 심화가 가속될 수 있으며,가족관계 해체 등 현대 물질문명의 부작용과 정보화의 역기능에 시달릴 수 있다.이것이 바로 사이버 중독이다.

저자는 '블랙 인터넷'이라는 용어로 현 시대 사이버 중독에 빠진 이들에게 경고 하고 있었다.인터넷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인터넷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특히 인터넷 사용이 청소년들의 생활패턴을 급격히 변화시킴에 따라 가정에서 부모들이 청소년의 인터넷 사용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정부차원에서 인터넷 내용물의 등급제 도입을 추진하는등 청소년의 인터넷 사용을 규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인터넷,웹이라고 하는 공간은 이미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사회적 환경이 되었고 그들의 공간이 되어 있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다시 말해 어떻게 하면 유해한 환경이 되지 않게 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유해한 환경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놓고 킴벌리 영이라는 미국의 심리학자는 웹공간을 '경찰없는 거대한 도시'로 표현하였다.더군다나 한국은 높은 컴퓨터 보급률과 세계 최고 수준의 게임방(PC방),세계 7위의 인터넷 인구를 갖춘,그야말로 경찰없는 거대한 도시들이 곳곳에 세워진 나라이라고 난 개인적으로 생각을 해 본다.

난 저자의 엽기 포르노 게임 중독에 대한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모두 받아들이고 난뒤 난 학급 붕괴에 대해 한번 생각 해 보았다.학교 붕괴라는 용어를 왜 쓰는지는 다른 독자분들도 이해할거라 본다.학생답지 못한 학생들의 봇물화로 인해 지금의 학교는 정말 우스꽝스럽다고 난 본다.이런 선생을 우습게 알고 비행이 증가하는 이유중 하나가 난 바로 사이버접촉에 의한 페단이라고 본다.과거에는 통했던 방식이 지금은 들어먹히지 않는다는 것이 요즘 신문지상에서 보는 교사들의 넋두리.

근래에 들어 N세대라는 용어로 그들을 설명한다. 상업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들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대체적으로 적합한 것 같다.바로,영상매체와 멀티미디어에 익숙해진 세대라는 점인데, 사이버 공간속에서 청소년들의 문화가 엄청나게 형성되었다.인터넷과 PC통신은 매우 중요하고 유익한 도구임에 틀림이 없지만, 학생들에게 잘못 쓰이면 커다란 해를 끼치는 도구가 되어버렸다.그들에게 형성되어 있는 사이버 공간의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것이 가져올 영향에 대해 숙고해봐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청소년의 음란물 사용 실태는 상당히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으며, 아울러 성가치관에 급속한 변화가 오기 시작하였다.교사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손을 놓고 수수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지 나서야 한다고 본다.

우리사회는 이런 모든 병폐들에 대해 아직은 소홀한거 같다.관심을 가지고 하나 하나 저자의 요지대로 그들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해결책을 모색해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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