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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주택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81
유은실 지음 / 비룡소 / 2021년 3월
평점 :
제목: 순례 주택
저자: 유은실
출판사: 비룡소
여러 감정이 뒤섞이는 책이었다. 잔잔하면서 은은한 책이었다가 통쾌한 부분도 있는 책 말이다. 순례 주택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이 소설이 나를 웃게 만들어준 것 같다.
순례 주택은 주인 김순례씨의 건물이다. 임대료도 싸고 혜택도 많아서 사람들이 몇년을 기다리며 들어가길 원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여러 사람이 살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순레씨의 최측근 수림이와는 사이가 더욱 각별하다. 순례씨는 수림이의 할아버지와 '남자친구' 라는 관계가 있었는데, 그 때문에 수림이와 알게 되었고 수림이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현재 수림이는 순례씨와 함께 순례 주택에서 살고 있다. 수림의 엄마가 출산 후 스트레스와 우울증 때문에 수림은 외할아버지인 순례주택 쪽으로, 수림의 언니 미림은 친가쪽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미림이 하도 엄마를 찾는 바람에 집으로 데려오게 되었고, 오길 싫어하는 수림은 계속 순례주택에서 키웠다. 원래 할아버지 집인 수림의 가족이 사는 곳은 엄마와 아빠, 언니가 차지하였고 쫓겨난 할아버지는 순례주택에서 순례씨와 함께 수림이를 돌보며 살게 되었다. 그렇게 수림이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순례씨와 함께 살고 그러면서 주택안에서 벌어지는 1군(엄마, 아빠, 언니)의 스토리이다.
나는 순례씨의 이름과 그에 걸맞는 그런 행동이 마음에 들고 배우고 싶다. 환경에 대해 잘 알고 소중히 생각하고, 자신을 가꾸고 아끼는 모습이 몸뿐만 아니라 마음 그 속까지 모두 건강해 보였다. 그렇게 순례자처럼 사는 모습에 존경하게 되었다.
순례 주택을 만약 코미디 영화로 만든다면 정말 대박날 것 같다. 주택 곳곳에서 코미디 분위기가 팍팍난다. 수림이가 생각하는 것부터, 순례씨의 조금은 어정쩡한 말투와 행동, 그리고 1군들. 대표적으로 재미있었던 것 몇개를 소개해 보자면 먼저 '순례어' 가 있다.
P197, 228
문자 앤 멈춤 내톡 때문에 앤을 보다가 멈춤 버튼을 눌렀다는 뜻이다.
어, 비가 와서 미끄러운 걸 모르고, 메리골 괜찮나 보러 가다. 스마티 안 끄고. 보험 신발. 순례씨는 메리골드 꽃이 괜찮은 걸 보러 갔다 미끄러졌다. 스마트 티브이는 안 껐다. 보험증권은 신발장에 있다.
순례어를 들으면 심각한 상황에도 순례씨니까 왠지 잘 이겨낼 것 같고, 밋밋할 때는 웃게 해줬다. 그냥 보면 못알아 듣겠는데 뜻이랑 같이 보면 아! 하고 이해가 탁 된다. 이것이 진정 코미디이지 아니한가???
또 웃긴 거 하나는 1군들 중 수림 엄마의 말투이다. 수림엄마의 말투는 참 특이하다.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기면 수림엄마의 행동을 따라하고 상상해본다. 그런 수림엄마의 인상이 얼마나 웃길지.
P28
"솔직히 말해서, 빌라촌 애들이 관리가 잘 안되는 건 사실이잖아요. 부모 입장에서 솔직히 말해서, 빌라촌 애들과 어울리는 게 걱정됩니다. "
소름이 끼쳤다. 엄마였다. 음성을 변조했지만 알아볼 수 밖에 없었다. 엄마는 '솔직히 말해서' 로 말을 시작하는 버릇이 있다. '솔' 에서 턱을 들었다 내리고 '서' 에서 한 번 더 든다. 이런 수림 엄마의 독특한 이야기 방식은 진지하게 이야기해도 풉! 웃음이 터질 것만 같은 코미디 이다.
1군들과 같은 말 그대로 '진상 ' 손님들을 가지고 있는 수림이지만, 그걸 잘 이겨내고 순례씨와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모습이 유쾌해보였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정말 잔잔한 소설인데 책을 손에서 뗄 수 없고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아쉬웠던 그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책이 더 두꺼웠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별 일이 없어도 그렇게 화목하게 지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책을 계속 읽고 싶은 기분이 났기 때문이다. 이런 책이 있다면 정말 소장할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소설속에서 나는 순례 씨도 되어봤다가, 수림이도 되어봤다가 순례주택의 어딘가 405호 "나"가 되어 있기도 했다. 순례 주택에서 나는 순례자가 되고 가는 느낌이다.